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만화문화 <만화 & 경제편>
만화의 발전은 만화의 매체적 특수성과 효용성을 인식한 선각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신문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처음 대중과 눈맞춤을 시작한 만화. 정보 전달 수단으로서 글이 지니는 위상을 만화가 꺽진 못했지만, 만화는 글 이상의 효과를 발휘했다. 그 어떤 기사보다 만화는 정확하고 빠른 정보전달력을 보였고, 그 어떤 명문보다 강한 웅변력을 보여줬다. 즉시적인 전달력을 매체의 장점으로 하는 만화가 선형적 이해구조를 취하는 글을 앞지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 당연함의 정체는 1909년 <대한민보> 창간호에 이도영이 1칸 만화 형식의 '삽화'를 연재하면서부터 알려졌다.
만화경제의 출발, 하부 장르의 생성
1923년 <동아일보>는 독자 투고만화를 게재했다. 이제 만화는 전문인의 영역에서 벗어나 대중의 자유로운 창작활동에 가담하기 시작한다. 프로와 아마추어가 공존하고, 기성의 것과 날것의 어우러짐이 만화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그 흐름의 여파가 문화산업의 현재를 가능하게 했다.
당시의 만화작품은 전후세대 아이들에게 새로운 꿈과 도전정신을 심어주었다. 만화 대중화의 필요성은 만화제작인력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김길영은 만화학원의 효시랄 수 있는 <만화연구소>(1959년)를 설립했다. 종이만화의 매체적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일군의 노력은 만화영화라는 새로운 개념정립을 위해 노력한다. 1958년 디즈니의 만화영화 <피터팬>을 개봉했고, 두 해 뒤에 신동헌은 국내최초의 만화영화('진로소주광고', 1960년)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일인구독 형태를 취하는 종이만화가 다수시청 형태로도 가능함이 입증된 것이다. 신동헌의 활약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그것이 '상품을 위한 상품'이었다는 점이다. 이 시기에 만화의 상품성은 날로 높아져 약 25개소의 만화전문출판사가 운영됐다.
1970년대는 만화영화 제작이 성행했다. 만화영화는 대규모 자본과 인원의 투자가 절대적인 분야. 이 분야의 제작붐은 만화의 산업적 영향력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최근 다시 제작 중에 있는 김청기의 '로봇태권V'는 이 시기가 만들어낸 대표적인 문화상품. 만화캐릭터 부착상품의 유행도 이 시기를 전후로 시작됐다. 어린이용 학용품, 의복류 등에 만화캐릭터는 '꼭, 입어야 할 옷'처럼 여겨졌다. 어린이 만화시장이 곧 학부모(성인) 시장임을 일깨워 준 것도 이 무렵. 어린이용 만화영화 제작 붐과 함께 색다른 성인용 출판만화가 선을 보인다. 신문 등의 정치·시사 소재 만화가 아닌 연애소재의 작품들이 등장한다. 만화의 선정성 시비가 가장 활발했던 것도 이때이다. '아동만화는 억지 웃음, 성인만화는 섹스만화'라는 인식 역시 만화의 상품성 확보를 위한 선정성 때문이었다.
만화산업의 개념정립과 또 다른 도약을 위해
1980년대는 우리만화의 두 번째 성숙기라고 할 수 있다. 만화매체의 산업적 경제성과 문화적 파급력에 대한 실험이 나름의 성공으로 나타났다. 이 성공은 경제성 인식에 따른 만화시장의 가치 정립으로 시작된다. 이현세는 의장특허 출원을 통해 자신의 캐릭터가 보호받을 가치가 있음을 주장했고, <주간만화>는 내수용 상품이었던 만화를 해외로 수출했다. 타국어판 만화작품 외에도 국내작가의 국외 연재도 이뤄졌다. 1990년대는 완숙기에 이른 우리만화 시장을 보여준다. 불법적인 국외만화 출판을 공식적인 계약 출판으로 바꾸었으며, 국립공주전문대학에 작가양성을 위한 '만화예술과'를 개설했다. 만화의 양성화를 위한 움직임들이다. 1995년에 김수정은 자신의 만화캐릭터를 공급하는 '둘리나라'를 창업한다. 만화영화 전문 케이블TV 투니버스가 개국하고,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 제1회 행사가 개최됐다. 급기야 1997년 문체부(현 문화관광부)는 '만화산업진흥방안'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만화 100년을 돌아보고
현재 만화는 컴퓨터의 발전과 함께 여타 문화예술 장르에 뒤지지 않는 거대매체로 자리매김 했다. 새로운 멀티미디어 매체와의 결합으로 만화매체의 하부장르(형태상)는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만화산업의 부가가치 역시 함께 증가돼서 산업적인 경쟁력을 높일 것이다. 그러나 '만화의 발전적 변신'은 일순간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록매체의 변화, 소재상의 변화, 구독환경상의 변화, 활용도의 변화 등 만화의 현재는 약 1백년의 준비와 실험을 통해 이루어졌다. 기술의 발달이 문화의 발달은 아니듯, 만화문화의 발달 역시 기술의 진보가 대답해주진 않는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대단위 창작인력의 거듭된 실험과 문제제기만이 만화문화의 새로운 천년을 이룩할 것이다.
코코리뷰/한국만화문화연구원/1999-11-15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