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단편만화예찬 그리고 춘몽, 웹진 코믹존, 2007.2.5


만화! 한 권도 많다


250여 페이지, 한 권으로 끝나는 작품을 ‘장편만화’라고 할 때가 좋았다.

전후 또는 상중하로 끝나는 작품을 ‘장편극화’라고 할 때가 좋았다.

다섯 권짜리 작품을 ‘장편서사극’이라 하고, 이걸 시리즈로 엮을 때도 좋았다.

알록달록 책꽂이에 들어선 소장본 만화책들을 바라보는 것이 진짜 좋았다.

10권, 30권, 50권을 넘는 작품이 나왔다. 

그걸 사들 고와 일렬로 진열했다. 

우리아빠 서재에 각 잡힌 군대처럼 들어선 세계문학전집을 보는 것 같았다.

그 후론 만화책을 모으지 않는다. 

그 후론 만화책을 일으켜 세워 책꽂이에 두지 않는다.

50여권 짜리 만화책은 살수도 모을 수도 없는 공공미술작품 같다. 

모두 같이 쓰는 물건이니 아껴 쓰고, 깨끗하게 쓴 뒤 돌려줘야 될 것 같다.

그래서 만화책은 평생 만화 같은 대우나 받는다. 

만화의 감동을 떠올릴 수 있을법한 일러스트나 사진, 포스터 등을 모았다. 

영화화된 만화의 비디오테잎, 게임화된 만화 또는 전자책화된 만화의 CD롬 이런걸 모았다.

경제적으로. 

그러다 보니 50권 짜리 만화책에 쓰이는 종이가 아깝다. 

환경적으로.

그리고 3권 정도 분량의 초기설정 부분에서 뻔히 드러나는 이야기를 반복 확대시키는 작가와 출판사가 싫다. 

상품적으로.

그걸 좋다고 시간을 투자하며 공을 들여 읽어내는 독자들도 싫다.

인식적으로.

그래서 요즘은 단편만화를 찾는다.

성차별은 진짜 싫어하지만 묘하게 여성작가들이 단편작업을 많이 한다.

그리고 쉬지 않고 단편모음집을 발표한다. 

한 권으로.

이 한 권의 책들은 다시 내 책꽂이에 들어선다. 

각기 다른 한가지씩의 의미를 지니고,

각기 다른 한가지씩의 의지를 지니고.

한 권으로 된 만화책이 예찬되는 상황을 반기는지 구독환경에도 변화가 보인다.

갑자기 인터넷으로, 디지털로 변화되는 만화작품들. 

거대한 작품들이 하나의 파일이름 속으로 들어간다. 

그것도 좋다.

인쇄출판만화는 인터넷과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더욱 공을 들여 발행된다. 

그것도 좋다. 

공을 들이다보니 지면 늘리기보다는 심혈을 기울인 한 칸 한 칸이 작업되고, 책값이 올라간다. 

그것도 좋다.  



단편만화 예찬 - Teru Miyamoto, <춘몽>. 시공사 1999, Seiki Tsuchida 원작소설


‘테츠오 사는 방식이 곧 죽는 방식이다.’

테츠오. 그가 가진 캐릭터는 한없이 가녀리다. 

매일매일 보기 싫은 사람을 만나야 하니까. 

그 곤혹스러움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으니까. 

그것이 어머니를 위협하고 자신을 공포에 떨게 하니까.


<춘몽>. 봄의 꿈/ 만화소설이라는 부제가 붙은 세계에 테츠오가 있다. 아버지가 진 빚 때문에 어머니와 함께 사채업자들에게 쫓겨다닌다. 아버지라는 이름 때문에 피할 수도 없고, 딱히 피할 방법도 없다. 어딜 가든 사채업자들은 테츠오 앞에 서있다. 어딜 가든 아버지의 이름으로 테츠오를 곤란하게 만든다. 대학을 포기해야 하고, 여자친구도 떠날 것 같다. 갑자기 찾아든 재앙 때문에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다. 

몸의 장기를 팔아서라도 빚을 해결하라는 사채업자들. 

야밤도주를 한 첫날 밤. 

우연히 벽면을 타고 지나던 도마뱀의 몸에 못을 박는다. 

아버지의 삶이 테츠오의 몸에 못을 박은 것처럼 테츠오는 도마뱀의 몸에 못을 박는다. 죽지않고, 죽지않고 살아있는 도마뱀. 그를 위해 먹이를 준비한다. 그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익히고, 그의 생명선을 연장시킨다. 테츠오는 아버지가 자신을 살아있게 한 방법 그대로 도마뱀을 살아있게 한다. 자신의 손을 떠나서는 도저히 살아질 수 없는 도마뱀. 죽어도 상관없는 도마뱀. 테츠오는 살아있게 한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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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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