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디지털만화의 이해, 잘가라종이만화, 2001

디지털만화의 이해


1. 디지털시대의 도래

디지털digital은 연속적으로 존재하는 양을 유한개의 자릿수로 표현하는 신호를 뜻한다. 컴퓨터와 데이터 통신에서 데이터를 모두 0과 1로 나타내는 것을 가리키는 형용사이며 손가락, 발가락, 아라비아 숫자를 의미하는 디지트digit의 어원으로 아날로그analogue와 대조된다. 아날로그 방식이 신호의 진척, 위상, 전압의 주파수, 펄스의 진폭과 간격, 축의 각도 등의 차이로 정보를 전달하는 반면, 디지털 기술은 신호와 정보의 처리・전송・가공・활용방식을 0과 1의 조합을 통해 표현함으로서 정보의 저장・재생・전송・가공・무한 반복/재현・접근의 용이성 등의 장점을 갖는다. 이를 일반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이 디지털 컴퓨터이고 개인용 컴퓨터persnal computer이다.

컴퓨터의 출현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서 기존의 것을 전환하여야 할 대상, ‘아날로그 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디지털 적인 것, 디지털 적인 기술의 파급은 정보통신산업 이외의 다른 산업에서 생산성과 효율성 증대를 이끌어내는 요인이 되었고 사회 전체의 패러다임을 변화시켰다. 컴퓨터나 전자상거래의 확대로 생산성 증가와 물가안정을 이끌어 낸 미국의 예는 신경제, 또는 디지털 경제가 정보통신산업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사회전체로 파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그림4)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로 규정하고 있는 측면에서 디지털 기술의 파급을 살펴보면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기존의 체제에서 문화는 소비력을 지닌 특정 소비대상 차원에서 생산되고 소멸되는 것이었고 향유하는 무엇이었다. 그 중 만화는 대중오락매체로서는 드물게 제한적인 소비 층(성장기 통과의례로서의 만화)과 소비환경(빌려보기 중심의 만화방과 대여점 유통)을 갖고 있었다. 유아적 출판매체라는 한계를 보였던 만화는 신경제, 디지털시대의 도입과 함께 확대재생산이 가능한 주요한 문화산업으로 각광 받기 시작한다. 출판만화라는 단일 상품은 캐릭터, 팬시, 애니메이션, 게임 등 개별상품과 네트워크를 이루면서 관련산업으로의 수평적 연계와 접합을 통한 수직적 상품화가 가능하다는 산업적 전제를 구축해 낸 것이다. 한창완(세종대학교 영상만화과 교수)에 의해 제출된 이 같은 산업론의 골자는 그 결과와는 상관없이 90년대 중반 우리 만화계의 분발을 이끌어냈고, 애니메이션이라는 범세계적 문화상품에 집중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2. 인터넷의 대중화

인터넷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기간 내에 보급된 미디어media로서 기존의 아날로그 미디어가 해결하지 못한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미디어의 대중화 보급기준을 5,000만 대로 보았을 경우 라디오는 38년, TV는 16년, 일반 PC는 6년이 걸렸다. 월드와이드웹(www, World Wide Web)으로 대표되는 인터넷 보급화의 초입을 넷스케이프netscape의 출시(1994년 말)로부터라고 하고 이를 미디어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터넷 대중화는 4년 미만에 끝났다.

인터넷 상에서 텍스트와 그림의 표현이 가능하게 만들었던 최초의 브라우저browser는 모자익Mosaic(1993년 출시)이다. 당시 http서버는 50여 대에 불과했으나 그 해 말 500여 대를 넘어섰고, 모자익 개발의 주역이었던 마크 엔드리슨이 새롭게 개발해낸 넷스케이프는 매년 인터넷 사용자를 수백 배 성장시키는 역할을 했다.

