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디지털시대 출판만화 비평, 잘가라종이만화, 시공사, 2001

2019. 1. 7. 01:05Dissertation/강좌




디지털시대, 출판만화 비평


1. 출판만화 유통시스템 재고

한국출판문화협회의 2000년 출판통계에 따르면 만화는 같은 해 출간된 모든 종류의 책 중 가장 많은 발행 종수를 기록했다. 수치상으로만 보자면 그야말로 출판만화의 해였다고 볼 수 있다.

출판계의 전체적인 불황과 책을 사지 않는 소비환경의 영향으로 일반 도서의 신간 발행 종수는 1.0% 하락하였으나 만화 도서가 이 수치를 대폭 낮추었고, 부수 측면에서는 오히려 21.4%의 증감률로 전체 발행 부수의 하락을 평균 0.3% 상승 한 것으로 만들었다.(표30)

96년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출판통계를 호령하고 있는 만화는 매년 20% 이상씩 꼬박 꼬박 성장하는 저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수치를 만들어낸 만화계의 현재는 그리 신통치가 않다. 소비자가 만화책을 사려하지도 빌려보지도 않는 총체적인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IMF 이후 크게 늘었던 만화방과 대여점은 현재 1만 5천 여 개 수준으로 대폭 줄었고 점차 폐업률이 높아지고 있다. 현실적으로 만화계 최대 소비자 격인 이들이 불황에 대한 두려움으로 책을 사지 않고 있다.

만화책만화의 대여소비 시스템 문제가 첨예하게 대두되고 있는 국내 출판만화계의 악순환 고리를 거칠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독자는 만화책을 사서 보는 것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

②대신 만화방과 책대여점 주가 한 권 책값을 내고 구입한다.

③이것을 만화방과 책대여점에서 일반 소비자는 빌려 본다.

④주 소비자가 만화방과 책대여점으로 ‘최대 기대 소비자’가 2만(업소 수)을 넘지 않는다

⑤제작비가 많이 들건 적게 들건 간에 최대 판매 부수는 만화방의 총 숫자 이내로 한정된다.

⑥한정적이지만 최소 부수를 보장해주는 시장이 있어서 안정적인 작품생산을 한다.

⑦최소비용의 최대효과를 담보하기 위해 고비용의 창작물보다는 저비용의 일본작품을 수입한다.

⑧시장의 논리에서 탈락되지 않으려는 국내 작가들이 최소비용과 최소시간을 들여 졸작이어도 안정적으로 팔릴 수 있는 시장에 경쟁력 없는 상품을 내 논다.

⑨독특하고 개별적인 취향의 작품이 생산되지 않는다.

⑩원고료 비싸고 예술가인척 하는 국내 중견작가가 도외시된다.

⑪특정 소비대상 이상의 소비층을 형성하지 못하고 아이들의 전유물 아니면 저급한 성인의 유희물로 취급된다.


상기한 내용은 출판만화의 악순환 고리를 전제하고 있어서 일부 비판적인 시각이 도입된 것이 사실이지만 이 자체가 국내 출판만화계의 제작 및 유통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출판만화계의 유통구조는 ‘대여 소비자←만화방←외무원←총판←만화방용 만화 출판사’로 이어지는 뿌리 깊은 소비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그림75) 소비자가 책값의 10% 수준에 작품을 빌려 볼 수 있는 만화방은 이를 외무원으로부터 책값의 80% 수준에 구입한다. 출판사가 약 65% 수준(작가 인세 10%, 제작비 35%)에 총판에 넘긴 책은 외무원의 손을 거쳐 소비자와 만화방 업주 사이에서 반복적인 구매가치가 형성되고 가치 창출을 지속화시키지만 작가와 출판사에게 전달되는 이익은 없다.

