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약동이와 영팔이(방영진 글그림), 한국만화정전, 네이버캐스트, 2013.03.19

베이비붐 세대의 서울유학 판타지 - 약동이와 영팔이, 방영진

 

 

[그림 1] 방영진, <약동이와 영팔이>, 한국만화영상진흥원 2013년 발행(크로바 1962년 발행분)

 

작품에 대하여 : 시골 소년들이 펼치는 서울 생활 모험기

 

방영진의 <약동이와 영팔이>시골학생 약돌이의 서울 유학기를 다룬 작품이다. 자급자족 경제가 살아있던 시골에서 자란 네 소년이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서울의 도시빈민사회를 경험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그린 학원만화이다. 베이비붐 세대라고 불리는 60년대 만화독자들이 가장 즐겨봤던 인기 만화 중 한편이다. 이 만화를 보고 만화가가 된 만화가가 다수 있어서 만화가들의 만화로 손꼽히는 작품이기도 하다. 1962년 대본소용 단행본으로 크로바에서 120, 220(40, 권당 74페이지 내외)으로 제작되어 1964년까지 발행됐다. 2003년 당대의 인기작을 재조명한다는 취지에서 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 13권 분량을 한 권으로 묶어 발행한 바 있고, 2013년에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만화수집가 오경수가 소장하고 있는 총 40권 중 120권을 전5권으로 묶어서 재발행 했다.

 

[그림 2]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본 시골 친구들

[그림 3] 고학을 하며 돈 벌이의 즐거움과 고통을 알아가는 친구들

 

<약동이와 영팔이>는 방영진이 명탐정 약돌이’ ‘명랑 약돌이에 이어 발표한 세 번째 약돌이시리즈이다. 추리만화가 많지 않던 상황에서 명탐정 약돌이시리즈로 대성공을 거뒀던 터라 시골학생 약돌이를 그리겠다고 하자 주변의 반응은 싸늘했다. 특히 요즘 같은 때에 학원명랑만화는 안 된다며 말리는 동료들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60년대는 대본소를 중심으로 형성된 장르만화가 붐을 이루던 시기였다. 스포츠, 시대, 모험, 서부, SF 등 가장 비현실적인 판타지가 다양한 장르의 옷을 골라 입고 만화로 그려졌던 때이다. 한국전의 참혹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 국민이 발버둥 치던 시절, 조그만 희망에도 생을 걸고 도전해야 했던 그 시절이다. 독자들은 비루한 현실이 그려진 만화를 찾지 않을 것이고 허황되더라도 비관적 현실보다는 환상의 세계를 찾을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시골학생이야기 같은 만화는 그려지지 않았다. 특히 학원물의 경우는 주독자인 학생이 작가보다 더 전문가 일 수밖에 없다. 그들의 이야기를 작가가 상상력으로 섣부르게 했다가는 실소만 자아낼 뿐 재미와 감동을 전달하는데 실패한다. 그래서 주도면밀한 취재가 필요한데 방영진의 처지는 그렇지 못했다.

 

[그림 4] 또래 친구들 간의 완력 대결과 이성에 눈을 뜬 친구들

[그림 5] 학교 대표로 마라톤 대회에 나가는 홀쭉이

 

방영진은 서울 토박이였고 고교시절부터 발병된 류머티스 관절염으로 바깥 거동이 자유롭지 않았다. 그런 그가 시골 소년들의 상경기를 그것도 전작보다 높은 연령대인 중고교생에 맞춰 그리겠다고 하니 주변의 걱정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주변의 우려를 <약동이와 영팔이>의 첫 발행분이 출시되자 눈 녹듯 사라졌다. 여기에는 방영진의 감춰둔 카드가 있었다. 서울 토박이였으나 한국전 당시 현충사 근처에서 피난생활을 했고 방학 때면 시골 친척집에서 동생과 함께 즐거운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이때 보았던 한적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그대로 작품에 재현해냈다. 반면 그가 다닌 양정고등학교는 대표적인 명문사학으로 여러 분야에서 선도적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시골출신 유학생들이 올라와서 고학을 했기 때문에 그 주변에서 웃지 못 할 에피소드가 많았다고 한다. 또 엄격하기로 유명한 밴드부 단원이었기 때문에 각종 규율로 인한 스트레스가 곧 이야기꺼리가 되기도 했다. 보통사람이 경험했을 법한 보통의 이야기꺼리일 수 있지만 방영진은 이를 작가적 경험으로 끄집어냈고 훌륭한 밑천으로 삼아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작가에 대하여 : 류마티스 관절염의 고통 속에서 학생의 멋과 웃음을 그려낸 방영진

 

[그림 6] 방영진(박기준, 만화규장각 제공)

 

