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심똘이(이정문 글그림), 한국만화정전, 네이버캐스트, 2013.02.25

나쁜 놈 골려주는 심술히어로 - 심똘이, 이정문

[그림 1] 이정문, <심똘이>, 1977년 [새소년] 연재 개시, 클로버문고 초판 발행

 

■ 작품에 대하여 : 쌤통의 미학과 전국대회서사 보여준 명랑만화

이정문의 <심똘이>는 아동교양지 [새소년]의 별책부록만화로 1977년부터 1978년까지 연재된 작품이다. 1959년 난센스만화 [심술첨지]로 데뷔한 작가가 <설인알파칸> <철인캉타우> 등 공상과학만화에 집중하다가 다시 난센스의 세계로 넘어오면서 발표한 작품이다. 심술첨지의 손자인 심똘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정문은 이 작품을 시작으로 20여 명이 넘는 심술 캐릭터를 50여 년간 발표했다. 이정문의 심술시리즈는 [심똘이]로부터 파생된 스핀오프(spin-off, 이전에 나왔던 작품의 등장인물이나 상황에 기초하여 만든 작품) 만화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슈퍼히어로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유니버스(세계관) 시스템을 명랑만화의 문법으로 제시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림 2] 심술시리즈의 인기 주인공들

 

심술(心術)의 사전적 의미는 ‘온당하지 아니하게 고집을 부리는 마음’, ‘남을 골리기 좋아하거나 남이 잘못되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보’를 뜻한다. ‘당찮은 말이나 일’을 뜻하는 난센스와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뜻 말로만 읽으면 ‘마음(心)기술(術)’이다. 이 기술을 배우겠다고 강원도에서 심술 좀 부려봤다는 돌갑이가 심똘이를 찾아 서울에 온다. 돌갑이는 우여곡절 끝에 심술1,000단 심똘이의 제자가 되고 심술50급으로 입문 교육을 받게 된다.

[그림 3] 심똘이의 조상님들
[그림 4] 놀부의 유치한 심술 사례

 

입문코스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심술계보론이다. 심술 가문의 선조인 심술도사는 심술등급 1만단. 심술거사는 9천단, 이조시대 팔도 심술 챔피언이었던 심술대감은 8천단, 심술주사는 7천5백단, 심술노파는 7천단, 심술참봉은 6천단 그리고 그 유명한 심술첨지는 5천단이다. 미스터심술, 심보누나에 이어 심똘이는 1천단. 그 밑으로 심순이, 심통이, 심술부부가 있고 심술강아지 심왈왈이 380단이다(이 계보에 등장하는 인물을 비롯해서 <심똘이> 이후 다양하게 파생된 심술가의 후예들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발표되는데 이를 묶어서 ‘이정문의 심술시리즈’라고 한다). 둘째는 심술개론이다. 심술이란 ‘새암하는 마음이 사납고 고집스러운 마음씨’라고 정의하며 ‘흥부와 놀부전’에 나오는 놀부의 심술을 역사적 사례로 예시한다. 놀부의 심술은 불난 집에 가서 부채질하기, 비 오는 날 장독 뚜껑 열기, 호박에 말뚝 박기 등등으로 조금 유치한 구석이 있다며 새로운 심술의 세계를 암시한다. 셋째는 심술 행동강령이다. 심술가족은 ‘나쁜 짓 하는 녀석에게만 심술을 부리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이를 어길 시는 심술 1만단인 심술도사에게 불려가 벌을 받게 된다는 형벌 규칙도 알려준다.

[그림 5] 심술 전국대회
[그림 6] 심술 문제 풀이

 

돌갑이의 심술입문과정을 지도한 심똘이 앞으로 세계심술협회에서 편지가 날아든다. 남태평양 삐삐섬에서 심술대회가 열리니 한국에서 심술대회를 열어 ‘우승하면 오라’는 초청장이었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본격적인 전개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한국 대표를 뽑는 서든데스 방식의 심술대회가 동네를 시작으로 전국대회로, 세계대회로 이어진다. 심술대회의 형식은 못된 짓을 한 사람의 예시를 제시하고 이 사람에게 부린 심술을 점수로 환산하여 승자를 가리는 방식이다. 스포츠극화에서나 볼 수 있는 국가대표에 대한 열망과 대전격투만화에서나 등장할법한 강자와의 대결(전국대회 서사는 <드래곤볼>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리고 모험극화에서 보여 지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도전이 펼쳐진다. 명랑만화를 밝고 환한 것이라 할 때 이 같은 설정은 ‘반명랑만화’라 할 만한 파격이다.

