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탁영호의 라이브쇼와 첫사랑이..., 국민일보, 1998.10.21

국민일보/박석환의 만화요만화/1998-10-21 게재

만화시비탕탕탕/ 초록배매직스/ 1999 게재

 


[박석환의 “만화요 만화”] 


탁영호 만화 


비전문가에서 출발/전위만화 영역 개척/지나친 주입식 전개 “흠”


탁영호는 80년대 가톨릭농민회에서 제작,배포한 ‘학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시작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비전문가 입장에서 그려진 ‘학마을…’은 민중만화운동의 시작이었고 전위적 만화세력의 모체 역할을 했다.그는 최근 ‘라이브쇼’와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일곱가지 이유’라는 제목으로 두권의 단편 모음집을 발표했다.


‘라이브쇼’에 실린 ‘마르스와 조센삐’를 보자.패전을 눈 앞에 둔 일본군은 가미가제식 폭탄투하를 명령하고 이들은 마지막 출격의 공포를 잊기 위해 위안부를 찾는다.막바지에 달한 전쟁에 끌려온 두명의 한국인 위안부는 자매 사이.어떻게든 살아서 고향땅을 밟겠다고 맹세하지만 일본군 장교는 그들을 사살한다.동생은 죽고 언니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해방후 고향땅에 돌아온다.그러나 고향은 그를 꺼림칙하게 생각하고 갈길 몰라 주저앉은 언니 곁으로 동생의 영혼이 나타난다.


군표를 한보따리 싸들고 엄마 곁으로 달려가려는 동생의 영혼은 언니의타이름으로 다시 저승행 기차에 오르게 된다.차창 안에서 눈물 짓는 동생 곁으로 일본군의 영혼이 함께 탄 기차가 기적을 울리며 출발한다.언니는 곧 다시 올 기차를 맞이하러 찻길 위를 걷고 ‘마르스와 조센삐’는 끝이 난다.


해방으로 평화의 시기를 맞이한 조국,그러나 그 구성원들에게 전쟁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으며 라이브쇼의 무대에 올라서 있다고 탁영호는 말한다.일본군에 끌려가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기술을 익혀온 사내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독립군의 이력을 팔아먹고 사는 건달패와 격투를 벌인다.기차 안의 사람들은 사내의 승리를 축하하지만 그들의 속내는 사내를 건달패 ‘부랑자’로 만들고 있다.어쩌면 사내가 싸움을 벌인 건달패가 진짜 독립군이었을지 모른다는 슬픔까지 읽혀지게 하면서.


‘라이브쇼’에서 탁영호는 시대에 의해 고통받고 시대 속에서 잊혀져버린 개인의 슬픔을 담아낸다. 그리고 이어지는 단편집 ‘첫사랑이…’에서는 고도화된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가는 작가 자신과 주변인들의 관계를 이야기한다.자본가와 노동자,그리고 그들의 반란을 섹스에 비유하고 통속성에 매몰된 사랑에서 멀어질 것을 강조한다.


신일섭 등 우리 만화계의 전위세력은 ‘누구나 만화를 그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만화가 기능의 총합이 아니라는 의미다.그들은 표현기법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하지만 비전문가로 출발한 탁영호의 만화 창작이 어느덧 10년을 넘어섰다면 ‘학마을…’에서 보여줬던 반만화적인 성격은 이제 한 단계의 완성에 이르러야 한다.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너무 짧고 서술적이다.작가가 등장인물의 대사를 독점함으로써 캐릭터의 쓰임은 쉽게 폐기됐다.이는 이야기 홍수시대에 탁영호를 두드러지게 해주는 특징일 수도 있다.하지만 지나칠 정도의 주입식 전개가 때론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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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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