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애니메이션 봤으니... 즐기게 해주소
볼 길이 없어 예술이 됐다
세상에 단편보다 재미없는 것이 있을까? 단편소설이야 장편소설을 읽기는 두렵고, 문학이 곧 ‘학문의 길’, ‘공부의 길’과 닮아있어서 모른척하기도 뭐하고 해서 짧게라도 읽어보려 든다지만 이 놈의 단편 영화나 단편 애니메이션은 도무지 볼 이유가 없다. 막 말로 졸라 재미가 없다. 재미가 없으면 노력하지 않고서라도 볼 수 있게, 보게 만드는 환경이 필요한데 열정 밖에 없는 딴따라들인지라 이 단편을 만드는 양반들은 그런 꽁수도 못 부린다. 관객이 눈품, 다리품 팔며 그야말로 울며불며 사정해서 기어이 발견해야 볼 수 있다.
뭐 도토리 키 재기긴 하지만 그래도 몇 년 사이 단편영화는 ‘빼어난 미학적 성취’를 이룬 작품들도 있고, 이들의 작업 노하우가 곧바로 상업영화로 이식되는 등 일단 이슈에 비견할 만한 작품들이 제출되고 있는 듯하다. 대중의 손에 카메라가 넘겨지고 별 잡것들의 홈비디오 열풍이 몰아치기까지 ‘전 국민적 영화만들기’가 ‘쓰레기 단편 영화 분리’의 방법을 알게 한 탓일까? 그러나 고작해야 대학 졸업 작품 정도로, 교수 똘마니들의 열정으로 만들어지는 게 대부분인 단편 애니메이션은 여전히 장례식장 아니면 서커스장이다. 아니 무슨 대단한 작품활동을 한 흔적들이라고 성지 순례하듯 쫏아 다니며 봐야하고, 또 뭐 그리 대단한 예술을 한다고 고작 3분에서 길면 10분인 필름을 보는데 경건한 마음을 갖게 한단 말인가.
지위없는 작가와 작품이 쏟아진다
이 재미없는 단편 애니메이션을 앉은자리에서 볼 수 있게 됐다. 한시적이긴 하지만 그나마 애써 찾아다니면서 한편 씩 봐 둔 것들이 무슨 계급장 취급을 받던 시절보다는 많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다. 반쪽이 최정현 정도로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는 독립적이고, 단편틱한 애니메이션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은 컴퓨터의 내외적 환경 발달로부터라고 봐도 무관할 듯 하다. 대 선배 취급을 받는 나기용, 전승일 등이 2D를 기반으로 한 컴퓨터 애니메이션 제작에 불을 당겼고, 이후 급속도로 보급된 멀티미디어 홈PC가 컴퓨터 유저들을 초소형 애니메이션 창작자로 전환시켰다. 포토샵에서 애니메이터, 플래시에서 디렉터까지 불법 응용프로그램의 보급소 역할을 자처한 각종 애니메이션 교육기관들의 역할도 한 몫 단단히 했다.
어쨌든 계급장과 돈 없는 이들의 투철한 사명감 또는 열정 따위에 의해 가려져 적절한 평가 선상에 오르지 못했던 작품들을 확인 할 수 있게 됐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물론 이 역시 인터넷의 무정부적 권력이 행사된 사례이다. 땅 값없이 인테리어비만 있으면 상영관이 만들어지니까.
의식의 흐름을 따르라 강요 말고, 동화되게 해줘라
매년 100여 편 이상의 창작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내면서 종 수면에서 부끄럽지 않게 내달리고 있는 국내 단편애니메이션 창작자들이 개최한 ‘2001 애니마포럼’ 애니메이션영화제가 인터넷상에서 열렸다. ‘또 하나의 가족’이라며 꼬드기는 삼성의 TV CF를 재현 대한민국 영상만화대전 대상을 수상해버린 <아름다운 시절>(MG world), 고양이의 가출상담에 개소리로 답하는 멍멍이의 술자리를 미치도록 심각하게 승화시켜 히로시마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신인상을 수상한 <존재>(감독 이명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으니까 ‘따라 올 테면 따라와 봐’라고 비아냥거리는 <메모리퍼즐>(깻잎), 피곤한 가장의 스트레스 해소용 여성 훔쳐보기 취미를 눈깔의 확장으로 극대화시킨 <Open Your Eyes>(김면수) 등의 작품 50여 편을 소개한다. 아무 때고, 누구라도 넷과 연결만 되어 있다면 볼 수 있는 온라인 상영관은 이 행사를 후원한 알타비스타 코리아와 예카씨네 사이트에 위치하고 있다.
독립 또는 단편 애니메이션이 재미없는 가장 큰 이유는 오랜 관람 습관에 따라 스토리를 따라가기 때문일 것이다. 대다수의 이미지가 만들어져있는 대상을 촬영하는 실사영화와는 달리 모든 것을 새롭게 모방하고 이미지화해야 하는 애니메이션 작업, 그것도 길어야 10분 내외의 단편 작업은 오히려 이를 불경스러운 것으로 인식한다. 몇몇 작품들은 에피소드 전달을 목적으로 상황 중심적 전개를 만들어 가기도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작가들은 “창작자의 의식흐름과 화면연출, 표현도구, 재료 선택에 따른 실험성에 주안점을 둔다”고 말한다. 그러다보니 단편을 본다는 의미는 “창작자의 의식이 동기화되는 이미지를 찾는 것”과 같은 것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일종의 숨은 그림 찾기이고, 말 칸 맞추기 게임이다. 이 지경이라면 단편 애니메이션은 여전히 소수그룹의 문화, 자기 위안의 축제, 취직을 위한 이력서 꾸미기로 그칠 수 에 없다.
그래서 누군가 관객이 의식의 흐름을 쫓아가게 하지 말고 그 ‘의식의 흐름과 실험성’에 동화되게 할 수 있는 작품으로, 한참 후에나 ‘아하 그렇구나’하고 깨닫게 하는 작품 말고 엔딩 타이틀이 오를 때면 작품의 감동을 상기할 수 있는 작품으로 재미를 쟁취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런 작가와 작품이 오기를 바란다. (끝)
씨네버스, 2001-02-06 게재
잘가라종이만화, 시공사, 2001 게재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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