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주먹대장, 김원빈, 1973년 [한국만화정전 28], 2013.7.14

[후기] 나는 아직도 선생님의 선한 눈빛이 떠오른다. 만화주인공이라도 되는 냥 과장된 말과 행동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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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대장 1

작가 김원빈 출판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발매 2013.02.25


[한국만화정전] 

세상을 구원한 기형아

주먹대장, 김원빈

[그림 1] 김원빈, <주먹대장>, 2013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발행, 1973년 [어깨동무] 연재 작

■ 작품에 대하여 : 아기장수설화를 모티브로 창작된 소년영웅 이야기

김원빈의 <주먹대장>은 1958년 128쪽 분량의 만화방용 단행본으로 처음 발표됐다. 이후 김원빈이 군 입대 전후에 새로 그린 <주먹대장>이 총 8권 분량으로 제일문고(1965년)와 오성문고(1968년)를 통해 발간됐고 1973년 또 다시 새롭게 그린 <주먹대장>이 [어깨동무]의 부록만화로 1982년까지 연재됐다. 1992년에는 [어깨동무] 연재분을 부분 수정한 <주먹대장>을 [월간코믹점프]에 재연재했다. 이중 가장 많은 독자들이 기억하고 있는 판본이 [어깨동무] 연재분이다. 1994년 우석출판사에서 3권 분량의 단행본으로 발행된바 있고 2013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이를 재발행했다.

[그림 2] <주먹대장> 연재 당시의 [어깨동무]

[그림 3] 우석출판사에서 발행된 <주먹대장>

평범한 가정에서 비범한 영웅 주먹대장이 탄생한다. 벼락같은 울음소리가 가시고 아이가 기기 시작할 때 쯤 부모는 아이의 요상한 힘을 느낀다. 손에 닿는 것마다 부숴버리는 아이를 보며 아버지는 고민에 빠졌지만 어머니는 ‘장수는 어릴 때부터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 있데요. 그래서 성벽 같은 데는 날아서 오른다잖아요. 큰 인물은 대개 태어날 때부터 유별난 데가 있다’며 아이를 두둔한다. 아이가 밖에서 뛰어놀 때가 되자 동네 사람들은 요상하게 큰 아이의 주먹이 마을에 재앙을 불러오지 않을까 걱정한다. 또래 친구들은 아이를 ‘주먹병신’이라 놀리며 따돌리기 시작한다. 친구들의 요구로 산돼지를 잡아와도, 위기에 빠진 마을 원님의 딸 연분이를 미친 소로부터 구했을 때도 아이는 칭찬보다는 손가락질과 따돌림을 받는다. 병신처럼 큰 주먹 그리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끔찍한 힘을 지니고 있는 아이는 스스로를 원망하지만 ‘그 주먹이 착한 사람들을 위해 의롭게 쓰인다면 만인이 우러러 보는 보배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는 학산선인의 말을 듣는다. 또, 자신의 주먹처럼 비정상적으로 발이 큰 맨발장군이 자기 힘을 긍정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만의 사명에 눈을 뜨게 된다. 아이는 부모에게 ‘힘을 쓰면 커지는 주먹’을 받았고 자신이 구해준 연분이에게 ‘소가죽 같이 질긴 희귀한 옷감’으로 만들어진 옷을 받는다. 그리고 ‘악인에게 만 힘을 쓰라’는 선학대사의 사명을 받아들인 후 ‘소년영웅 주먹대장’이 된다.