97년 말 인터넷 사용자 수는 9천만 명을 넘어섰고 다음 해 한 조사 보고에 의하면 1억5천만 명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2000년 말 이 인구는 3억 명으로 불어났고, 국내 사용자가 1천만 명을 넘어서면서 인터넷은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한국인터넷정보센터의 조사자료에 의하면 2001년 4월 현재 한국에서 한 달에 한번 이상 인터넷을 사용한 인구는 2,093만 명(7세 이상 통계, 전체 인구 중 48.6%)이고, 1 주일에 한번 이상 사용자는 1,956만 명이다. 이중 가정에서 초고속 인터넷(ADSL)망을 통해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는 사용자가 44%로 나타나 인터넷은 그 어떤 미디어 환경의 대중화보다 빠른 속도로 보급되고 있다. 이와 관련 미국의 조사전문 기관인 오붐Ovum은 2006년 전 세계의 유무선 인터넷 사용자 수가 9억200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3. 뉴미디어로서의 인터넷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BC 3500년을 기점으로 구두, 문자, 인쇄 커뮤니케이션 시대를 거쳐 뉴미디어new media로 대표되는 텔레tele, 컴퓨터 커뮤니케이션 시대로 발전했다. 정보 수집・처리・저장 및 전달 기술의 발전은 보다 많은 정보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는 인간의 욕구와 노력에 의해 다양한 미디어의 발명과 응용 발전의 역사를 만들었다. C&C 혁명이라고도 하는 패키지package계 멀티미디어 개념에서 정보처리 및 축적 기술로서의 컴퓨터와 정보전달 및 교환 기술로서의 통신(communication) 기술이 결합되고 응용 발전된 결과가 곧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미디어를 등장시켰다.(그림4)

미디어로서 인터넷은 기존의 아날로그 미디어를 디지털 형식으로 전환하고 대처하는 미디어의 기능을 수행하는 한편, 보완 체제로서의 유통창구(distribution window) 역할을 하기도 하고 자체적인 생산요소를 이끄는 방식으로 산업구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미디어의 측면에서는 콘텐츠의 생산과 보급이 여전히 기존의 오프라인 유통망을 기점으로 하고 있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배급업체 간의 갈등, 저작권 보호장치의 미비, 저 규모 소비집단 등의 이유로 오프라인 유통망의 진입이 제한됐던 소수문화 장르의 미디어로서 선택 활용되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콘텐츠를 기반으로 하는 미디어로서의 인터넷은 현재로서는 최하위 유통창구의 역할을 수행 중이다. PC게임을 제외 한 영화, 음악, 애니메이션 등과 마찬가지로 만화도 이미 다른 유통망을 통해 상품으로서의 역할이 소진된 콘텐츠의 마지막 리사이클링recycling 창구로 인터넷을 활용하고 있다.


4. 인터넷콘텐츠

콘텐츠contents의 사전적 의미는 내용, 알맹이, 목록을 의미하고, 만족시키다, 기쁘게 하다 등의 뜻을 갖는다. 일반적으로 소프트웨어에 담긴 정보나 통신망을 통해 흘러 다니는 디지털화 된 정보를 뜻한다. 다시 말해 기반 기술과 환경 위에서 보여줄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물로 문자, 영상, 소리 등의 형태로 제작 가공된 정보 상품이 곧 콘텐츠이다.