[그림 7] 이정문, 심똘이와 심쑥이, 요요코믹스 판
[그림 8] 이정문, 심똘이의 외계도전, 재능아카데미 판

 

당대의 명랑만화가 일반인 이하의 인물형을 그리되 이를 선도하거나 계도하는 형식으로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면 [심똘이]에는 심술계보가 등장하지만 심똘이의 심술을 선도하거나 계도하는 가족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가족이 등장하지 않는 성장드라마 역시 <슬램덩크>만의 것이 아니다). 심똘이는 당찮은 일을 벌이는 사람에게 당찮은 방식으로 심술이라는 벌을 내리는 문제의 행위자이자 해결사였다. 이는 현재까지도 아동만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캐릭터이다. 그래서 이정문의 만화는 명랑만화라기보다는 ‘심술만화’이다. 이는 한국만화사에서 그만이 쌓아온 독창적 만화장르라 할 수 있다. 심똘이는 <심똘이의 심술대행진>, <심똘이 외계도전>, <심똘이와 심쑥이> 등에 재등장하며 심술 1,000단의 명성을 이어갔다.


■ 작가에 대하여 : 심술 유니버스 구축한 만화예언가 이정문

[그림 9] 이정문

 

이정문은 1941년 일본 고베에서 3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1944년 가족과 함께 귀국해 유복하게 살았으나 한국전쟁 등으로 가세가 기울자 학업에 전념한 큰형을 대신해 열두 살부터 생업에 뛰어들었다. 구두닦이, 신문팔이 등을 하면서 고학으로 고교과정을 공부했고 1960년 경희대학교에 입학했다. 문구점 점원으로 일하면서 만화가의 꿈을 키웠고 1959년 잡지 [아리랑]에 4컷만화 <심술첨지>를 발표하며 만화계에 데뷔했다. 어렵던 시절 약한 사람에게만 악하게 굴던 사람들을 말없이 혼내주고 싶다는 욕망에서 탄생한 작품으로 심술만화 시리즈 1호라 할 수 있다. 이후 <심똘이>, <심쑥이>, <심술통> 등으로 이어지는 작품을 발표하며 ‘계보형 시리즈만화’의 전형을 구축했다. 이를 ‘심술 유니버스’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현실 세계의 악인을 심술로 혼내준다는 설정은 히어로물의 장르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이정문만화의 한 축이 공상과학만화이다. 1965년 어린이잡지 [새소년]에 발표한 <설인 알파칸>, 1976년 [소년생활]에 발표한 양산형 거대로봇만화 <철인캉타우> 등이 그것이다. 외계의 위협을 외계의 힘과 협심하여 벗어난다는 설정을 지닌 두 작품은 한국 SF만화의 여명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림 10] 복제된 마징가와 싸우는 철인 캉타우
[그림 11] 1965년에 그린 서기2000년에 대한 상상만화

 

이와 함께 ‘이정문’하면 떠오르는 것이 ‘미래상상만화’이다. 1965년에 그린 ‘서기 2000년대의 생활의 이모저모’, 2010년 그린 ‘2041’ 등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변모하게 될 미래의 생활상을 상상해서 그린 것으로 65년에 예언한 전기자동차, 소형TV전화기 등이 실생활화 되었다는 점이 부각되며 40년이 훌쩍 넘은 시기에 다시 주목 받기도 했다.
2007년 청강만화박물관에서 ‘이정문, 불가능 없는 이야기들’ 전시회가 열렸고, 2010년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이정문 50주년 특별전’이 열린바 있다. 1993년 제3회 한국만화문화상, 2012년 고바우만화상 등을 수상했다. 2000년 초등학교 전학년 국어교과서에 만화작품이 게재됐고 2004년 심술 가족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만화우표가 발행되기도 했다.


■ 명장면 명대사 : 심술가문의 영광을 지키는 내가 ‘심똘이닷!’

