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된 영웅과 해체된 서사 - 고우영 삼국지, 고우영
[그림 1] 고우영, <고우영 삼국지>, 2002년 애니북스 복간판 발행, 1978년 [일간스포츠] 연재 개시
■ 작품에 대하여 : 30년 넘게 읽히고 또 읽힐 ‘100년 콘텐츠’
<고우영 삼국지>는 1978년 1월 1일부터 2년간 [일간스포츠]에 연재된 작품이다. 국민만화가 고우영의 수많은 인기작 중 한 편으로 가장 오랜 기간 사랑 받고 가장 다양한 형태로 매체 전환이 이뤄진 작품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많은 상처를 입은 작품이기도 하다. 신문 연재가 종료 된 1979년 우석출판사가 전 10권 분량으로 단행본을 발행하려 했지만 당시 신문과 달랐던 단행본 심의 기준에 따라 100여 페이지 분량이 수정 또는 삭제됐다. 이후 1984년 당시 대본소 단행본의 권당 페이지 분량 기준에 맞춰 15권으로 조정해 발매되기도 했다. 고우영은 이때를 회상하며 ‘아이는… 팔 다리 몸통이 갈갈이 찢기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아비 되는 내가 애통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보다 더 절통했던 것은 그 불구가 된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치료해줄 엄두를 못 내고 … 길거리에서 앵벌이를 시켰다’고 했다. 2001년 고우영은 직접 작업한 복원본을 [딴지일보]에 연재했고 CD롬으로 발매했다. <고우영 삼국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또 다시 뜨거워졌다. 같은 해 MBC라디오는 [배철수의 고우영 삼국지]라는 제목으로 라디오 드라마를 방송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2년 애니북스는 <고우영 삼국지>를 원본대로 복원해서 전 10권 분량으로 발행했고 2008년 아들 고성언이 컬러판을 [일간스포츠]에 재연재하면서 <고우영 삼국지> 발표 30년을 기념했다.
[그림 2] <고우영 삼국지>, 우석출판사 판
[그림 3] <고우영만화대전집-삼국지>, 우석출판사 판
동양의 고전이자 판타지인 [삼국지]는 14세기에 나관중이 소설 형식으로 쓴 [삼국지연의]를 원안으로 한다. 위 촉 오 세나라의 격한 대립과 진의 통일 과정에서 전승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의 의리와 조조와의 대결, 제갈량의 기지 등을 중심으로 극적으로 엮은 작품이다. 한국에는 16세기 초에 전해져 사대부는 물론이고 부녀자나 민간에서도 폭넓게 읽힌 것으로 전해진다. 이 작품에 담긴 테마가 조선의 유교적 지배이념과 일치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소설가들이 [삼국지]를 자신의 문장으로 옮겼고 만화분야에서도 [삼국지]에 대한 재창작이 꾸준히 전개되고 있다. 이희재 이충호가 이문열 황석영의 소설을 원안으로 한 ‘만화 삼국지’를 그렸고 박봉성 이현세도 자신의 화법으로 유비 관우 장비를 그려냈다. 일본에서는 <철인28호>의 요코야마 미쯔테루가 50권 분량의 대작으로 <삼국지>를 그렸고 이학인과 킹 곤타가 조조를 주인공으로 한 <창천항로>를 발표하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진유동 등이 <삼국지>를 발표하며 자국의 문화콘텐츠를 타국에서 더 잘 활용하고 있음을 개탄하기도 했다. <고우영 삼국지>는 수많은 ‘삼국지’ 중에서도 매우 특별하게 재해석된 작품으로 꼽힌다. 캐릭터성이 명확하게 각인된 [삼국지]의 주인공을 전혀 새롭고 독창적인 인물형으로 변화시킨 것이 첫 번째라면 장수나 패왕의 시각이 아니라 민중의 시선으로 사건을 전개하고 해석해낸 부분이 두 번째고 해박한 지식과 풍자정신 그리고 역사적 상상력을 더해 [삼국지]를 한국적 상황에서 읽도록 한 것이 세 번째라 할 수 있다.