책의 소비, 작품의 소비는 출판사와 작가에게 있어서는 원천 수익원이 되어야 하지만 ‘총판 대상의 1차 배급’이 원천 수익으로 막혀 있는 꼴이다. 최근 새로운 만화의 유통 채널로 떠오르고 있는 대형 서점과 온라인서점은 만화책만화의 구매 소비자를 일정 수준 이상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집 앞 만화방과 책대여점의 소비환경을 대체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소득 1천불에 육박하는 국내 사정을 고려하고, 청소년의 문화비 소비 수준이 청장년층을 넘어서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출판만화의 이 같은 유통 구조는 ‘박리다매’로 ‘잘 살아 보겠다’는 저열한 유통 메커니즘에 구속되어 있는 것이다. 디지털시대의 산업 유통 구조가 필연적으로 네트워크를 축으로 한 신디케이션 사업이고, 이용자들의 ‘티끌’을 모아 ‘태산’을 만드는 것에 입각해 있어서 언뜻 ‘그게 그것 아닌가?’하는 의구심에 빠질 수 있으나 ‘1원 하나도 철저하게 분배되는 디지털 상품의 신디케이션’과 ‘단일 상품의 부가가치 생산에 따른 재분배 구조’가 차단되어 있는 국내 출판만화의 유통 구조는 근본이 다르다.(그림76)

다수의 인터넷 만화 서비스 업체는 만화출판사들의 자체 사이트 구축에 따라 작가와의 개별 계약 방식을 택하고 있다. 업체는 작가와 이용 수익의 30% 수준에 계약을 맺고 별도의 계약금이나 선인세를 지급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이용자의 디지털 상품 구매 요청이 있을 시 사전에 계약되어 있는 전자 결제 대행업체를 통해 이용료를 받고(결제 수수료 10% 이내) 이용수익을 작가와 콘텐츠의 저작권 관리 시스템을 통해 자동 분배한다. 분배 수익은 디지털 저작권 사용료의 개념으로 월별 정산하여 지급하고 있다.


2. 출판만화 제작/ 창작 시스템 재고

현재 아동만화의 시장상황은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다. 만화는 아이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주장은 맞는 면이 없지 않다.(그림77) 만화라는 매체를 비하하는 주장일 수 있지만 통과의례로서의 만화가 지니는 문화 산업적 역할과 작가와 독자가 같이 성장하여 고정 소비층을 형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 등의 측면에서 검토 될 필요가 있다. 일례로 만화의 부흥기라 할 수 있는 80년대의 만화키드들은 여전히 만화방에서 만화를 보고 있고 이들을 대상으로 출판되고 있는 일일만화의 변형판 성인만화 시장은 예전만은 못하지만 장수를 누리고 있다. 또 순정만화의 형성기에 출간된 작품들의 복간작업은 끈이지 않고 있으며 적정선 이상의 판매고를 형성하고 있다.(그림78)

이는 모두 아동만화의 올곧은 뿌리가 형성해낸 소비 집단이다. 그러나 거기에 문제가 존재한다. 아동만화가 부모의 지갑에 기대고, 순정만화가 이미 성장한 여성에, 성인만화가 성공한 만화키드들의 여가에 기댄다면 그 가운데를 두텁게 지탱해줄 허리가 없는 상황이다. 만화계의 최대 소비집단이라고 이해될 법한 15세 이상 20세 이하 남자 독자가 증발해 버린 것이다. 현재 출판만화계는 이들을 사로잡을 상품 정책을 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왕년의 걸작 일본만화들을 복간하면서 인터넷 성인만화 콘텐츠의 부흥기를 구축하고 있는 꼬맹이 시절의 만화팬들을 나누자는 몸짓만 하고 있다. 구매동기가 있고, 구매의욕이 있어도 구매대상이 변변치 않고 구매를 발생시킬만한 에너지가 부족한 것이 국내 창작 만화이다.

소비자 대상의 진열 판매가 아니라 업주 대상의 구비 대여 수준의 소비구조와 소비발생에 따른 수혜가 없는 상황에 최대 소비자로 이해될 법한 이들이 증발해 버림으로서 국내 창작만화의 최대 소비자는 앞서 거론된 아동, 여성, 남성 독자가 주가 되고 있고 이들의 소비형태는 만화방과 책대여점에 집중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업주로 국한된 소비자층은 업주 대상의 책 공급이 주가 되게 만들었고, 규격화된 작품의 생산과 공급이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었다. 가령 매대(책꽂이)에 꽂힐 책은 일일만화(신국판)와 코믹스판만화(4*6판), 일일만화의 변형판 만화로 자로 잰 듯 정확하게 분리된다. 이상 3종의 책들은 외형이 동일할 뿐만 아니라 그 알맹이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장르만화의 고정된 작화법과 연출법이 그대로 적용된 학원만화, 순정만화, 무협만화, 성인만화가 대부분이다.