[그림 4, 5] 주먹대장을 일러스트로 꾸며진 책 표지

<주먹대장> 이야기는 김원빈이 세 번을 다시 그리고 한 번 더 수정한 작품이다. 이전 작업 결과물에 대한 불만족이 낳은 결과일 수 있지만 작가의 의지와 편집부의 동의 무엇보다 독자의 전폭적 지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주먹대장> 이야기와 캐릭터가 지닌 매력이 컸다. 얼핏 ‘아톰’과 유사한 캐릭터성, ‘슈퍼맨’과 흡사한 이야기 설정으로 보이지만 이는 한국의 전승설화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날개를 달고 태어나 왕권을 위협할 것으로 생각되어 부모와 관군에 의해 비극적 죽음을 당했다는 ‘아기장수설화’가 그것이다. 이 이야기가 피지배계층의 비극적 결말로 전승되면서 지배계층의 체제 유지에 활용되었다면 <주먹대장>은 그 반대로 전개된다. 기형적 탄생과 부모의 걱정, 원하지 않았던 힘과 주변의 공포, 힘에 대한 번뇌와 좌절은 동일했지만 사명에 눈을 뜬 후로는 악인들을 벌하며 민중과 관군의 지지까지 얻어낸다. 익숙한 옛날이야기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재해석한 것이 주효했다. ‘아기장수설화’가 민간에서 자신들의 쓸모에 맞춰 다른 형태로 변형되어 전승된 것처럼 <주먹대장> 역시 만화독자의 꾸준한 관심과 기대 속에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독자 개개인의 영웅으로 세대를 뛰어넘어 기억되고 회자되면서 전통성과 함께 ‘전승된 캐릭터’로서의 강력한 이미지를 얻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작품 내외적 매력으로 인해 <주먹대장>에 대한 애니메이션 제작 프로젝트가 수차례 전개됐지만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물론, 미완인 까닭에 더욱 빛나는 가능성으로 남아있다.

■ 작가에 대하여 : 소년 영웅만 그렸던 만화계의 피터팬 김원빈

[그림 6] 김원빈

김원빈(1935년~2012년)은 중국 하얼빈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부모님 아래서 유년기를 보내고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중학시절 같은 반 친구인 김윤명의 소개로 당대의 인기 만화가였던 김윤항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했고 고교시절 친분이 있던 과학 선생님의 제안으로 1953년 <태백산맥의 비밀>을 발표하며 공식 데뷔했다. 1956년 [소년시보]에 4컷 만화 ‘깍동이’ ‘차돌이’를 발표하며 잡지연재만화를 하기도 했으나 1958년 <주먹대장>을 필두로 대본소용 단행본 만화 창작에 매진했다. <태풍소년>(1961년), <먹거미>(1964년), <아기포졸>(1965년) 등을 발표하며 인기를 얻으면서 고우영, 김기율, 박기당, 유세종, 이종진 등과 함께 오성문고를 설립하고 주주 만화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전통시대활극을 주로 작업했다. <별소년> <초록동> <번개동자> 등으로 이어진 대부분의 작품에 아동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때문에 ‘김원빈 만화’는 ‘동자 시리즈’로 불리기도 했고 김원빈은 ‘영원한 피터팬’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평생 독신으로 여자를 멀리했고 자식을 두지 않은 것도 한 이유가 됐다.

[그림 7, 8] 김원빈의 <아기포졸>과 <초록동>

김원빈은 작품 활동 기간에 비해 작품 편수가 많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출중한 작화 능력과 세련미 등으로 데뷔 당시부터 주목 받았지만 다른 만화가들에 비해 손이 느렸다. ‘잘 그린다’는 의미에 ‘빠르게 그린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던 때라 김원빈은 편집부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물이 나오면 마감을 어기고 도망갔고 사인회장에서도 대충 흘겨 그리는 법이 없었다. 그런 결벽증적인 완벽주의가 그의 작품을 돋보이게 했지만 그를 외롭게 만든 요인이기도 했다. 인기를 얻으면서 더 많은 작품을 요구받았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았고 주변에서는 이를 오만하거나 게으른 것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김원빈은 김소암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가장 존경했던 만화가 소동(素童) 김의환의 호에서 ‘소’자를 따고 먼저 작고한 동생 김원암의 이름에서 ‘암’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김소암은 잡지 일러스트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그림 9, 10] 김원빈의 <번개동자>와 김소암이라는 필명으로 그린 [어깨동무] 광고삽화

1966년 한국만화가협회상을 수상했다. 2001년 후배들이 선배 만화가에게 주는 황금펜촉상을 수상했고 2004년에는 대한민국만화대상 공로상을 받았다. 2000년 한국만화사를 빛낸 대표 캐릭터로 선정되어 부천북부도서관 앞에 ‘주먹대장’ 동상이 세워졌다. 2012년에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을 받치고 있는 건물 기둥 중 하나에 트릭아트 형식으로 ‘주먹대장’이 그려졌지만 완성된 것을 확인하지 못하고 그해 연말 지병으로 운명했다.