[그림 4, 5] <고우영 삼국지>, 주요 등장인물 소개
대부분의 [삼국지]는 황건적의 난이나 유비가 어머니를 위해 차를 구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반면 고우영은 이를 장비가 돼지고기를 팔다가 노점상들과 시비가 붙는 장면으로 출발한다. 유비는 ‘쪼다’로 묘사했고 조조는 ‘좆조’라며 비웃은 반면 장비는 의리의 ‘싸나이’로 묘사하여 두 절대영웅에게 씌워진 ‘무의식적 권위’를 일거에 파괴시켜 버렸다. 충의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진 유비의 본심은 천하의 패권을 잡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고 제갈량이 같은 편인 관우를 시기하여 화용도에 보냈다고 하는 등 꼼수를 부려 경쟁자를 제가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유교적 이념에 은폐돼 있던 영웅들의 숨은 욕망과 현대인들의 심리를 반영한 것으로 ‘삼국지 서사’에 담긴 그 동안의 인식을 해체한 것이다.
고우영이 직접 작품에 등장해 독자와 대화를 유도하는 방식의 연출 역시 특별했다. 이는 독자들이 등장인물과 동일시되는 것을 방지함으로서 작가와 독자가 같은 해석자의 위치에 서게 만들었다. 특히 성인을 대상으로 했던 스포츠신문 연재만화였다는 점을 십분 살려 풍미있는 여체 묘사와 상스럽지 않은 성적 농담 그리고 당시의 현실정치와 군사정권을 비판함으로서 매우 특별한 ‘고우영표 삼국지’를 완성시켰다.
[그림 6, 7] <고우영 삼국지>의 히어로 관우와 히로인 초선
<고우영 삼국지>는 원본으로 불리는 나관중 본과 이를 읽기 편하게 정리한 모종강 본이 아닌 [미야모토 무사시]를 쓴 일본 소설가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를 기초로 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의 비판이 무색할 정도로 ‘고우영표 삼국지’는 지식이나 연령과 무관하게 폭넓게 사랑 받았다. 신문에 연재한 성인 대상의 <고우영 삼국지>가 유행하자 1979년 자유문화사는 고우영이 그 이전 극화풍으로 창작한 소년판 <고우영 만화 삼국지>(전5권)를 발행했다. 이 작품도 큰 인기를 누리자 ‘고우영 마케팅’을 강조한 극장용 만화영화 [도원결의]가 1980년 개봉됐다. [태권브이]시리즈로 유명한 김청기가 감독을 맡았고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속편 [관우 오관돌파] 편도 개봉됐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그 시기의 모든 사람이 ‘고우영 삼국지’의 세계에 빠져있던 셈이다. 소년판은 2005년 자음과모음에서 <고우영 어린이 삼국지>로 복간판을 발행했다.