방영진(1939~1999)은 서울 종로에서 제화점을 하는 아버지의 9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교동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만화를 즐겼던 그는 후일 만화가로 명성을 얻게 되는 노석규(1939~ , 대표작, ‘얄숙이’), 이우헌(1938~ , 대표작 덜렁이’)과 중고교 시절을 함께 보냈다. 방영진은 그들과 함께 [학원]지에 실렸던 김성환의 <꺼꾸리군 장다리군>을 읽었고 김용환의 작품집을 보면서 그림 연습에 매진했다. ‘군납용 파지에다 아버지 구둣방에서 구두 뒷굽에 칠하던 먹 같은 것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라이벌 의식이 강했던 이들 관계는 서로의 발전을 채찍질했다. 양정고교 졸업 후 노석규가 먼저 평소 존경하던 김경언(1929~1996, 대표작 의사까불이’)에게 편지를 보내 문하로 들어갔다. 방영진은 이에 뒤질세라 당대 인기 만화가 중 한명이었던 신동헌(1927~, 대표작 만화영화 홍길동’)에게 편지를 보냈다. 답장을 기다리지도 않고 곧장 화실로 찾아갔다. 이미 그곳에는 기라성 같은 멤버들이 모여서 직업적인 만화전문 교육을 받고 있었다. 무협만화의 대가가 되는 이재학, 한국만화영화의 산파가 되는 신능파(넬슨신), 역사해학만화로 일가를 이룬 황정희 등이었다.

 

[그림 7] 김경언의 추천을 받은 방영진의 작품(만화와 추억)

 

방영진은 이우헌과 함께 신동헌이 운영하는 만화교실에서 만화창작을 위한 다양한 기술과 방법론을 익혔다. 1958[칠천국]<오복이>, 1959년에는 잡지 [소설계]에 김경언의 추천을 받은 작품을 게재하기도 했다. 아동만화를 해보라는 아버지의 권유를 받은 방영진은 고민 끝에 약고 똑똑한 아이라는 뜻의 약동이라는 캐릭터를 떠올려 낸다. 김래성의 추리소설과 일본번역판 추리물이 인기를 끌던 것도 한 이유가 됐다. 방영진은 잡지에 조금씩 연재하는 방식이 아닌 대본소용 단행본 제작방식을 택해 <명탐정 약동이>를 발표한다. 한국적 배경과 소재로 구성된 사건에 독자들은 빠르게 공감했고 비상한 두뇌와 격투능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약동이의 활약에 환호했다. 이후 명탐정 약동이는 큰 인기를 모으며 다양한 시리즈 만화로 이어졌다. 그러나 방영진은 탐정만화로 자신의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던지 차기작으로 학원명랑만화인 <약동이와 영팔이>를 발표한다. 주변에서는 실패할 것이라 했지만 보기 좋게 연타석 홈런을 날렸고 방영진은 당대 최고 원고료를 받는 만화가가 된다.

 

[그림 8] 방영진의 출세작 <명탐정 약동이>

[그림 9] 명랑 약동이가 등장하는 <만세> 예고편

 

<약동이와 영팔이>를 발표 한 후인 1963년은 방영진 생애 최고의 해였다. 그러나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따르는 법. 고교시절부터 시작된 류마티스 관절염이 온 몸으로 퍼졌다. 몸을 벽에 기댄 채 합판을 끌어당겨 놓고 밥 보다 많은 양의 약을 먹으면서 떨리는 손으로 약동이와 영팔이시리즈를 그렸다고 한다. 전국의 독자들은 그의 고통을 아는지 모르는지 후속편을 애타게 기다렸지만 19642, 220권을 끝으로 절필하고 만다. ‘약동이와 영팔이시리즈 3, ‘명탐정 약동이탐정일기 편 등은 작품 발표 공고가 나갔지만 실제로 발표되지 못했다. 방영진은 간간히 [여학생]미니행진곡을 발표하기도 하고 진영방이라는 이름으로 작곡 활동도 했다. 하지만 과거와 같지 않았다. 1997년 병마와 싸우다 향년 5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명장면 명대사 : 우리를 공부시켜 주시는 부모님 만세

 

<약동이와 영팔이>는 한국전 이후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새롭게 만들어가야 했던 당대 사람들의 근심을 배경으로, 아무것도 없었지만 자식만은 성공시키고자 했던 부모들의 바람을 정서로, 이를 온몸으로 실천해야 했던 자식 된 이들의 도리를 열정 요인으로 작동시켜 시대적 공감대를 이끈 작품이다. 제목만보면 오약동과 박영팔이 주인공인 것 같지만 일명 뚱뚱이와 홀쭉이로 불리는 강덕수와 이만길을 합쳐서 네 명의 학생이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시골의 한 동네에서 만난 네 친구가 서울로 수학여행을 가기위해 미꾸라지를 키워 돈을 모은다. 이 돈으로 서울에 온 친구들은 명문 북성고등학교를 알게 된다. 고입시험에 합격하고 서울로 유학을 온 친구들은 자취생활을 하면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학비와 용돈을 벌며 모험과도 같은 서울 생활과 싸우고, 우정과 연애라는 청춘 판타지도 즐기면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

 

[그림 10] <약동이와 영팔이> 2부의 주인공 소개 코너

[그림 11] 우직한 영팔이와 마음이 깊은 약동이의 심성이 소개되는 씬

 