정보통신 혁명이 구축해낸 것이 하드웨어적인 측면의 미디어 기기였다면 이를 채우는 것은 소프트웨어적인, 문화적인 측면의 콘텐츠이다. 디지털시대의 도래를 지식기반 사회(또는 경제)라 하고, 문화의 세기라 규정하는 것은 정보통신기술이라는 물적 기반이 꽃 피우기 위해서는 콘텐츠라는 알맹이가 필연적인 탓이다. 디지털 시대에 있어 콘텐츠가 화두가 되는 것은 아날로그 세계를 논리적인 숫자의 나열로 코드화한다는 디지털의 개념 자체가 곧 콘텐츠인 까닭도 있다. 즉 하드웨어든 소프트웨어든 간에 콘텐츠의 제작, 유통, 소비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모든 무형의 산물이 콘텐츠임과 동시에 그 집합체가 곧 디지털 시대의 틀이다. 따라서 디지털 사회의 성공은 콘텐츠의 질과 양에 따라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콘텐츠는 특성에 따라 멀티형, 축적형, 쌍방향형, 실시간 정보형, 수집・갱신형 콘텐츠로 분류될 수 있다. 일본 멀티미디어 포럼에 의해 제시된 이와 같은 분류기준은 인터넷의 기술 환경 발전과 이에 대응하는 응용 콘텐츠의 발전으로 분류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만화콘텐츠는 영화, 음악, 도서, 애니메이션 등과 마찬가지로 한번 제작되면 다양한 유통경로를 통해 반복적으로 소비가 가능한 멀티형 콘텐츠에 해당한다. 이를 담고 있는 인터넷 만화사이트web site는 만화콘텐츠를 테이터베이스화 하는 축적형 콘텐츠의 모습을 하고 있고, 콘텐츠를 소개하고 콘텐츠 이용자들의 이용관련 게시물과 작품관련 정보를 담고있는 작품 소개 페이지web page는 상술한 콘텐츠의 분류 유형들을 동시에 담고있는 복합형 콘텐츠가 된다. 이처럼 인터넷 콘텐츠의 성격은 단선적인 활용과 소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제공자와 사용자의 요구에 의해 다양한 상품화 유형으로 진화되는 대표적인 문화상품이다. 인터넷 콘텐츠의 가장 큰 특징인 접합conjugation의 개념은 기존 정보의 단순 재가공을 넘어선다. 즉, 기존의 미디어를 통해 구현됐던 원본 콘텐츠를 인터넷을 통해 구현하기 위한 노력이 인터넷상품 이외의 새로운 상품군을 만들어내는 동기가 된다. 인터넷의 기술적 진보에 맞춰서 재구성된 개별 상품은 인터넷의 기조처럼 분산 집중화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품화’ 모델을 구축한다. 디지털화 된 상품은 사용자의 요구와 활용도에 따라 다른 창구로의 접합이 계속되면서 순차적인 상품화를 이룬다. 디지털 미디어, 디지털 콘텐츠로서의 만화 역시 이와 같은 유형의 접합식 발전 모델을 보여준다.


5. 디지털 시대, 인터넷 콘텐츠 시대의 만화

매체산업에서 콘텐츠가 최초 창작자로부터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의 과정을 시간의 순서대로 나열하면 소재 창작creation, 개발 제작production development, 재가공packaging의 ‘생성단계’와 유통distribution, 소비자 접촉consumer interface로 이어지는 ‘배급단계’로 나눌 수 있다. 이중 콘텐츠의 생성단계는 디지털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기존의 아날로그 방식을 부분 대처하는 방식으로 이미 보편화되었다. 재가공을 포함한 배급단계는 수익의 창출 지점임과 동시에 가장 높은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과정이다. 유통업자들은 대개 이 단계에서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해왔고 작가와 소비자 사이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형성해왔다. 그러나 인터넷의 출현과 기술환경, 사용환경 등의 발전은 이의 재편을 요구하고 있다.(그림5)

전통적인 매체 산업인 만화잡지의 경우 시장의 규모에 따른 지면의 한계로 인해 작품 발표의 기회 자체가 제한적이었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시장의 요구에 따라 협소한 만화계 내부에서 조차 주류와 비주류가 갈리고 상품의 논리에 작품이 가려지는가 하면 시장 장악력을 가진 몇몇 출판사와 유통 조직에 의해 작가의 작업이 결정되는 등의 문제점을 보여왔다. 또, 잡지 연재 후 단행본만화 발간이라는 정해진 틀과 책 대여점, 만화방, 서점이라는 국한된 유통 통로, 이를 장악하고 있는 총판이라는 기형적 만화도서 배급 시스템이 작가와 잡지사 또는 출판사로 돌아와야 할 부가가치를 부당하게 착취하고 있다는 지적도 높았다. 이는 작가와 출판사의 노력에 대한 회수의지를 말살시켰고, 콘텐츠의 장기적 저급화를 초래하는 한편 우리 만화상품의 고질적인 ‘1회성 소비 상품화’를 불러왔다. ‘만화는 한번 보면 끝’이라는 식의 인식이 작가, 출판사, 소비자 사이에 팽배해짐으로 인해 다양한 유통창구로의 진입이 가능한 콘텐츠조차도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시장의 시스템과 논리에 의해 사라져 버리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기존의 오프라인 유통망이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반면 인터넷에서의 만화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변화와 혁신을 예고한다.(그림6)


첫째, 생산과 유통창구의 일원화.

현재 국내 만화관련 사이트는 2만 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검색사이트 「라이코스」에 등록된 만화관련 사이트만 4,327개에 이를 정도이고 작품을 수록하고 있는 사이트가 332개에 이른다.