자아 정체성과 자아 존중감이 강한 심똘이는 늘 자신이 처한 상황과 역할에 대해 강조한다. 자신만이 최고의 심술로 나쁜 짓 한 사람을 응징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때로는 별반 나쁜 짓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심술을 부리는 것 아닌가 싶지만 결국 어떤 행위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의미로 귀결된다.

[그림 12] 자아존중감이 강한 심똘이
[그림 13] 놀부를 비웃다가 놀부와 심술대결을 펼치게 된 심똘이

 

학교 가기 싫어 늦잠 자는 아이 옆에서 거대한 종을 치고, 길거리에 담배꽁초를 버린 사람의 입에 그 꽁초를 돌려 넣어주고, 바닷가에 기름을 유출시킨 사람에게는 입으로 기름을 빨아서 그릇에 담게 하는 초법적 심술을 부린다.

[그림 14, 15] 잘 못된 태도를 고쳐주기 위한 심똘이의 심술

 

심똘이의 심술은 함무라비 법전에 등장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같은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법적으로는 금지되어있지만 정서상으로는 극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영웅만화의 일반적 테마이다. 법적으로는 ‘사적보복’이라고 해서 강력하게 규제되고 있지만 괘씸한 놈을 골려주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쌤통’이라며 동감을 표하기도 하고 악인이 심술에 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도 한다. <심똘이>가 전하는 메시지는 나쁜 짓 하면 주변에 있는 꼬맹이한테도 심술을 당할 수 있으니 ‘착하게 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심술’이라는 것은 체면을 중시했던 동양적 사고에서 비롯된 한국식 슈퍼히어로의 주무기였다.


참고자료

네이버 N스토어, 이정문, 심똘이, 드림컴어스(클로버문고 판)
http://nstore.naver.com/comic/detail.nhn?productNo=430301
네이버 지식백과, 손상익, 한국 심술미학의 만화적 고찰, 이정문의 ‘심술참봉5대’
http://terms.naver.com/entry.nhn?cid=1389&docId=1053264&mobile&categoryId=1389
디지털만화규장각, ‘이정문’ 관련 항목
http://www.kcomics.net/Artist/view_info.asp?cdidx=1021
한겨레, ‘철인 캉타우 심술통 골방의 추억 재발견’, 2007.03.18.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197171.html
조선일보, 이정문 인터뷰, ‘철인 캉타우 아바타 못지 않은 잠재력’, 2010.01.30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1/29/2010012901152.html


박석환/ 만화평론가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 만화평론이 당선된 후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만화비평서 <만화시비탕탕탕>, <코믹스만화의 세계>가 있고, 만화이론서 <디지털만화 비즈니스-잘가라 종이만화>,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공저로는 <만화>, <한국의 만화가 1, 2> 등이 있다.

후기

다른 선생님들과도 마찬가지였을지 모르지만 이정문 선생님과는 이런저런 자리에서 수차례 인사를 나눴지만 작품이나 근황에 대해서 좀 더 여유있게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대개 인사드릴 수 있는 곳이 행사장이고, 행사장 일정에 끌려다니다 보면 서로 바쁘니 마주칠 때마다 헛 웃음만 지어 보이는 정도였다.

돌아서고 보면 심술시리즈의 계보에 대해서도 묻고 싶고 심술 가계도나 세계관에 대해서도 묻고 싶었지만 늘 마음뿐이었다. 다음 기회에, 다음 기회에 하다가 결국 내 생각만 정리한 글이 됐다.

심술시리즈 보다는 철인캉타우를 대표작으로 뽑아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기도 했다.
한국형 로봇만화의 오리진을 찾자면 다른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캉타우를 빼 놓을 수 없다.
특히, 마징가와의 한일 로봇 대결을 펼쳐보인 장면에서는 당대적 호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나름 명랑만화 5대천왕쯤 되는 작품들을 꼽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명랑의 뿌리를 기반으로 세확장을 보여주는 작품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이 곧 개인적 호불호가 아니라 당대적 트랜드라 믿기 때문이다.
심똘이로 시작된 심술시리즈는 캐릭터 중심 명랑만화의 서사확장 사례를 모범적으로 제시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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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eokhwan

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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