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한국인(이상무 글그림), 한국만화정전, 네이버캐스트, 2013.03.29

울지 않는 소년 독고탁 신화의 뿌리 - 한국인, 이상무

 

 

[그림 1] 이상무, <한국인>, 삼현출판사 1981년 판

(1975년 배달문화사 초판 발행, 1981년 [학생중앙]에 <현해탄너머>로 개작 연재)

 

■ 작품에 대하여 : 울지 않아 더 슬픈 소년의 가족잔혹극

 

이상무의 <한국인>은 1975년 배달문화사에서 처음 발행됐다. 일본만화에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라고 했던 ‘캔디’가 있었다면 한국만화에는 ‘울지 않는 소년 독고탁’이 있었다. <한국인>은 이 독고탁이라는 캐릭터가 울 수 없는 이유와 자신의 천재성을 어떻게 활용해서 운명을 개척하게 되었는지를 상세하게 소개한 작품이다. 독고탁이 등장하는 이상무만화를 유쾌·상쾌·통쾌한 명랑스포츠극화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상무는 ‘눈물의 제왕’이었다. 가족 소재의 드라마, 그중에서도 눈물을 동반하는 이야기에서 이상무만화는 가장 뜨거웠다. 만화스승이자 편집자였던 박기준이 당대의 인기 작가였던 ‘엄희자가 소녀들을 울음바다에 빠뜨렸다면 이상무는 소년들까지 울게 했다’고 평가할 정도로 이상무만화의 ‘눈물탄’은 강력했다. 어찌할 수 없는 운명 앞에 놓인 주인공을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붙여 놓고 정면 돌파를 주문하면서도 너스레를 놓지 않았던 이상무식 연출은 요즘말로 웃픈(웃기지만 서글픈)장면의 연속이다.

 

[그림 2, 3] ‘가족 안에서의 행복’을 강조하며 눈물샘을 자극했던 <비둘기 합창>과 <울지 않는 소년>

 

<한국인>에서 탁의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재일교포 기업인이다. 일본인 어머니와 결혼을 해서 준과 탁을 낳았으니 두 주인공은 절반은 한국인이고 절반은 일본인이다. 준은 자기 집에 붙어있는 아버지 독고룡의 문패를 못 마땅해 한다. 아버지를 따르지 않고 일본인으로 귀화해 마사오라는 이름으로 야구명가 자이언츠에 입단해 최고의 타자가 된다. 반면 탁은 아버지의 아들로 한국인임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탁은 가족 중 유일한 한국인으로 철저하게 외톨이 신세가 된다. 자수성가 한 부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풍족한 삶을 살지 못했고 어머니가 있었지만 철저하게 혼자였다. 천부적인 어깨 힘과 강속구로 자이언츠의 경쟁 팀인 타이거즈에 입단해서 특급 투수가 되지만 귀화를 거부한 탁은 팀 내에서도 따돌림의 대상이었고 야구천재인 형과의 대결에서도 철저하게 패배하고 만다. 야구를 소재로 한 라이벌극이지만 가족 간의 대립과 화해를 다룬 가족드라마인 셈이다.

 

[그림 4, 5] <한국인>에 나오는 사람들

 

<한국인>은 한국만화사를 대표하는 독고탁이라는 캐릭터의 전형성과 70~80년대를 선도했던 ‘이상무만화’의 골조가 구축된 작품이다. ‘만화는 한 작품이 50페이지 분량에 3권을 넘으면 안 된다’는 믿지 못할 출판규정이 있던 시절에 탄생한 대형 서사물로 당시 규정에 따라 11권 분량의 한 작품을 <나는 한국인> 상·중·하권, <의지의 한국인> 상·중·하권 같은 식으로 11개의 각기 다른 제목을 단 33권 분량의 시리즈물로 출판했다. 1971년 발표한 <주근깨> 이후 ‘독고탁’을 주인공으로 한 연작이 대본소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터라 가능한 기획이었다. 1981년 이 같은 규정이 사라지면서 삼현출판사에서 본래의 모습으로 복간됐다. 같은 해에 학생잡지 [학생중앙]에 동일한 내용을 다시 그린 <현해탄 너머>가 연재되기도 했다.

 

 

■ 작가에 대하여 : 자기 극복의 달인 독고탁을 낳은 휴머니스트 이상무

 

[그림 6] 이상무(네이버캐스트 인터뷰 영상 중)

 

이상무(본명 박노철, 1946년 생)는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다. 고교시절인 1963년 [영남일보] 아동지면에 주1회 4칸 만화를 연재하며 만화계에 입문했다. 1964년 <도전자>의 박기정, <두통이> 시리즈의 박기준 형제 화실에서 창작수업을 받았고 1966년 학생교양잡지 [여학생]에 박기준이 연재하던 <노미호와 주리혜>를 넘겨받아 이상무라는 필명을 알렸다. 1972년 독립하면서 ‘독고탁’이라는 개성 넘치는 주인공을 창안했고 대본소용 만화 <주근깨>를 발표하며 공식 데뷔했다. 동료만화가 허영만(1947년 생)이 ‘이상무 때문에 매일 2등 밖에 못했다’고 할 만큼 데뷔 이후 줄곧 톱클래스 만화가로 활동하며 300여 종의 작품을 발표했다.