이중 대다수가 잡지나 단행본만화 등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지 않고, 특별한 등단 절차 없이 컴퓨터를 통해 작업을 하고, 인터넷을 통해 작품을 배포하고 있다. 몇몇 기성 작가들도 이에 따라 자신의 작품을 무료로 유통하면서 작가 이상의 지위를 확보해가고 있다.(그림7)

최근 무명의 젊은 작가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만화를 유료 서비스로 전환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봉성, 박명훈, 천계영, 문정후 등은 개인 사이트에 자신의 작품을 주요 콘텐츠로 올리고 광고, 만화강좌 등 개인적인 사업 전개를 위한 홍보 등의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 이중 천계영은 순정잡지 ‘윙크’에 연재중인 <오디션>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수록하는가하면 인터넷 만화포털 사이트 「코믹스투데이」의 웹진web magazine에 동시 발표한다. 잡지사와의 마찰에도 불구하고 유통창구를 작가 스스로 선택하고 디지털판권의 활용에 대한 선례를 구축한 것이다. 박봉성의 경우는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봉성 기획’의 작품만으로 대형 인터넷 만화방을 구축하고 별도의 신작을 연재하면서 생산과 유통을 일원화시킨 선례를 만들었다.


둘째, 유통 흐름 변화.

최근 오프라인 출판시장에서 성인만화잡지가 자취를 감춘 것과는 대조적으로 성인 콘텐츠의 유료소비가 일반화되고 있는 인터넷에서의 성인만화는 잊혀졌던 만화방 작가들의 새로운 전성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만화방에서도 자취를 감춘 김철호, 고행석, 장훈, 조명훈 등의 과거 작품이 여전히 소비되고 있는가 하면 인터넷 서비스를 위해 다시 창작 일선에 뛰어드는 과거의 작가들이 생기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단행본만화 출간 이후 인터넷으로 연결되던 유통창구의 흐름이 뒤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온라인 만화웹진comics webzine의 출현에 따른 연재작품의 출판(단행본)과는 별개로 순수하게 인터넷 발표를 목적으로 작업한 단행본 분량의 작품 서비스가 늘어나고 있다. 이들 작가들의 경우 출판사나 인터넷 만화 업체와의 독점 계약을 거부하고 대형 콘텐츠 사이트에 개인 CP(content provider) 자격으로 작품을 서비스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단행본만화 출간은 인터넷 서비스 후 결정하겠다는 계획이다.(그림8) 즉 인터넷의 출현이 생산과 유통의 또 다른 축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과 유통을 지탱할 수 있는 소비 환경으로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  


셋째, 새로운 소비 시스템 구축.

상기한 것과 같은 인터넷 시대의 만화 유통시스템은 저작권에 대한 확실한 보호장치가 없고, 파일의 무단 복제나 배포에 적극적인 인터넷 문화를 통해 볼 때, 기존의 대여시장-빌려보는 방식으로 작가와 출판사에는 아무 혜택이 없는-유통시스템을 혁신적으로 바꾼다 기보다는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장소만 변경하거나 늘린 꼴로도 보여진다. 그러나 작가가 출판 인세 10%를 갖고, 출판사가 출판정가의 65%에 총판에 넘긴 책을 대여점주가 80% 정도의 가격으로 구매해서 책 정가의 10%를 받고 대여가치가 상실되는 기간까지 빌려주어 차익을 남기는-작가, 출판사, 총판에 대여수익이 분배되지 않는다-전통적인 만화시장 구조와 이를 1회 빌려보고 마는 소비구조에 인터넷 만화업체는 반기를 들고 있다.