방영진은 도입부의 간단한 에피소드 만으로 마음 씀이 깊은 약동과 단순하지만 우직한 영팔이를 그려낼 정도로 능숙한 연출력을 보여준다. 이처럼 방영진은 등장인물 각각의 개성이 상황과 대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하면서 독자의 극적 몰입도를 높이는데 능했다. 물론 그 같은 상황은 언젠가,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것으로 만들어졌다. 이와 함께 칸칸마다 쏟아지는 깨알 같은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 수학여행 길에 서울에 계신 형님과 누님 또 작은 아버지, 외할머니, 외삼촌댁에 갖다 드릴 농작물을 바리바리 싸가는 학생, 서울에 있는 사촌동생이 가져다 달라고 했다며 강아지까지 감추고 열차에 탄 학생의 모습은 성한 것은 다 서울로 싸 보냈던부모님 세대의 모습 그대로였다. 서울 방은 연탄을 사용하니까 혹시 연탄가스가 들어오는 구멍이 없는지 잘 살펴보고 자라는 선생님의 촌스러운 걱정도 마찬가지다. 그 중 백미는 유학길에 오르는 주인공들을 배웅하는 아비들의 마음이다.

 

[그림 12] 같은 말을 똑 같이 하는 아버지의 마음

[그림 13] 부모님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결심하는 자식들

 

덕수아빠가 몸 건강히 하고, 늦잠자지 말고, 밤에는 일찍 자고라고 하자 영팔이아빠도 이를 한마디씩 그대로 따라한다. 이상하게 여긴 덕수아빠가 말을 멈추자 이번에는 영팔이아빠가 먼저 한 눈 팔지 말고, 너무 덤벙 대지 말고라며 뻔한 걱정을 늘어놓는다. 덕수아빠도 같은 마음인지라 영팔이아빠와 같은 말을 따라한다. 누구랄 것 없이 자식을 보내는 아비의 마음은 똑 같다는 것을 유머러스하게 전달한 연출이다. 아비 된 마음이 한결 같다면 자식 된 마음이라고 다를 수 있을까. 아비는 모두들 성공해서 돌아오라!’라고 소리치고 자식들은 우리를 공부시켜 주시는 부모님 만세!’라고 외친다. 영팔이아빠는 그러고도 한참을 따라와서는 혹시 성공하지 못해도 괜찮으니 꼭 돌아오라고 말하고 자식들은 우리 어떻게든지 성공해서 부모님의 은공을 갚자.’고 한다. 한국전쟁 전후로 태어난 베이비붐세대는 그렇게 공부했고 그렇게 성공해서 부모의 은혜를 갚았고 그들보다 더 소중하게 자식을 키웠을 테니 이제 돌려받을 은혜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갚아야 할 일이다. 달라는 이 없어도 갚아야 한다.

 

 

참고자료

방영진, 약동이와 영팔이, 한국만화영상진흥원, 2013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161099

박재동 외, 한국만화의 선구자들, 열화당, 1995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29812

디지털만화규장각, 박기준, 추리만화로 정상에 방영진

http://2009.kcomics.net/Magazine/column_view.asp?CateCode=3340010&Seq=953&Vol=63&intBnum=414_8&page=1&mode=column_photo

네이버카페, 만화와 추억, 김경언이 추천한 방영진

http://cafe.naver.com/oldcomic/490?social=1

 

박석환/ 만화평론가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 만화평론이 당선된 후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만화비평서 <만화시비탕탕탕>, <코믹스만화의 세계>가 있고, 만화이론서 <디지털만화 비즈니스-잘가라 종이만화>,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공저로는 <만화>, <한국의 만화가 1, 2> 등이 있다.

 

[후기] 남도의 어느 시골. 큰고모 내 둘째 아들이 먼저 서울 유학길에 올랐다. 그 뒤를 따라서 우리집도 아버지, 어머니와 큰누나와 형, 둘째누나가 먼저 서울로 갔다. 한 해 지나서 둘째아들인 내가 올라갔고, 몇 해 지나서 막내누이가 이사를 왔다. 맨마지막으로 할머니가 올라오셨지만 서울 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홀로 새벽기차를 타고 내려가셨다.

그 기간 중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 이야기를 어찌 다할까. 언제인가 적어야 할 때가 오겠지.

약동이와 영팔이네 이야기는 내가 직접 겪어보지 못한 이야기다. 하지만 시골 유학생들의 모험적 사춘기는 친척 형들을 통해 봤고 들었다. 그 때, 그 시절 이야기 그대로 이다. 어쩌면 실존하는 내 형님들이 당대 최괴의 공감작품이었던 약동이와 영팔이를 흉내내며 살았을지 모를 일이다. 아니면 지병으로 외부출입이 쉽지 않았을 작가가 폭넓은 취재와 인터뷰로 그들의 시대를 그대로 그려낸 것일 터.

어느쪽으로 생각해봐도 진기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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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eokhwan

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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