 

[그림 7] 최고의 야구 만화 중 한편으로 각인 된 <달려라 꼴찌> 중 한 장면

 

이상무의 만화세계는 크게 다섯 분야로 나눠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1970년대 초 어린 독고탁을 등장시킨 ‘가족 드라마’ 성향의 작품으로 <비둘기합창>이 대표적이다. 두 번째는 1970년 대 중후반 청년 독고탁이 등장하는 <넓은땅> 등의 ‘항일(抗日)’ 소재 연작이다. 세 번째는 1980년대 초중반 청소년 독고탁이 등장하는 ‘명랑 스포츠’ 소재 만화로 <울지 않는 소년> <아홉개의 빨간 모자> <달려라꼴찌> 등 이 분야에서 최고의 인기 작품이 나왔다. 이전 작품군이 태생적 한계나 외부 환경에 대한 반발을 보여줬다면 이 시기의 작품들은 주인공이 자기 자신을 넘어서기 위한 도전이 주테마가 됐다. 네 번째는 1990년 대 초반 성인 독고탁이 등장하는 ‘기업 또는 암흑가 소재 액션’ 연작이다. 성인잡지에 연재한 <포장마차> 등 고단한 일상과 초라한 삶에 주목하며 이상무식 감성 리얼리즘을 선보인 작품도 있었지만 이전에 보여줬던 독고탁의 이미지에 가려 주목 받지 못했다. 다섯 번째는 1990년 대 중후반부터 최근까지 선보이고 있는 성인대상의 ‘골프 소재 실용극화’이다. <싱글로 가는 길> <운명의 라스트 홀> 등은 성인이 된 이상무만화 팬들에게 선물 같은 작품이 됐다.

 

[그림 8, 9] 야구 소재 만화의 다양성을 보여준 작품들

 

■ 명장면 명대사 : 내게 바램이 있다면 이후로는 패배가 없는 것

 

[그림 10, 11] 한국 이름으로 된 명패를 보며 화를 내는 독고준, 라이벌 팀에 들어가 그와 같은 등번호를 받은 독고탁

 

이상무만화의 초기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인>에는 이후 작품에서도 찾기 힘든 강렬한 인물설정과 극적장치가 담겨있다. 자수성가한 아버지의 재산을 보고 애정 없이 결혼한 일본인 어머니, 병든 아버지를 대신해 회사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면서 재산몰수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외삼촌, 습관적으로 동생을 구타하고 쉼 없이 저주를 퍼 붙는 월등한 능력의 형, 형의 애인이지만 독고탁에게 묘한 연정을 품고 그가 최고의 투수로 거듭나도록 돕는 여인, 그를 이용해 형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을 불태우는 탁 그리고 스포츠를 통한 한일 감정까지. 가히 가족잔혹극이라 할 만한 <한국인>의 설정은 당대의 만화 전통에서 찾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림 12, 13] 형의 애인인 지오꼬의 도움으로 최고의 투수가 되는 독고탁

 

인물의 성격을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에피소드와 화면연출 역시 당대의 많은 사람들이 이상무만화에 열광했던 이유를 알게 한다. 그 중 백미는 형에 대한 분노로 형과 같은 등번호를 달고 라이벌 구단에 입단한 독고탁이 ‘저 태양은 언젠가는 변해…차갑게 식는다’며 최고의 타자인 형도 언젠가는 패자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독고탁은 ‘내겐 바램이 없어. 있다면 하나… 이후로는 내게 패배가 없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어떤 시련과 고통이 따르더라도 울지 않고 제 아무리 강자가 나타나더라도 질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순간 한없는 증오와 복수심에 불타던 사내는 ‘자기극복의 달인 독고탁’이 된다. 우리가 사랑한 독고탁이 된다.

 

 

참고자료

N스토어, 이상무, 한국인

http://nstore.naver.com/comic/detail.nhn?productNo=69202

코믹플러스, 이상무 만화 전체보기

http://www.comicplus.com/검색/?tab=1&keyword=이상무

네이버캐스트, 독고탁, 사람냄새 나는 만화-만화가 이상무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7&contents_id=528

 

 

박석환/ 만화평론가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 만화평론이 당선된 후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만화비평서 <만화시비탕탕탕>, <코믹스만화의 세계>가 있고, 만화이론서 <디지털만화 비즈니스-잘가라 종이만화>,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공저로는 <만화>, <한국의 만화가 1, 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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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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