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 만화월드로 가는 가이드북 - 각시탈, 허영만
[그림 1] 허영만, <각시탈>, 1974년 첫 발표(2011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1976년 [우등생] 연재분 중 전반부 1권으로 복간)
■ 작품에 대하여 : 한국형 가면 히어로, 허영만의 출세작
허영만의 <각시탈>은 1974년 소년한국도서에서 처음 발행됐다. <집을 찾아서>로 데뷔한 해에 <총소리> <빛 좋은 개살구>에 이어 발표한 네 번째 작품으로 허영만의 출세작이자 ‘허영만 만화’의 본격적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국판 크기에 권당 50페이지 분량으로 40여 권의 후속 시리즈가 출판될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첫 번째 시리즈는 ‘각시탈과 곡예단’편이고 ‘각시탈과 물 속의 싸움’편, ‘각시탈과 단군의 자손’편 등으로 이어졌다. 1976년에는 출판사의 독과점 체제에 반발하며 선배만화가 임창이 주도했던 땡이문고에서 ‘각시탈 시리즈’를 출판하기도 했고 학생잡지 [우등생]에 연재되기도 했다. 80년대에는 물개만화에서 ‘각시탈 시리즈’ 전편이 13권 분량의 단행본으로 재출판됐고 백조문고에서도 ‘각시탈 시리즈’를 원제로 한 <무궁화 필 때까지> <정권찌르기> 등이 출판됐다. 허영만이 직접 다양한 판본의 ‘각시탈’을 그리기도 했지만 ‘색시탈’ 등의 제목을 단 아류작품도 많이 나왔다. 허영만은 이후 ‘각시탈’의 콘셉트를 잇는 <쇠퉁소>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림 2] 최초의 각시탈 만화 <각시탈과 곡예단>
[그림 3] ‘각시탈 시리즈’ 중 일부를 재출판한 <무궁화 필 때까지>
<각시탈>은 한국인이지만 일본 경시청 순사로 조선인을 괴롭혀 온 이강토가 자신의 신분과 역할에 대해 자각한 후 각시탈로 변해 위기에 빠진 민족을 구하고 일본과 맞서 싸운다는 설정을 지니고 있다. 이 끝 줄기를 토대로 다양한 위기와 색다른 위험인물(라이벌)이 등장하며 새로운 이야기가 전개되는 구조를 지닌다. 허영만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 이강토는 그의 세 번째 작품 <빛 좋은 개살구>에 처음 등장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캐릭터로서의 생명을 얻고 대중에게 인지됐다고 할 수 있다. 애국가 가사에 나오는 ‘강산’이라는 단어에 착안해서 ‘강토’를 주인공 이름으로 정하고 ‘강산’을 서브 캐릭터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림 4] 각시탈을 소재로 제작 된 영화
[그림 5] 공간적 배경을 북한으로 바꾼 각시탈 소재 만화영화
만화원작의 인기에 힘입어 1978년 김추련 주연의 액션영화 <각시탈 철면객>(감독 김선경)이 제작되어 화제를 모았고 미국에 수출되기도 했다. 1986년에는 대원동화에서 원작의 시대적 배경인 일제 강점기를 북한으로 바꾼 반공만화영화 콘셉트의 <각시탈>이 제작되기도 했다. 1998년에는 PC용 액션롤플레잉게임으로 발매되어 ‘살아있는 콘텐츠의 힘’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급기야 2012년에는 인기 배우 주원이 이강토로 출연한 28부작 TV드라마가 방영되어 큰 인기(시청률 22.9%)를 얻었다.
■ 작가에 대하여 : 한국만화의 오늘을 이끈 파이오니아 허영만
[그림 6] 허영만
허영만은 전라남도 여수(현 여천, 1947년 생)에서 태어났다. 김용환, 방영진 등의 만화를 보며 자랐던 허영만은 고교 졸업을 전후로 만화가가 되기 위해 상경한다. 세련된 화풍의 김석, 박한다식한 박문윤, 인기 순정만화가 엄희자, 다양한 소재주의 만화로 일가를 이뤘던 이향원의 문하에서 10여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만화수업을 받았다. 오래 수련한 만큼 농익었던 그는 1974년 독립을 선언하고 소년한국도서 신인만화공모에 입선한 후 억눌렸던 창작 본능을 발산한다. 네 번째 발표작인 <각시탈>이 그 해 가장 주목받는 작품이 되면서 데뷔 첫해에 인기 만화가 대열에 섰다. 그러나 허영만의 만화인생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허영만은 ‘난 매일 2등만 했다’고 입버릇처럼 말 할 만큼 ‘원 톱’의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다. 70~80년대에는 이상무의 ‘정’에 막혔고 80~90년대에는 이현세의 ‘힘’에 막혔다. 허영만은 선도자가 아닌 추적자 자리에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21세기가 열리면서 허영만은 ‘허영만’이라는 이름 자체가 브랜드가 될 만큼 폭넓은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다. 허영만이 지니고 있던 ‘다양성 코드’와 데뷔 30주년을 맞이하면서도 여전한 ‘시간관리와 작품관리’, 일에 대한 태도 등이 이 시대를 대표하는 ‘자기계발 사례’로 부각되면서 허영만의 만화도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데뷔 이후 허영만의 대표 작품들을 거칠게 정리해 보면 <각시탈> <태양을 향해 달려라> <고독한 기타맨> <오!한강> <미스터손> <세일즈맨> <타짜> <사랑해> <식객> 등을 꼽을 수 있다. 이견은 있을 수 있으나 이는 소년한국도서 시기의 항일 아동만화 → [어깨동무] 시기의 스포츠 성장만화 → 대본소용 만화창작 시기의 특이소재 청춘드라마 → 만화 대중화 시기의 이념드라마 → 일본만화 개방 시기의 캐릭터만화 → 신문연재만화 시기의 직장인 소재(대상) 만화→ 인터넷 대중화 시기의 지식교양만화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이 같은 구분은 허영만의 대표작이 품어내는 장르적 특성에 기인한다. 그러나 한 겹 더 들어가 보면 시기별로 가장 유망했던 만화유통망, 매체, 경향 등을 알 수 있고 더 집중해 들어가면 고정 독자층의 성장도 확인 할 수 있다. 작품생활 중반에 들어서 어른이 된 고정독자층을 버리고 다시 아동만화를 그렸다는 것이 조금 의아한 대목인데 이에 대해 ‘손자에게 줄 선물이 필요했다’고 말한바 있다.