단행본만화의 창작 유형을 업주와 소비시장의 입장에서 본다면 만화방에 주로 공급되는 일일만화는 이 소비시장의 특수성상 앉은자리에서 될 수 있으면 많은 권 수의 만화책을 빠르게 소비할 수 있어야 한다. 지정된 장소에서 ‘한 권에 얼마’ 하는 식으로 소비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작품의 작화와 연출은 스토리를 중심으로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가는 방향으로 의도된다. 소비가 빠르다 보니 생산도 빨라야 하고 분업창작 시스템을 도입하다 보니 분업 이후 완성본의 이질감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작화법이 발달했다. 아직까지 만화방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이현세 식 작화법-각진 얼굴의 주인공 캐릭터와 속필이 가능한 힘있고 굵은 터치’은 이런 소비환경에 따른 창작 수법 중 하나로 볼 수 있다.(그림79)

책대여점의 경우는 이와는 상황이 다르다. 구입하지 않고 빌려보는 개념은 동일하지만 만화방이 지정된 장소에서 본다는 개념이 강한 반면 책대여점은 빌려주기 만 한다. 영업소가 아닌 다른 곳에서 책을 보게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작품의 소비가 여유롭다. 자의적인 해석일 수 있지만 판형 역시 일일만화보다 작아서 더욱 많은 량을 매대에 전시할 수 있고, 다른 곳에서 소비하기 쉽게 휴대성을 갖추고 있다.

일일만화와 코믹스판만화가 지니는 공급자 입장에서의 특수성들은 더 많은 지적과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쯤하기로 한다. 중요한 것은 이미 앞서 거론한 것처럼 최대 소비자층을 이끌지 못하고 독자의 입장에서보다는 독자를 연계하는 중간 공급자를 최대 소비자로 대우하면서 생기는 문제와 이를 중심으로 한 작품창작으로 인해 다양성은 무시되고 내형도 외형도 규격화된 상품만이 떠돌고 있다는 점이다.

한때 만화방의 부흥기가 몰락하면서 기존의 만화책보다 고급스러운 형태의 만화책들이 나오는가 싶더니 책대여점이 등장해서 책을 구입하려는 독자들의 발길을 막았다. 이는 만화출판사와 작가에게 만화방과 책대여점의 의존도를 높이는 꼴이 됐다. 현재 전국의 만화방과 책대여점은 약 1만5천 개 수준이다. 전반적인 경기불황과 가계 오락비의 감소, 인터넷의 대중화와 오락기능 확대 등은 이들 업소의 폐점율을 빠른 속도로 높이고 있다.

과거로부터 제작비와 상관없이 판매량은 이들 업소의 수로 한정된다는 개념이 강했던 만큼 단일 작품에 대한 제작비용을 감소시켜서 위기상황을 해결하겠다는 것이 대개의 출판사 전략이다. 제작비용 부담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값싼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것으로 해결되는 일본만화의 수입출판과 신인작가 기용이다. 결국 진정성과 성숙도를 갖춘 중견작가들의 활동무대가 제한되고 출판사측의 기획상품을 제대로 뽑아내는 미숙한 작가들이 만화계를 대표하는 얼굴로 활동하게 된다.

국내 출판만화 제작과 창작 구조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근본적인 문제는 ‘일본 의존도가 심각할 정도로 높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만화계의 전문가들부터 일부 애호가들까지 ‘요즘은 일본 만화도 볼게 없는데’라는 말이 나온다. 일본에서 히트를 치고 있는 작품이 나오지 않고 있는데 국내 만화계가 잘 될리 없다는 것이다.

