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에 담은 소년의 욕망 - 요철발명왕, 윤승운
[그림 1] 윤승운, <요철발명왕>, 1975년 [어깨동무] 연재 개시, 2010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복간
■ 작품에 대하여 : 아이들의 욕망을 실패한 발명에 담아낸 명랑만화
윤승운의 <요철발명왕>은 교양잡지 [어깨동무]의 별책부록만화로 1975년부터 1977년까지 연재된 작품이다. <꼴찌와 한심이> <두심이 표류기>에 이은 히트작으로 <맹꽁이서당>과 함께 윤승운의 대표작이다. ‘집과 방’을 배경으로 한 아버지와의 좌식 대담과 동네 앞 신장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명랑소년의 모험과 도전’이 주요한 테마이다. 독특한 것은 이 작품이 해맑은 말썽꾸러기의 맹랑한 일상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발명’이라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우스개 만화였다는 점이다. 당대의 만화들이 주인공의 독특한 이름과 외형, 성격 만들기에 집중했다면 이 작품의 주인공 요철이는 한 발짝 더 나아가서 ‘발명왕’이라는 기능적 성격을 부여 받았다.
[그림 2] 발명품 전시회를 열기위해 초대장을 뿌리는 요철
발명은 ‘아직까지 없던 기술이나 물건을 새로 생각하여 만들어내는 것’이다. 70년대 대한민국은 경제개발과 산업화 차원에서 ‘기술입국’ ‘과학입국’을 기치로 내걸고 있었다. 무언가를 새로 만들어내는 기술자와 발명가가 환영 받았던 시절이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참가했던 한국 대표단이 종합 1위를 차지하고 귀국하면 성대한 카퍼레이드 행사가 진행됐고 신문과 방송은 이를 전 국민에게 알렸었다. 당연히 그 시절 아이들에게 기술자는 미래의 꿈이었고 발명은 곧 꿈을 향한 도전이었다.
[그림 3] [어깨동무]의 별책부록만화로 연재 된 <요철발명왕>의 표지
집 안에 비밀연구소를 차린 요철은 아버지의 눈을 피해 틈만 나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다. 공부 안하고 집 밖으로 탈출할 수 있는 상자를 시작으로 이태리타올로 밀지 않아도 저절로 때가 나오는 약품, 발명가대회에 출품한 쥐 잡는 기계, 특허국에 신고하러 간 고기 잡는 망태 등 실용신안 특허급 발명품을 쉼 없이 제작했다. 잠수함, 공룡 잡는 대포, 타임머신, 우주선 같은 초대형 개발 프로젝트도 순식간에 추진했다. 빵점대장이라는 별명답게 공부와 담을 쌓고 사는 요철이가 어떻게 그런 발명품을 만들어냈는지는 알 길이 없다. 2000년대 초반 ‘자세한 것은 생략한다’라고 선언했던 김성모 만화의 리얼리즘보다 1970년대 윤승운이 구사한 생략법은 더 간략했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발명의 과정이나 그럴듯한 묘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림 4-1,2] 클로버문고 판 <요철발명왕>과 아이세움 판 <요철발명왕>
요철은 그 시절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데 지상에 없는 물건을 직접 만들어 쓴 자급자족형 소년이었다. 작품은 요철이 어떻게 그 것을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왜 그것이 필요하냐에 집중했고 어디에 쓸 물건이었는지를 밝히고자 했다. 그 것이 곧 그 시절 아이들이 욕망했던 것이었고 요철은 아이들의 욕망을 엉뚱한 물건을 만들어 어루만졌다. 게을러지고 싶고, 맘대로 하고 싶고, 거꾸로 살아보고 싶은 욕망들이 요철의 발명 속에 담겨졌다. 그 결과는 늘 말썽으로 이해됐고 요철의 요상한 행각을 신문은 사건·사고로 보도했다. 현실세계에서 어른 발명왕은 사회적 환대를 받았지만 만화 속 어린이 발명왕은 꾸중을 들어야 했다. 요철의 발명에 담긴 ‘불량한 생각과 실패한 도전’은 같은 욕망을 지닌 아이들 독자에게도 우스개의 대상이었다는 점은 서글프다. 물론, 요철의 ‘실패한 발명’을 극복하기 위해 그 시절의 독자들 중 몇몇은 분명 위대한 발명왕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그림 5-1,2] <요철발명왕>을 테마로 남성들의 기호품을 소개한 잡지, GQ, 2011년 2월호 중
요철과 발명왕 역시 이 작품에서 그치지 않고 <아슬아슬 발명왕>(1980년), <위대한 요철박사>(1983년) 등으로 이어졌다. <요철발명왕> 단행본은 클로버문고판이 가장 유명하지만 만화단행본에 대한 심의 기준이 잡지연재시보다 높아서 많은 부분이 자체 수정되어 출판됐다. 2010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이를 잡지 연재 시의 형태로 복원하여 단행본 전4권 세트로 복간했다.
