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여러 명이 한 테이블에 둘러앉게 된다면 어떨까. 걸출한 입담으로 복잡한 사상을 뽐내기 바쁠 것이다. ‘만화로 보는 지상 최대의 철학 쑈’는 철학자들의 왁자지껄한 수다판 같은 느낌을 준다.
고대의 소크라테스부터 현대의 데리다까지 철학자 41명의 삶과 사유를 시대순으로 정리했다. 모습은 익살스럽고, 재기발랄한 입담은 생생하다.
작품 속 철학자들은 생방송 쇼의 패널로도 등장한다. ‘실용주의 쇼’에는 개개의 사물에 주목하는 유명론(唯名論)을 주창한 조지 버클리, 사고의 실용적인 면을 강조한 공리주의 대표 존 스튜어트 밀, 실증주의를 창안한 오귀스트 콩트가 초대받아 자신의 이론을 설명한다. 중국에 선불교를 전래한 것으로 알려진 달마대사는 게임 속 스트리트파이터처럼 쿵후를 하고, 헤겔과 쇼펜하우어는 칸트를 좇는 ‘오매불망 칸트바라기 두 교수’ 캐릭터로 나온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인 저자는 영화로도 제작된 ‘카우보이 & 에일리언’(2011년)의 원저자이기도 하다. 주로 논픽션 만화를 그린 그는 이 책에 빼곡하게 철학자들의 사유를 정리했다. 하지만 지루하지 않고, 청소년이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준이다. 2007년에는 미국도서관협회에서 ‘10대를 위한 최고의 그래픽 노블’(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식)로 선정된 책이기도 하다.
최근 인문학과 만화의 결합이 활발해지면서 철학과 종교, 고전을 다룬 만화가 잇달아 출간되고 있다.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 진영균 씨는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 고우영의 ‘삼국지’ 같은 역사·문화서 위주이던 교양 만화의 소재가 다양해지면서 철학과 종교까지 만화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비교적 어려운 분야로 꼽히는 철학과 종교가 만화와 결합하는 것은 성인용 교양만화가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아동과 학생들을 위한 학습만화는 출산율 저하와 출판사의 과열 경쟁으로 전망이 갈수록 어둡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자연스럽게 실질 구매력이 있는 30, 40대 성인들을 겨냥한 출판물이 늘어나고 있다.
앞서 출간된 ‘만화로 읽는 하룻밤 논어 1·2’는 자기계발과 리더십에 관한 조언을 일상 사례로 설명하고 한자를 최대한 줄여 고전 읽기에 대한 부담을 줄였다. ‘만화로 보는 영화의 역사’는 120년이 넘는 영화의 역사를 라이벌이라는 키워드로 정리했다.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턴, 장뤼크 고다르와 스탠리 큐브릭을 비교하는 식이다.
‘레비와 프티의 바이블 스토리’는 구약과 신약 성서의 내용을 만화로 옮겼다. 저자는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수석연구원 출신. 자신이 스페인의 유대인 혈통이란 것을 알고 난 뒤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 등 종교 문제를 본격적으로 파고들었다고 한다.
이들 교양만화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박석환 만화평론가는 “텍스트를 그림으로 옮기는 수준이라면 성인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출 수 없다”며 “캐릭터의 특성을 이미지로 반영하고, 줄거리에 개념을 잘 녹여 내는 만화적 역량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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