[그림 8] 극장용만화영화 [고우영 삼국지] 신문광고
■ 작가에 대하여 : 중학 데뷔 이룬 천재만화가에서 국민만화가로 작고한 고우영
[그림 9] 고우영, 애니북스 제공
고우영(1938.9.27.~2005.4.25.)은 만주(현 중국 요녕성)에서 태어나 일본식 교육을 받고 자란 한국인이다. 일제에 협조한 경찰 고위간부였던 아버지 덕에 풍요로운 유년을 보냈지만 일본이 패망하면서 쫓기듯 평안남도 기양으로 피신했다가 1946년 목숨을 걸고 가족과 함께 월남해서 서울에 정착했다. 이 시기 김용환, 김의환 형제의 만화를 자주 접했다고 한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으로 내려와 피난 생활을 하던 중 한 출판업자의 제안으로 16쪽짜리 단행본 만화 <쥐돌이>(1952년)를 발표한다. 그림에 능했던 형들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중학생 시절부터 만화가로서의 천재성을 발휘한 것이다. 고교 재학 시절 어머니와 두 형 그리고 아버지까지 세상을 떠나자 고우영은 진학을 포기하고 전업 만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형 고일영이 추동식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던 <짱구박사>(1958년)를 추동성이라는 필명으로 이어 받았다. 이후 고우영은 역동적이면서 정확한 데생을 가미한 극화풍 아동만화를 발표했으나 ‘짱구박사’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림 9, 10] <고우영 임꺽정>, 김데스크 판
1971년 어문각 출판사에서 삽화가로 활동하던 시절 한국 최초의 스포츠연예신문 [일간스포츠]가 창간된다. 평소 고우영의 만화를 높이 평가했던 백상 장기영(한국일보 사주로 일간스포츠 창간 주도)은 ‘신문 최초의 장편 연재만화’를 주문한다. 몇 차례 고사했던 고우영은 1972년 1월 1일 한국 신문역사와 성인만화의 역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걸작 <임꺽정>을 발표한다. 이후 <수호지> <일지매> <삼국지> <서유기> <가루지기전> 등을 연달아 발표하며 중국과 한국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한편, 내용 전개 시 작가가 직접 등장해서 풍자적 해설을 덧붙이는 ‘고우영표 만화’의 전형을 구축해냈다. 시인 오규원은 이에 대해 ‘과거를 현실 속에서 다시 읽어내고, 그것을 통해서 희화(戱畵)된 고전을 만화로 읽는 재미 말고도 과거를 현재와 함께 바라보는 방법을 일깨워 준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림 11] 고우영 만화의 주요 캐릭터들
고우영은 70년대 중후반 소설가 최인호, 가수 이장희와 함께 대중문화 스타 3인방으로 불릴 만큼 높은 인기를 누렸다. 제15, 16대 한국만화가협회장을 역임했고 한국여행인클럽 회장을 맡을 정도로 여행과 함께 다양한 취미 활동을 즐겼다. 2001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2003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만화공로상 등을 받았다. 2005년 숙환으로 별세했고 생전의 공훈을 인정받아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됐다.
■ 명장면 명대사 : 너 자신에게 묻고 너 스스로가 답하라
[그림 12] 가능한 모든 방식을 총 동원했던 고우영표 서술
<고우영 삼국지>는 현대적 해석과 패러디가 넘쳐나는 작품이다. 황건적을 옐로클럽으로 부르기도 했고 당시 유행하던 한명숙의 가요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황건적의 군가로 차용하기도 했다. 탱크나 대포 같은 현대적 무기가 느닷없이 등장하는가 하면 당시의 유행어도 심심치 않게 사용됐다. 장비의 등장을 알리는 <고우영 삼국지>의 첫 페이지는 이 같은 ‘고우영 만화’ 스타일의 집약체로 볼 수 있다. 목청 좋은 돼지고기 장수가 ‘돼지고기 사~랴!’라고 외치자 소심한 처녀 장수는 옆에서 ‘나~도요’만 외쳤다는 우스개를 포함해서 도표와 영어, 희화적 지문이 난무한다. 물론 우스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림 13] 풍자와 함께 극적 긴장과 비장미를 갖췄던 고우영표 연출
대하 서사극이 지녀야할 극적 긴장과 비장미도 빼 놓을 수 없다. 그중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장면이 후반부에 등장하는 적토마 이야기이다. 적토마는 ‘주인이 죽었다고 자기도 여물을 안 먹는’ 충직한 명마이다. 이를 지켜보는 관우는 그 때서야 자신이 죽었음을 인식하고 이는 많은 독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그림 14] 특정 상황별 대처 방안을 알려준 고우영표 처세
[삼국지]는 그 내용 중에 다양한 정치적 수사와 처세에 관한 사례들로 가득해서 ‘삼국지를 읽어야 어른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고우영 삼국지> 역시 각종 상황에 맞는 수많은 대응 사례들이 펼쳐진다. 그중 유비의 눈에 들어 파격적인 대우로 특별 채용된 재갈량이 손권의 신하들과 만나는 대목이 눈에 띤다. 그들이 보기에는 도무지 ‘깜’도 안 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출세 줄을 잡았을까. 그들은 비아냥거리는 시선으로 뻔한 질문을 던져 제갈량을 검증하려 했다. 제갈량은 손을 번쩍 치켜들고 ‘너 자신에게 묻고 너 스스로가 답하라’고 소리쳤다. 결코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자신의 흠을 보며 타인의 흠을 논하라’는 의미로 읽힌다.