단행본만화의 경우 페이지 뷰page view와 판매율에 의거 대개 30% 정도의 인세를 분기별로 지급한다. 또, 몇몇 인터넷 만화관련 업체들을 중심으로 작가와 인터넷업체와의 계약이 아닌 작가-출판사-인터넷 업체간의 계약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고 있어서 기존의 총판 중심 오프라인 유통시스템에 위기감을 줌과 동시에 작가와 출판사가 새로운 유통 흐름의 변화에 참여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직 온라인의 전반적인 소비시장 규모가 기존 오프라인 시장에 비할 바가 아닌 탓에 구비하는 콘텐츠의 수준이 자체적인 경쟁력을 갖지 못하고, 출판사의 총판→만화방/책대여점 의존도가 높은 만큼 시장 개편을 주도하지 못하고 있으나 작가의 저작권과 출판사의 판권 행사 측면, 인터넷 만화시장 활성에 따른 만화대여 시장의 축소 등 기존 소비 시장의 개편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6. 전자출판, 그리고 디지털만화

컴퓨터가 출판에 적극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하면서 출판은 사양산업이라는 괄시에서 벗어나 새로운 잠재력을 가진 업종으로 이해되고 있다. 출판매체에서 컴퓨터 기술이 적용되기 시작한 1960년대 이전까지의 출판은 1450년 경 구텐베르크에 의해 발명된 활자 인쇄술이 개발됐을 때의 개념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1950년대에 활자를 이용하지 않고 사진의 원리를 이용하여 문자를 생성하는 사진식자기photocomposition가 출현하면서 출판 제작환경의 변화가 주도됐지만 작업공정이 까다로워 금속활자를 완전히 대체하지 못했다.

컴퓨터를 출판에 활용하려는 노력은 우선 출판물을 제작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했던 식자와 조판과정을 전산화하려는 결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1964년 미국 국립의학도서관이 의학문헌의 색인목록을 담은 ‘인덱스 메디커스Index Medcus’의 조판 작업에 컴퓨터를 이용한 전산사식computrized photocomposition을 이용함으로써 출판은 컴퓨터 기술을 기반으로 한 체질 개선에 들어갔다.

1970년대 초반 제록스의 팔로알토Xero’s Palo Alto 연구소에서는 출판물의 레이아웃을 작업하기 위한 컴퓨터 시스템이 개발됐고, 1978년 일리노이 대학의 랜카스터 교수는 개인용 컴퓨터에서 원고 편집과 인쇄가 가능한 탁상출판Desk-Top Pubrishing 개념을 생각해냈고 알토의 차기 버전인 스타시스템은 WYSIWYG(What You See Is What You Get) 방식을 적용 컴퓨터 화면에서 페이지 작업을 하고 이를 그대로 프린트 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는 이를 대표적인 DTP 시스템인 매킨토시Macintosh의 초기 버전 리사Lisa에 부분 적용한다. 1985년 편집 소프트웨어 페이지 메이커와 인쇄, 서체 등과 관련된 응용 상품이 개발되면서 DTP 시대의 막이 열렸다.

일반적인 개념의 전자출판이라 함은 상기한 것처럼 전통적인 출판물(paper publishing)의 제작을 위해 초기 제작과정을 전산화한 형태를 이른다. 그러나 캘거리 대학의 스탠던은 ‘출판되는 모든 것이 전자적 형태로 제작되거나, 제작된 것이 최종적으로 전자적인 생산물로 나오는 개념’으로 전자출판의 영역을 확장한다. 즉 전자출판을 크게 종이를 사용하는 출판물과 종이를 사용하지 않는 출판물(paperless pubrishing)로 구분하고 종이를 사용하지 않는 새로운 유형의 출판형태를 다시 CD-ROM 기반의 패키지형과 PC통신,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온라인형으로 분류한다.

새로운 출판형태의 대중화는 전송망의 구축이 필연적인 온라인형 보다는 패키지형이 앞서 있으나 실 발전과정에서는 온라인형이 패키지형을 앞선다. 이미 1950년대부터 일부 과학자들과 전문가들은 연구소간의 자료교환이나 전자적인 서신교류를 위한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고 전산조판 시스템을 이용하여 발간된 책의 내용을 온라인을 통해 검색할 수 있도록 했다. 1976년 미국 뉴저지 공과 대학에서 ELES(elctronic infomation exchange system)을 개발하면서 원고의 작성, 교정, 본문 편집, 본문 내용의 온라인 전송과 검색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1984년 영국의 Learned Infomation사에서는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한 전자잡지Electronic Magazine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전자잡지는 출판물이 통신으로 전달될 수 있음을 선구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되었다. 1980년대 이후 컴퓨터 통신망이 활성화되자 많은 출판사들이 이미 종이로 인쇄되어 출간된 출판물(print publication)의 내용을 텍스트 중심으로 통신망에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프로디지, 아메리카 온라인, 컴퓨서브 같은 대형 컴퓨터 통신망을 통해 이용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터넷의 활성은 멀티미디어 기능이 추가된 진보적인 형태의 전자출판물의 대중화를 일궈냈다.