2000년을 기점으로 초대형 히트작들의 잡지 연재가 끝나자 일본만화계도 불황이 왔다. 대형작가들의 후속작이 나오지 않을 뿐 아니라 몇몇 기대작들이 수준 이하의 반응을 보이고 있는 형편이다. 그 영향이 일본만화를 찍어야 이익을 낼 수 있는 국내 출판만화계에 까지 미치고 있다.(그림80)

‘국내만화 한편 키우려면 일본만화 열편을 찍어야 한다’는 속설이 있다. 그만큼 국내 출판만화계의 기반은 일본만화로 채워져 있다. 종 수 구성비를 피라미드형으로 살펴보면 가장 밑바닥이 일본만화이고 그 위가 국내 일일만화(만화방만화), 그리고 한일 코믹스판만화가 차지한다.

부천만화정보센터가 마련한 ‘만화규장각’사업의 공청회에 참석한 우리만화연대의 김형배 회장은 중견작가가 전무한 만화출판 풍토를 비판하며 참신한 젊은 작가와 진정성을 추구하는 중견작가의 공동 창작무대가 절실하고 국내 만화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은 중견작가들의 작업을 통해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현재 국내 만화전문 출판사들은 일본 만화의 무분별한 수입 출판으로 작은 이익을 챙기는데 골몰해있고, 준비된 중견작가들을 도외시하고 있다. 또 신인작가를 발굴 양성한다는 미명 하에 미숙한 작가들을 양성, 저예산의 경쟁력 없는 작품을 출간해서 일본만화의 상대적 경쟁력을 높여주고 있다. 앞서 이미 결론을 기술한 것과 같이 이상과 같은 일련의 삽화들은 본질적으로 만화생산에 대한 천박한 사고와 안일한 접근이 만들어낸 것이다.

한국만화가협회가 주최한 ‘한일만화가친선모임’의 발표자로 나선 만화가 황미나는 자신의 작품 <레드문>이 온라인 게임으로 만들어져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원작인 만화의 홍보가 함께 이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구입하려는 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 곳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국과 일본의 유명 만화가가 모인 자리에서 작가들은 한결 같이 출판사측의 무사안일주의적 발상과 소극적 시장 전략, 천민자본주의적 사고로 작가 위에 군림하려는 자본가들의 태도를 개탄했다. 이는 출판사의 ‘마케팅 부재’를 비난하는 소리이다.

제작원가가 높은 국내 작가의 작품이든 상대적으로 낮은 일본만화이든 간에 상관없이 제작방식과 형태, 유통방식과 판매가 동일한 규모로 이루어진다. 만화방이나 책대여점 또는 일부 문방서점에 국한된 협소한 판매시장도 개척하려는 의지가 없다. 규격화된 발행과 제한된 유통에 기대서 이왕에 구축된 시스템이 도출시키는 이익을 얹으려는 것이다. 감나무 아래서 떨어지는 감만 받아먹겠다는 꼴이다.


3. 온라인을 중점으로 오프라인 만화시스템 재편

일본의 대표적인 만화제작 및 생산 네트워크는 만화전문잡지이다. 만화전문잡지를 중심으로 작가를 모으고, 작품을 모으고 이를 단행본만화로 생산해낸다. 콘텐츠도 커뮤니티도 커머스도 이 안에서 모두 해결된다. 잡지의 대규모 유통망과 충성도 높은 독자들의 엽서가 이를 대표한다. 국내 출판만화계는 이 네트워크를 답습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만화잡지 기반의 단행본만화 생산 시스템은 이미 상당부분 실패한 흔적들을 내비치고 있다. 만화잡지는 생산이 곧 손해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생산되던 단행본만화의 판매고는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다양한 작품들의 경연장이 됐던 만화잡지는 고정된 편집자와 시장의 요구에 따라 조작될 뿐 이미 그 기능을 상실했다. 시장이 좋을 때야 만화잡지가 손해를 보더라도 단행본 한 두 작품이 히트하면 함께 실렸던 작품도 자연스레 인지도가 형성되고 단행본만화의 판매고가 동반 상승하는 등의 효과가 나왔지만 현재 상황은 그렇지 않다. 신인작가들을 성장시키고 유명작가들에게 소속감을 부여해서 전속작가로 ‘잡아둔다’는 인간적인 포석 기능도 작가들의 의식변화에 따라 무용지물이 됐다. 신인작가들은 더 이상 만화잡지를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지 않으며 어디에서든 하고 싶은 작품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잡지 네트워크의 위치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은 인터넷이라는 환경이다.

