박석환, 장난아니네의 나동태, 씨네버스, 2001.06.12


캐릭터버스 2.


장난아니네의 나동태


장르의 법칙에 온 몸을 받쳐라 

<박봉곤 가출사건>을 통해 가출한 주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춤과 노래를 뒤섞어 동화적으로 표현했던 김태곤 감독이 마음먹고 화려한 액션과 코미디를 버무린 만화적 영상의 작품을 준비했다. 학원무림액션이라는 새로운 장르명을 달고 출발한 영화 <화산고>는 ‘액션 미소년’ 장혁에게 교복을 입히고 <와호장룡>에서 관객의 눈을 번쩍 뜨이게 했던 와이어액션을 도입했다. 

학원무림액션이라는 장르코드는 영화 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당연히 다수의 영화DB 사이트들은 이 영화의 분류에 애를 먹고 있다. 무협이면 무협이고, 액션이면 액션이지 ‘무림액션’에 ‘학원’은 또 무슨 소리인가? 장르의 관습적 매력이 상업적인 파급력을 지니면서 이에 부응하려는 문화산업 관련 창작인들의 노력이 탐스럽게 피어났다. 대중에게 인지된 기존의 안정적인 영향권 안에 포함되면서도 뭔가 색다른 것을 찾으려는 시도가 낯선 장르를 출현시키고 일반에게 상쾌한 혼란을 가중시키는 소재주의 작품을 등장시켰다. 

국내 상업만화의 차세대 기수로 성장하고 있는 만화가 전세훈은 데뷔이래 꾸준히 독특한 소재주의 만화를 선보여왔다. 작은 키지만 짱돌처럼 단단한 몸매와 의지를 보여줬던 것이 만화장르 일반의 캐릭터였다면 전세훈의 주인공 ‘나동태’는 키만 크고 싱거운 녀석이다. 나동태는 전세훈의 작품을 통해 가수, 축구선수, 수영선수, 퀵 서비스맨 등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 직업의 다양성처럼 다양한 소재 속에서 움직인다. 


혼성장르, 소재주의 만화 

영화 <화산고>가 타이틀 앞에 내세운 ‘학원무림액션’은 소재주의 만화가 전세훈의 일면을 유감없이 보여준 만화 <장난아니네>가 달고 나왔던 장르명이다. 

<장난아니네>의 나동태는 <화산고>의 설정과 마찬가지로 전교생이 무술을 사용하는 ‘무림고등학교’에 다닌다. 무술 실력이 약해서 ‘시다바리’ 신세를 면치 못하던 나동태. 무공 쌓기 보다 주색 밝히기에 더 열심인 저 옛날 무림 고수의 영혼이 어느날 동태와 한 몸이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20권이 넘는 대작이지만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무리할 정도로 단순하다. 형광등처럼 자기 자신과 고수를 왔다갔다하는 나동태는 꼭 죽지 않을 정도로 얹어 맞아서 피를 보거나 섹시한 여학생을 봐야지 힘을 발휘한다. 이 힘을 바탕으로 서열 10위부터 1위까지 다단계 싸움을 벌인다. 처음부터 끝까지 상대만 바뀌고 반복적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는 질 때까지 계속되는 컴퓨터게임의 네러티브 구조를 보여준다. 일진과 이진이라는 폭력 조직이 일반화된 고등학교를 무협의 무대로 바꾸고, 학원만화의 요소에 컴퓨터게임의 서사구조를 도입했다. 장르의 여러 요소들을 혼성해서 하나의 골격을 갖추고 다중 인격을 지닌 것으로 설정된 주인공 나동태를 중심으로 혼란한 이야기와 각종 장르의 법칙들이 하나 둘씩 정리된다. 

뚜렷한 개성을 지닌 유일무이한 주인공보다 스폰지처럼 무엇이나 흡수 가능한 주인공. 그 평범함에 장르가 필요로 하는 코드들을 하나씩 입혔다가 해체해 버리겠다는 작가의 전략에 나동태는 온 몸을 받치고 있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씨네버스/ 장난아니네 나동태/ 2001-06-12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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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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