■ 명장면 명대사 : 주어진 힘 이상의 욕심은 내지 않겠다

[그림 11, 12] 주먹대장의 탄생배경과 일화를 묘사한 장면

<주먹대장>은 ‘하늘을 찌를 듯 한 봉우리, 아름드리 수목, 첩첩이 둘러선 기암절벽, 그 사이로 세차게 떨어지는 시원한 물줄기가 물보라를 피우며 계곡을 누빈다. 태산준령이 노을에 굽이쳐 흐르고 산 아래 마을에서는 저녁연기가 분주히 피어오르는데…. 잔잔한 저녁 공기를 깨뜨리고 태어난 아기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터져 나왔다’는 배경설명과 함께 시작된다. 김원빈의 빼어난 작화와 세련된 조형력 그리고 문장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도입부이다. 전승설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초기 설정이 유머러스하게 묘사됐고 아이에게 주어진 운명과 주변으로부터의 좌절이 속도감 있게 전개된 명장면이다.

[그림 13, 14] 아기장수설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어머니와 아이들로부터 놀림 받는 주먹대장

오래 고민하고 수차례 다시 그린 작품답게 말칸 하나하나에도 깊이가 느껴진다. 주먹병신이라는 놀림을 받으면서 외톨이가 된 아이에게 어머니는 ‘조롱하는 애들과 대꾸하지 말아라. 자기들 스스로가 못나서 그러는 거란다’라며 달래지만 아이는 ‘이따위 끔찍한 힘은 필요없다’며 괴로워한다. 악인을 벌하고 선인을 도우라는 사명을 받아들인 후에도 주먹대장은 자신의 힘을 경계했다. 전갈검사가 태생적 힘을 바탕으로 검술을 익혀서 더 큰 힘을 만들어 ‘탐관오리들을 징벌하고 빼앗은 재물을 백성한테 나눠주자’고 하자 ‘주먹에 주어진 힘 이상의 욕심은 내지 않겠다’며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그림 15, 16] 기형적 주먹에 대한 좌절과 소년 영웅의 등장

누구에게서든 ‘뺏는 것은 나쁜 것’이라는 아이다운 사고에서 나온 대사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작품만 창작하고 그 안에서 만족하지 않으며 재창작을 거듭했던 ‘김원빈식 욕심’이 그의 삶과 연결되어 읽히는 대목이다. 능력이 있고 기회가 있을 때 사람들은 주어진 것 이상으로 욕심을 낸다. 김원빈 역시 김소암이라는 필명으로 아류작품을 낸 적이 있다. 그러나 이내 후회했고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대신 양적 욕심이 아닌 질적 욕심에 충실했다. 손은 더 느려져 많은 작품을 남기지 못했지만 대신 그의 작품은 더 뚜렷해졌다. 주먹대장에게 주었던 대사처럼 그 스스로가 주어진 힘 이상의 욕심을 내지 않은 결과이다.


김원빈, 주먹대장, 한국만화영상진흥원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161104

황의웅, 주먹대장은 살아있다, 시공사, 2001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21077

네이버지식백과, 손상익, 영원한 한국만화의 피터 팬 김원빈의 〈주먹대장〉

http://terms.naver.com/entry.nhn?cid=1389&docId=1053248&mobile&categoryId=1389

네이버지식백과, 아기장수 설화

http://terms.naver.com/entry.nhn?cid=1614&docId=579286&mobile&categoryId=1614

주간동아, 안중규, 추억의 만화가를 찾아서 ③한국 만화계의 영원한 피터팬 김원빈

http://weekly.donga.com/docs/magazine/weekly/2006/11/20/200611200500001/200611200500001_1.html

디지털만화규장각, 장상용, 주먹대장과 엑스맨

http://www.kcomics.net/Magazine/column_view.asp?CateCode=3340015&Seq=1800&Vol=112&intBnum=414_13&page=1&mode=column_photo


박석환/ 만화평론가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 만화평론이 당선된 후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만화비평서 <만화시비탕탕탕>, <코믹스만화의 세계>가 있고, 만화이론서 <디지털만화 비즈니스-잘가라 종이만화>,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공저로는 <만화>, <한국의 만화가 1, 2> 등이 있다.


블로그는 http://blog.naver.com/comicspam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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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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