패키지형 전자출판물로 분류되는 CD-ROM(Compact Disk-Read Only Memory) 출판물은 1982년 소니와 필립스사가 대용량의 데이터를 보관하기 위한 목적으로 켐펙트 디스크Compact Disk를 개발하면서 본격화됐다. 초기에는 음악 저장 매체로 사용되다가 차츰 이미지, 동영상, 텍스트 등의 다양한 정보양식을 담을 수 있는 포멧으로 발전하면서 대용량 멀티미디어 출판이 가능하게 됐다.

협의의 전자출판이 전자출판 시스템을 이용하되 최종적인 결과물은 종이를 사용하는 것이고, 광의의 전자출판이 종이를 이용하지 않고 이른바 ‘디지털 잉크’를 이용한 것을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전자만화 또는 디지털만화의 개념 정립도 이를 통해 구할 수 있다. 만화는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출판매체의 한 부분으로 전자출판의 발전과정과 함께 한다.

전통적인 출판 제작 과정은 원고작성→교정・교열→조판→레이아웃・대지작업→제판→인쇄→제본 등의 과정을 거친다. 전자출판 시스템의 출현으로 이 과정은 원고작성→편집・교정→인쇄→제본의 과정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전통적인 만화 출판과정 역시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흑백 톤의 만화 이미지 원고를 중심으로 편집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까닭에 ‘전자출판혁명’은 현재까지도 만화제작 환경과는 무관한 것처럼 이해되고 있다. 각 출판사별로 제작과정의 차이는 있으나 텍스트나 이미지 등을 중심으로 한 신문, 잡지의 출판을 제외하면 만화책만화의 경우는 표지와 식자 작업에 제한적으로 전자출판 시스템이 적용된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만화 부분의 컬러지면이 늘어났고 작가들이 컬러원고 작업에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을 이용하면서 원고작성과 편집・교정 과정에 전자출판 시스템을 적용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최근에는 제작과정 전반을 전자출판 시스템을 이용해서 출판하는 경우도 있다.

전자출판의 개념을 빌어 종이에 인쇄된 것과 종이에 인쇄되지 아니한 것을 전자출판만화로 폭넓게 규정한다면 종이를 필요로 하는 방식의 만화는 작가가 원고지에 창작한 작품을 스캐너를 통해 디지털화 한 뒤 컴퓨터 편집 프로그램에서 식자 등의 편집을 진행하고 그래픽 프로그램을 통해 컬러 작업 및 이미지 편집 작업 등을 진행한 뒤 인쇄와 제본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고, 종이를 필요로 하지 않는 방식의 만화는 인쇄와 제본 과정 대신 새로운 전자출판의 유형과 같이 패키지형과 온라인형으로 나뉘어 각 제작과정을 통하게 된다. 종이를 필요로 하지 않는 전자출판이 텍스트를 기반으로 온라인형부터 발전했던 것과는 달리 이미지 기반의 고용량 데이터가 필연적인 전자출판만화의 경우는 CD ROM을 이용한 패키지형 상품이 먼저 등장했다. 이를 만화상품 발표 시기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는 멀티미디어 기능을 탑재한 개인용 PC의 보급과 CD미디어의 대중화로부터이다.(그림9) 만화의 디지털화를 위해 준비한 최초의 미디어였던 CD롬 타이틀은 출판만화가 지닌 고유한 특징을 그대로 복원시키는 한편 사운드와 자동 책장 넘기기, 확대해서 보기 등의 편의기능을 추가한 형태로 출시됐다. 1992년 일본에서는 컴퓨터의 멀티미디어 기능이 강화되면서 만화를 CD에 담은 상품 출시가 줄을 이었다. 당시 슈에이샤가 《소년점프》의 작품 중 일부를 라디오 드라마형식으로 구성한 ‘카세트로 듣는 책’을 출시해서 높은 판매고를 보이자 텍스트 기반의 소설, 대중적인 지지도가 높은 만화 등을 CD에 담아 상품화하는 바람이 불었다. 국내에서는 93년 월드픽쳐, 코리아실렉트웨어 등에 의해 강철수, 박원빈, 신문수 등의 작품이 CD롬화 됐고, 96년 드림테크www.dreamteach.net, 하늘소, 선도정보통신 등에 의해 본격화됐다. 2000년 조이코믹스www.joycomics.co.kr는 임재원의 <짱>, 전세훈의 <슈팅> 등의 작품을 통해 만화의 CD롬 화를 재시도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두 번째로 등장한 것은 PC통신의 발달과 이미지압축 기술의 진보를 바탕으로 14.4Kbps 모뎀환경에서 구독 할 수 있게 한 통신만화이다. 이 만화는 기존의 스캔scan을 통한 비트맵bitmap 이미지 방식을 벗어나 원본 이미지를 컴퓨터 프로그램 상에서 다시 그리는 벡터vector 이미지 방식을 적용해서 파일의 크기를 최소화 시켰으나 상대적으로 높은 제작비용을 감수해야 했고 동일한 굵기의 선으로 재현된 이미지와 16색깔의 제한 된 컬러 표현 등의 문제를 보였다.(그림10) 1993년 에이텔(주)가 운영하는 PC통신서비스인 포스서브 등을 통해 시작된 만화의 통신서비스는 (주)나이스인터넷 www.nicenet.co.kr에 의해 본격화됐다. 이들 업체에 의해 종이 이미지를 최적화할 수 있는 테이터화 작업 단계와 최적화된 이미지를 빠르게 전송할 수 있는 옵티마이징 단계의 해법을 찾기 위한 움직임이 구체화됐다. 초고속 통신망 시대에 와서도 이 부분은 풀어야 할 숙제 중 하나로 남아있다.