[그림 6-1,2] 클로버문고판에서 과장된 표현을 순화한 페이지와 이를 원본대로 복원한 복간판 페이지
■ 작가에 대하여 : 넌센스만화에 교양이라는 가치를 심은 이미지스토리텔러
[그림 7] 윤승운, 씨엔씨레볼루션 제공
윤승운(1943년 함경북도 종성군 출생)은 1958년 서울 은광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시절 길창덕(1930~2010)의 만화에 반해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제자로 받아줄 것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만화 그리는 법을 지도해달라는 ‘19세 소년의 패기’에 길창덕은 격려의 답장을 보냈다. 독자투고 방식으로 습작을 하던 윤승운은 1961년 대중잡지 [아리랑] 신인만화 공모전에 입선하며 데뷔한다. 이후 다양한 대중잡지에 1, 2페이지 분량의 넌센스만화를 게재하다가 1968년 [만화왕국]에 발표한 <꼴찌와 한심이>로 인기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남들보다 만화재주가 덜하다며 늘 다른 일을 찾기도 했지만 <요철발명왕>으로 70년대 명랑만화 붐의 주역이 됐고, 80년대부터 30여 년간 창작을 이어오고 있는 <맹꽁이서당>으로 2000년대 불어 닥친 교양학습만화 붐의 원조가 됐다. 연세대학교 농업개발원을 수료(1969년)하고 성균관대학교 한림원 한문연구과정(1994년)을 7년간 이수했다. 한때 낙농업에 뜻을 두고 소를 키우기도 했고 2007년 이후로는 연재활동을 중지하고 귀농하여 농사를 짓고 있다.
1991년 문화부가 재정한 제1회 만화문화상(현 대한민국만화대상)을 받았고 2012년 SICAF코믹어워드를 수상했다. 1994년 서울 정도 600년 타임캡슐에 <겨레의 인걸>이 수장됐고, 2002년 <맹꽁이서당> 만화우표가 발매되기도 했다. 같은 해 국립순천대 만화학과 석좌교수로 4년 간 후학을 지도했다.
■ 명장면 명대사 : 오늘은 ‘뭘 만들어야’ 걱정이 없을까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요철발명왕>의 명장면은 요철이 자신의 비밀 발명연구소로 들어가 오늘은 ‘뭘 만들어야’ 할까를 고민하는 장면일 것이다. 요철이의 발명 이야기는 늘 이 연구소에서부터 출발한다. 연구소에서의 성공과 연구소 밖에서의 실패가 반복되는 이야기 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림 8] 발명연구소에 들어가 뭘 만들지 고민하는 요철
발명의 성공은 자신만의 아지트인 비밀연구소에서 진행되지만 발명의 실패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확인된다. 즉, 자신의 걱정을 해결하기 위한 발명은 다른 사람의 걱정이나 효용과는 무관하다는 점이 강조된다. 그리고 제발 사고 좀 치지 말고 ‘공부나 해’라는 것이 <요철발명왕>에 담긴 교훈적 정서이다. 요철을 응원하는 이들조차 그의 성공보다는 그의 실패를 기대했고 작가 역시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다 어떻게 사용하다가 사고가 벌어지는지를 부각시켰다. 그럼에도 요철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 모든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뭘 만들어야’할지를 고민했고 쉬지 않고 만든 것을 공개했다.
단념하라는 충고도, 그만하라는 호통과 질타도, 말도 안 된다는 수군거림과 비웃음 속에서도 요철은 ‘뭘 만들어야’할지를 고민했다. 남들은 그것이 또 다른 걱정을 만드는 일이라 했지만 요철은 그 것이 지금의 걱정을 해결하는 일이라 믿었다. 걱정이 걱정을 만들어 낸 꼴이라 했지만 요철은 걱정을 해소할 수 있는 발명이 또 다른 발명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알았다. 그리고 매일매일 뭘 만들었다. 뭘 만들까. 지금은 뭘 만들어야 할까.
참고자료
윤승운, ‘요철발명왕’, 씨엔씨레볼루션, 2010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253232
디지털만화규장각, ‘윤승운’ 항목
http://www.kcomics.net/Artist/view_info.asp?cdidx=867&i=1
네이버 카페, 클로버문고의 향수
http://cafe.naver.com/clovercomic
한겨레, ‘산만한 나, 만화 그릴 땐 궁뎅이 질겨’, 2012.05.17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33410.html
전자신문, ‘내 인생의 만화-요철발명왕’, 2009.05.29
http://www.etnews.com/news/special/2128242_1525.html
박석환/ 만화평론가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 만화평론이 당선된 후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만화비평서 <만화시비탕탕탕>, <코믹스만화의 세계>가 있고, 만화이론서 <디지털만화 비즈니스-잘가라 종이만화>,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공저로는 <만화>, <한국의 만화가 1, 2> 등이 있다.
블로그는 http://blog.naver.com/comicspam 이다.
[후기] 다시 생각해보면 요철은 퍽이나 한국적인 캐릭터였다. 아니 어찌보면 정착농경생활을 하던 시기의 원시적 감수성이 그대로 남아있는 캐릭터인 것 같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 만들어서 해결하고, 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요철의 삶과 생활태도는 어찌보면 농부의 그 것과도 같아 보인다.
해 뜨면 일나가고 해지면 들어오고 또 일없이도 논과 밭으로 가던 농군들처럼 요철은 그렇게 발명에 임했다. 그리고 그처럼 윤승운 선생님은 생의 작업으로 만화를 그렸다. 그렇게 창작된 만화는 세상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가치와 매력을 지니고 살아있다. 과거에 발매됐던 책들이 새로 찍혀 나오고 미처 구매하지 못한 이들이 그 가치를 찾아 구해 읽는 만화책이 됐다.
선생님은 실제로 만화를 그리면서 소를 키우기도 했다. 지금도 손수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매일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고 그것을 발명하며 살았던 요철이처럼 선생님 매일의 필요를 스스로 만들면서 살고 계신다.
그렇게 살아 갈 수 있을까. 매일매일 필요한 하루, 매일매일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삶... 그렇게 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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