참고자료
고우영, 고우영 삼국지, 애니북스, 2002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47592
네이버 지식백과, 고우영 항목
http://terms.naver.com/entry.nhn?cid=200000000&docId=1234223&mobile&categoryId=200001630
위키백과, 고우영 삼국지 항목
http://ko.wikipedia.org/wiki/%EA%B3%A0%EC%9A%B0%EC%98%81_%EC%82%BC%EA%B5%AD%EC%A7%80
장상용, 나는 펜이고 펜이 곧 나다, 크림슨, 2008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5013290
한겨레21, 칼 품은 입심, 고우영 만화는 영원하리, 김낙호, 2005.5.4
http://legacy.h21.hani.co.kr/section-021015000/2005/05/021015000200505040558077.html
이상우 블로그 홈즈네집, 만화로 사장 혼낸 고우영
http://blog.daum.net/myswoo17/210
박석환/ 만화평론가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 만화평론이 당선된 후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만화비평서 <만화시비탕탕탕>, <코믹스만화의 세계>가 있고, 만화이론서 <디지털만화 비즈니스-잘가라 종이만화>,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공저로는 <만화>, <한국의 만화가 1, 2> 등이 있다.
[후기] 고우영 선생님을 생전에 뵌 일이 없다. 한국만화연구원에서 가르침을 주셨던 손상익 선생님이 인터뷰하러 간다는 이야기를 몇번 들었고 연구원에 한번 놀러온다고 하더라는 이야기도 몇차례 있었지만 인연이 없었던 모양이다(그때는 직접 찾아가서 인사드릴 군번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진흥원에서 일하면서 건물에 입주한 둘째 아들님을 알게 됐다. CF모델로도 얼굴이 익은 고성언님은 늘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다니는 분으로 젊은 시절 고우영 선생님과 많이 닮았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얼굴은 모르겠는데 운동재능이 뛰어난 것은 꼭 닮은 것 같다. 고우영 선생님은 생전에 취미가로 소문날 정도로 다양한 운동과 여가활동을 즐기셨다고 한다.
한국만화정전을 쓰면서 나름의 원칙을 세웠다.
100편의 대표적인 작품을 선정해 소개한다는 원 취지도 있지만 그러다보면 각 자체가 다른 몇몇 작가의 작품이 집중적으로 소개될 것이고 그러다보면 작가소개 부분이 중복될 수 있고 한국만화의 장르적 지형이 좁게 도출될 수 있다는 걱정을 했다. 그래서 1작가의 최고작 1편만 소개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만화사에 주요한 의미를 지닌 작품이 여럿인 경우 이는 작가소개란에서 해소하지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고보니 작가별로 최고의 작품, 대표작품을 무엇으로 선정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이전 100편 선정 사례들이 있어서 큰 틀거리는 잡았지만 최종적 선택은 내가 해야했다.
임꺽정, 수호지, 삼국지, 가루지기까지 네편을 놓고 고민을 하다가 현재적 효용까지를 고려해서 <삼국지>를 골랐다. 그리고 삼국지를 다시 읽으면서 삼국지 창작 이후에 벌어졌던 정시적 사건들과 사회문화적 상황들이 유사하게 겹쳐서 읽히는 대목이 많았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손권의 부하들과 제갈량의 대화였다.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도 죄요, 신뢰를 하지 않는 것도 죄처럼 보였다. 마치 SNS에 떠도는 수많은 의구심의 말숲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