세 번째는 인터넷의 출현과 함께 한다. 국내 인터넷 만화 서비스의 최초 모델은 1996년 (주)한아름닷컴의 「인터넷만화방」에서 비롯됐다. 「인터넷만화방」은 만화방 작가들을 중심으로 최근까지 활발한 인터넷 만화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미 출간된 만화책만화를 스캔해서 서비스하는 것을 기본으로 컬러링을 하거나 사운드를 삽입하고 사진이나 3D, 동영상을 덧붙이는 등의 형식 실험이 이뤄졌다. 인터넷 만화 서비스 업체의 본격적인 등장은 인터넷 발표를 목적으로 제작된 다양한 유형의 작품들을 출현시켰다. 그러나 인터넷 미디어에 이르러서도 만화는 올드미디어old media로 대표되는 책의 장점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주)사이언북 www.cyonbook.com은 gif 애니 방식을 뷰어에 적용해서 전자책에서 실물 도서처럼 책장이 넘어가는 느낌을 전달하겠다는 아이템으로 사업을 전개했다.

외형적인 개념의 책이라는 미디어와 뉴미디어와의 접합만을 염두에 두고 소비자들의 익숙함에 기대겠다는 전략이기도 했으나 기술 표현력의 한계나 소규모 프로젝트의 진행으로 책 이상의 효과를 주지 못했고 비용 대비 수익의 한계도 새로운 미디어의 적극적인 활용을 막아서는 역할을 했다. 이로 인해 인터넷의 등장과 초고속 통신망의 출현이 오프라인 공간의 만화방을 온라인에 옮겨 논 것에 불과하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그림11)

네 번째는 플래시flash만화이다. 플래시 만화는 인터넷의 표현력을 높여준 메크로미디어의 플래시라는 그래픽 프로그램의 등장과 프로그램 활용법의 대중화가 만들어낸 독특한 장르이다. 플래시만화는 출판만화를 기반으로 무빙툰moving toon의 개념을 도입했던 클럽와우www.clubwow.com에 의해 본격화됐다. 플래시애니메이션이 일반적인 표현이지만 초기 「클럽와우」는 출판만화 원작을 출판만화의 개념에 입각해서 플래시로 응용한 작품을 서비스 해 왔다. 동작의 개념이 강한 애니메이션과 구분하기 위해 이미지의 단순 이동성을 강조한 플래시 작품을 무빙툰 또는 플래시만화라고 한다. 「클럽와우」의 플래시만화는 고정된 프레임을 사용하는 플래시애니메이션과 달리 프레임 안에 프레임(컷 개념)을 도입하고 문자를 동작과 사운드의 대리 코드로 활용하는 등 만화적 기법 활용의 모범을 보였다.(그림12)