인터넷은 잡지가 지녔던 콘텐츠에 대한 경쟁력을 대용량의 데이터베이스와 수집한 콘텐츠들을 성실하게 제공하는 동호인들로 인해 오래 전에 넘어서 버렸다. 광역적이면서 물셀 틈 없었던 잡지의 오프라인 유통망을 아주 조잡한 홈페이지 하나가 우습게 넘어서 버린다. 또 작가, 출판사, 독자를 연계하던 엽서 커뮤니티는 즉시적인 전자우편과 게시판 기능 등에 의해 존재 가치를 잃었다. 결국 기존 오프라인 만화시스템은 온라인의 특수성을 기반으로 재편되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만화출판유통업계의 근대적 유통 시스템은 만화의 내외적 디지털화를 막는 요인이다. 총판 중심의 유통시스템은 국내 출판만화계의 온라인 진출을 막고 있다. 대개 출판사는 대규모 단행본만화의 발행과 배포를 조건으로 단행본만화의 최대 유통망인 총판을 상대로 보증금을 받고 있다. 신규 중소 출판사들이 약 3억원 내외의 보증금을 받고 앞으로 출간될 단행본만화의 유통권을 넘기는 형태이다. 즉 발행도서의 부수 곱하기 책값을 100%로 볼 때, 출판사는 작가와 10%에 인세 계약을 하고 작품을 편집, 발행한다. 35% 내외의 제작비를 들여 발행된 도서를 판매가의 65% 수준에 총판에 넘기면 총판은 이 도서의 도소매를 전담하게 된다. 보증금은 책이 출간될 때마다 상쇄하는 식으로 처리한다. 대규모 업체의 경우 보증금 규모는 수 십 억원에 달한다. 이를 상쇄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책이 팔려줘야 하는데 만화방과 책대여점이 한 권씩 사고나면 끝이다. 더군다나 최근의 경기침체는 만화방과 책대여점의 만화책 구입율을 큰 폭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이로 인해 총판에서 거둬들인 보증금은 출판사를 압박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결국 출판사는 부수를 최소화하고 종 수를 늘려서 보증금을 깍아 내고 있다. 좋은 작품보다는 양으로 승부하게 만드는 구조가 반복된다.

총판의 보증금과 총판 중심의 대여시장 유통체제는 오프라인 만화출판물의 경쟁력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총판 유통체제의 장점도 있다. 기본 부수의 판매를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총판 유통체제는 분명하게 국내 만화의 기반을 형성하는 큰 힘이 된다. 그러나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버린다는 기본 철칙이 출판사와 총판의 관계 속에 묵살되면서 만화계 전체가 풀어야 할 문제로 대두된다.

총판 중심의 단행본만화 유통 시스템과 보증금 관행은 만화전문출판사들의 온라인 만화사업 진출과 전반적인 도서유통에 따른 온라인 시스템 도입을 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그림81) ‘그나마 PC방으로 몰리는 손님들 때문에 만화방들이 하나 둘 문을 닫고 있는 판에 온라인에서 만화를 보여주거나 판매하면 우리는 죽으라는 것이냐’는 것이 총판과 만화방, 책대여점의 입장이다. 온라인만화사업은 오프라인 도서출판과 판매라는 근본적 사업모델을 지닌 이들의 입장과 보증금을 납입한 총판의 입장에 전면적으로 배치된다. 하지만 출판사를 등에 업지 않은 순수 IT기반 업체들이 작가들을 대단위로 포섭하고 대규모의 자금을 투자하고 있어서 오프라인 출판사 입장에서도 ‘강 건너 불 구경’하듯 사태를 관망하고 있을 수 가 없게 됐다. 이 때문에 자회사를 통하는 방식으로 미지근하게 이뤄지고 있는 만화출판사들의 본격 참여가 필요하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연계하는 종합적인 출판만화 유통 시스템의 구축과 대여 중심 이용자 모델의 변환 등이 요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4. 오프라인 출판물의 강점은 승화시키고, 단점은 온라인으로

