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의 만화요만화]
일본만화개방
◎일본의 상품성은 폭력·선정성/젊은 작가들 애국심 호소로 맞서
문화관광부는 최근 일본 대중문화의 1단계 개방원칙을 발표했다.50% 이상의 국내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는 출판만화와 비디오 시장을 개방하고 해외 영화제 수상작 등 우수영화에 대한 선별적 상영을 허용했다. 정부는 일본문화의 합법적 보급령을 선포하면서 일본문화가 IMF로 경직됐던 문화산업계에 기폭제 역할을 해주리라 기대하고 있다.그러나 업계에서는 일본 대중문화가 전면 개방된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수년전부터 경쟁력있는 일본산 대중문화 상품들이 국내에 수입된 채 개방의 날을 기다리고 있거나 이미 보급돼 왔다는 얘기다.국민들 역시 이분법적 찬반론을 만들고 있는 언론에 지쳐있는 눈치다.
사실 전파의 월경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를 통한 폭넓은 문화보급과 일본에 대한 동경심 등으로 이미 일본과 일본의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결국 문화개방에 따른 시비의 논점은 식민 탄압기의 역사적 감정에 머무른다.그리고 그들의 문화에 깊게 배어있는 폭력성과 선정성 시비로 끝을 맺는다.
일본문화가 오늘날 세계시장의 틈새를 파고 들면서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폭력성과 선정성에 있다.그것이 그들의 상품을 돋보이게 하고 우수한 것으로 만드는 요인이 된다.이에 대한 시비만 무성한 우리의 경우는 폭력성과 선정성이라는 핵심부품은 수입하고 외장만 만들어 파는 후진성 문화산업국의 역할에 만족하고 있는 꼴이다.그러나 출판만화 산업을 중점으로 전방위 미디어 산업을 펼치고 있는 (주)야컴은 최근 ‘815코믹스’ 시리즈를 출간하면서 이런 상황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과거 만화비평의 제일 과제 중 하나는 국가 기관의 심의에 의해 단련된 싸구려 민족성 지우기에 있었다.
그러나 몇년새 일어난 극심한 경제불황은 ‘민족’을 최고 문화상품으로 만들어 버렸다.(주)야컴의 시장 진출 전략은 시리즈명에서도 알 수 있듯 우리의 애국심에 호소하고 있다.일본의 만화시장 점령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경제재건,나라살리기 등이 대중의 관심을 끌자 이를 시장탈환에 이용하고 나선 것이다.
‘용비불패’의 문정후를비롯한 젊은 작가들이 이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최근 청소년층에 유행하고 있는 학원,판타지,폭력물 등의 장르만화,그중에서도 폐쇄적 윤리관에 의해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이고 있는 학원 폭력만화가 중심을 이룬다. 전학 온 문제아의 주먹 쟁탈전을 그린 정주익의 ‘싸이코’,언제부턴가 중고생들의 교외 활동지가 돼버린 주유소를 배경으로 한 고승룡의 ‘주유소 짱’ 등이 그것이다.일련의 작품들은 우리의 교육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이야기에 주먹싸움이 주요한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그리고 폭력묘사의 수위는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그러나 그것이 폭력서클,이지메,동성애,원조교제 등 일본 청소년들의 자극적인 이야기에 익숙한 우리 청소년물의 시선을 끌 수 있을지는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일단 우리의 젊은 만화가들이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핵심기술을 사용하기로 합의한 것에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일본만화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나선 만큼 그들이 사용할 폭력성에 대한 작가의 사회적 책임을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국민일보/박석환의 만화요만화/1998-10-28 게재
만화시비탕탕탕/ 초록배매직스/ 1999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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