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또 만화다. 수년 전만 해도 청소년 폭력 문제가 불거지면 꼭 어디선가 어떤 만화를 들고나와 ‘만화가 폭력을 조장한다’는 말을 했다. 한동안 그런 일이 없다 싶었더니,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웹툰 24개를 문제 삼고 나섰다. ‘청소년 유해매체’로 규정할지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건데, 청소년보호법의 ‘매체’엔 만화뿐 아니라 영화, 드라마, 공연, 도서 등이 망라돼 있다. 왜 만화만 문제가 될까. 다른 매체도 문제 삼으라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수십년 동안 만화가 도마에 오르면서 어떤 결과가 빚어졌는지 한번 보자는 거다.
그동안 표현에 대한 규제가 어떻게 진행돼 왔는지, 만화와 영화를 비교해 보자.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에 영화는 공연윤리위원회에서, 만화는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지금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가위질을 해댔다. 독재정권 아래서나 가능했던 이런 검열 기제들이 재정비되기 시작한 게 1990년대 중반이다. 영화의 경우, 사전 검열을 허용한 영화법이 96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받은 뒤 공연윤리위원회가 해체됐다. ‘보지 마라, 잘라라, 가려라’ 하던 검열 기관이 드디어 사라진 것이다. 대신 전체관람가, 18살 이상 관람가 등의 등급을 매기는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신설됐다.
하지만 문제가 많다 싶은 영화에 등급을 안 줌으로써 개봉을 못 하게 하는 ‘등급보류’ 조항이 있었다. 이 조항이 필름을 자르고 가리게 강제하는, 사실상 검열과 같은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2001년 이 조항에 대해 또 위헌 결정이 내려져 폐지됐다. 마침내 2004년 영상물등급위원회는 ‘18살 이상 관람가’ 영화에, 금단의 벽이었던 체모와 성기 노출을 허용했다. 그랬더니 오히려 영화에서 외설 논란이 수그러들었다. 아울러 전성기를 구가하는 한국 영화를 청소년 폭력의 책임을 묻는 도마에 올리는 일도 드물어졌다.
만화는 어떠했나. 공연법에 설치 근거를 둔 공연윤리위원회와 달리, 간행물윤리위원회는 법적 근거가 없는 사단법인이었다. 그런 곳에서 가위질을 해댔으니 사라져야 마땅한데, 97년 제정된 청소년보호법에 설치 근거를 부여받고 버젓이 살아남았다. 같은 해 7월 법이 발효되자 1700여종의 만화를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했다.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되면 서점에 별도의 판매 코너를 마련해야 하고, 또 실수로라도 청소년에게 팔아 처벌될까봐 서점 주인들이 취급을 꺼렸다. 성인 만화잡지들이 줄줄이 폐간했고 결국 시장이 궤멸했다. 4조원 시장으로 불리던 출판만화 시장이 15년 지난 지금 연 7000억원대의 규모를 못 벗어나고 있다고 한다.(nocut_toon.blog.me 박석환, ‘폭력 웹툰? 폭력적으로 웹툰 산업 축소시키나’) 그럼 영화 시장은? 한국 영화 극장매출액이 97년 600억원에서, 2011년 6137억원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영화는 등급제를 실시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확장시킨 결과 산업도 성장했다. 만화는 등급제 이전에 ‘청소년 유해매체’라는 이름으로 단속부터 실시했다. 다 같이 청소년이 볼 수 없는 걸 두고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인데, 만화는 ‘청소년 유해매체’이다. 이 둘은 말만 다른 게 아니다.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는 광고도 하고, 웹에서 영화 정보도 보고 스틸 사진도 본다. 그러니 어른이 정보를 접하고 영화를 본다. ‘청소년 유해매체’ 만화는 광고도 못하고 웹에선 성인인증 받고 정해진 곳에 가야만 어떤 만화가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니 어른이라고 해도 보기 쉽지 않다.
죽다시피 하던 만화 시장이 웹툰으로 살아나니까, 이번엔 웹툰을 ‘청소년 유해매체’로 문제 삼는다. 이게 문화정책이 있는 국가인가.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출처 전문보기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22031.html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