온라인 서점의 대명사가 된 아마존.com이 오프라인 유통망을 잠식해오자 지역사회에 위치한 작은 서점들이 대단위 시위를 했다.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그간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데 지역사회를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온라인 서점이 우리 지역 주민에게 책을 팔고 있느냐’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그림82)

온라인업체의 유통망 확보 노력에 대응하는 오프라인 유통망의 조용한 항변이다. 이런 결과는 앞서 예시한 총판과 만화방, 책대여점 업주의 입장과도 동일하다. 책은 단순히 일 개인의 읽을 거리를 지나서 문화적 영향력을 간직한 상품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노동과 가치를 담보하는 유통상품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즉, 대형 온라인 만화업체의 등장이 매대(책꽂이)에 꽂혀있는 책이 지나치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문화적 발산력에서부터 이를 토대로 노동을 투입하고 가치를 창출해내는 이들의 일손을 빼앗을 수도 있고, 빼앗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모 인터넷업체의 TV광고 카피처럼 ‘인터넷쇼핑이 시장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쇼핑의 즐거움을 배가 시키’는 역할만을 한다면 이는 기존의 유통망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새로운 유통 흐름을 생산해내는 것이 된다.

일례로 오프라인 만화방의 폐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것을 단순히 악화된 실물경기 차원으로 국한한다면 온라인 만화시장은 오프라인에서 사라진 새로운 시장을 일으켜 세우는 역할을 하며 반대급부로 동일 성향의 오프라인 시장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한때 오프라인 성인만화 시장의 축소로 성인만화 관련 잡지들이 줄줄이 폐간되고 성인용 만화 출판물이 생산되지 않자 성인만화를 그리던 작가들은 모두 만화판을 떠나있었다. 뿐만 아니라 만화방용 만화를 그렸던 왕년의 작가들도 새로운 작가들의 등장으로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나 온라인 만화시장의 전개는 이들 작가들에게 새로운 터전을 만들어 주었고, 최근 잊혀졌던 작가들이 새롭게 등장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이들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예전의 인지도를 회복하고 기존 작품의 복간을 거쳐 다시 창작 일선에 등장하고 있다. 또 오프라인에서 전혀 판매가 이뤄지지 않던 작품들이 온라인에서는 인기 청소년층 작가들의 작품을 우습게 만들 정도로 높은 지명도와 판매고를 올리면서 잡지 연재를 하지 않고 출간했던 작품의 속편이 오프라인 만화잡지에 연재되는 역전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시장을 없앤 것이 아니라 쇼핑의 즐거움’을 늘려 준 것이다. 이 같은 사례는 단적으로 오프라인과 온라인 만화시장의 공생관계를 보여준다.(그림83)

가깝게는 온라인에서 판매가 가능한 작품이 있고, 오프라인에서 더 높은 가치를 이루는 작품의 성격이 구분될 수 있다. 작품의 성격을 구분한다는 측면에서 한 중견작가는 ‘10권 이상 되는 만화의 출간은 앞으로 자제 될 것 같다’는 입장을 조심스럽게 밝혔다. 즉, 부피가 큰 작품의 경우 여러 가지 사정상 나무를 해하지 말고 데이터로 전달되어야 한다는 점을 냉철하게 지적한 것이다.

이 작가는 ‘프랑스 만화 같은 고급만화의 창작과 출판이 우리에게도 현실적으로 다가온 것 아니냐’고 덧 붙였다. 다시 말해 빠르게 페이지를 넘기며 영화에 버금가는 형태로 창작됐던 서핑(지나쳐보기) 개념의 만화는 인터넷으로 가는 것이 합당하고, 종이 한 장에 들인 수고만큼을 차분히 읽어낼 수 있는 서치(찾아보기) 개념이 강한 독특한 작품들이 오프라인에서의 판매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예측이다.


잘가라종이만화, 시공사, 2001 게재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