이 업체의 서비스 이후 플래시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활용법이 인터넷을 통해 공유되면서 수많은 네티즌들이 플래시 만화 또는 애니메이션의 예비 창작 진으로 활동하는 계기가 됐고, 플래시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한 창작물의 홍수 현상을 만들었다. 이들 작품은 기존의 만화가 소리와 움직임을 시각적(효과음을 이미지 활자화하여 소리의 느낌을 전달하고 동작 및 운동감을 선으로 묘사하여 전달)으로 가장했던 데 반해 소리와 동영상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새로운 디지털만화의 매력을 보여준다. 출판만화를 원작으로 출발했던 플래시만화의 출현은 이후 플래시카드, 플래시 애니메이션 등의 장르로 발전했고, 웹사이트 상에서 만화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동영상 이미지의 활용을 촉진시켰다.(그림13)

다섯 번째로 가장 최근에 등장한 개념이 모바일mobile만화이다.(그림14) 바둑판 모양의 이미지 저작도구(SIS)에서 모노 톤의 점들을 연결시켜 만화 이미지를 구성하고 단순한 동작이나 문자를 삽입한 컷만화의 형식을 취한다. 무선 인터넷 접속기능이 있는 휴대전화(셀롤러폰 또는 PCS)의 액정화면을 통해 서비스하고 있다. 모바일만화는 일본의 무선휴대전화 콘텐츠 서비스로 유명한 NTT Docomo의 만화캐릭터 전송 서비스를 모델로 한다. 무선인터넷표준(WAP, wireless application protocol)에 따르고 있어서 왑만화로 불리기도 하고 폰만화라고도 한다. 현재 모바일만화는 무선자바기술의 도입과 휴대전화의 액정화면 확대, 컬러 지원 등으로 더욱 다양한 작품 형식이 등장하고 있다. 모바일만화의 현재적 개념은 무선인터넷 접속기기의 다변화와 함께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PDA, web-pad, eBook device 등 모바일만화의 소비시장은 갈수록 확대될 것이고 이동성을 확보한다는 개념이 접합되면서 새로운 방식의 ‘만화 보여주기’와 ‘읽기’ 모델이 제시될 전망이다.

이상과 같이 종이를 필요로 하지 않는 전자출판만화는 패키지형(오프라인계)과 온라인형(PC통신계, 유선인터넷계, 무선인터넷계)으로 구분될 수 있다.

이를 기준으로 전자출판의 한 영역으로서 전자출판만화를 정의한다면 협의의 전자출판만화는 종이를 필요로 하지 않고 새로운 출판환경으로 떠오르는 패키지형과 온라인형 전자출판만화를 뜻 할 것이고 광의의 전자출판만화는 전자출판시스템을 이용해서 전통적인 출판 제작과정을 단순화시킨 ‘종이전자출판만화’를 포함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디지털화의 개념을 중심으로 접근한다면 크게 스캔만화와 컴퓨터만화로 구분 할 수 있다. 이미 출간된 만화를 스캐너를 이용해서 패키지형이나 온라인형으로 배포할 목적으로 디지털화 시킨 것이나 컬러 작업 등의 편집과정을 거쳐 인쇄나 전자적 목적으로 종이에 그려진 초기 상태의 원고를 디지털화 시킨 것이 스캔만화이다. 이와 달리 컴퓨터만화는 종이에 그려진 원고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 컴퓨터 화면을 중심으로 전자적인 방법으로 그려진 2D나 3D 그래픽만화, 플래시만화, 왑만화 등을 들 수 있다.

이를 통해 디지털만화의 개념에 접근하면 디지털만화는 종이를 필요로 하지 않는 패키지형과 온라인형의 전자출판만화와 인쇄와 전자적 배포 방식을 위해 디지털로 전환된 스캔만화 그리고 컴퓨터를 이용해서 순수하게 전자적인 방법으로 그려진 컴퓨터만화라 할 수 있다.


 코믹존/2001-03-30 게재


잘가라종이만화/ 시공사/ 2001 게재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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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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