허영만은 김종한 김준범 윤태호 강웅승 심갑진 김용회 등 우리만화계를 주도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만화스승으로도 유명하다. 단순히 스승이라는 점보다 허영만이 지금도 우리만화계의 최전선에서 제자들과 ‘어깨싸움’을 하며 경쟁하고 있는 스승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단국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했고 순천대학교 만화예술과 석좌교수를 지냈다. 목포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 명장면 명대사 : 네 출세를 위해 내가 재물이 될 수 없다
<각시탈>은 허영만의 작품 세계, 허영만 월드로 진입하는 첫 관문이다. 허영만은 데뷔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중의 탄탄한 지지를 받고 있다. 허영만 만화의 인기 요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으나 그 중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작품 소재의 특이성과 장르적 요소의 다양성이다. 그 점에 집중해서 <각시탈>을 본다면 허영만 만화의 다양성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림 7] 일본군 장교가 된 친구와의 조우
<각시탈>의 시대적 배경은 일제 강점기이고 항일이념을 기초로 하고 있다. 70년대 유행했던 항일만화이고 역사 소재 만화인 셈이다. 또 등장인물들이 한국의 택견과 일본의 검도를 주특기로 대결한다는 측면에서 국가간 대립을 앞세운 스포츠극화이자 액션활극이고 잡기 소재 만화로도 볼 수 있다. 주인공이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변장을 한 뒤 사건을 해결한다는 측면에서는 가면영웅 소재 만화, 경시청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측면에서는 수사물로도 읽힌다.
[그림 8] <각시탈 물 속의 싸움> 편 중 수중 액션 장면
이 같은 소재주의적 요소는 한국인으로 태어났지만 일본인으로 살거나 일본인으로서 한국인과 싸워야 하는 등장인물 간의 갈등 속에서 극적으로 표출된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발행한 <각시탈>에는 검술이 뛰어나 일본군 장교가 된 옛 친구와의 대결이 그려진다. 각시탈은 ‘네 출세를 위해 내가 제물이 될 수 없듯이 일본의 작은 욕심을 위해 대한민국의 큰 긍지가 무너질 수는 없는 것’이라며 개인적 갈등을 국가적 갈등으로 치환시킨다. 이처럼 <각시탈> 안에는 허영만 만화세계의 주요한 테마가 녹아있다. 40여 년에 가까운 창작 활동 기간 중 1천권 이상의 만화작품을 발표한 허영만의 작품에는 두 얼굴, 방랑자, 복수, 허무, 민족, 초월, 형제애, 구도 등의 테마가 등장하는데 <각시탈>에서 그 원형적 요소들을 찾을 수 있다.
참고자료
네이버책, 허영만, 각시탈, 한국만화영상진흥원, 2011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728739
네이버캐스트, 한국만화의 현재-만화가 허영만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7&contents_id=1203
네이버블로그, 코믹스팸플릿, 허영만 계보론
http://comicspam.com/140035965561
네이버블로그, 책장정리, 각시탈과 곡예단
http://blog.naver.com/r0u/58382308
박석환/ 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학교 만화창작과 교수
1997년 일본만화 범람에 따른 ‘우리만화의 대중 이탈’ 문제를 지적하며 만화계에 입문했다. 2001년 우리가 디지털만화를 선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잘 가라 종이만화>를 선언했고, 2008년 개인미디어시대에는 리뷰어가 많아야 한다며 <만화리뷰쓰기> 방법론을 제시했다. 한국만화의 디지털화, 글로벌화, 컨버전스화를 개인 비전이자 역할로 규정하고 관련연구와 집필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홈페이지는 www.parkseokhwan.com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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