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7일 조선일보는 1면 톱으로 “‘열혈초등학교’ 이 폭력 웹툰을 아십니까”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웹툰이 ‘폭력을 유쾌한 짓’으로 합리화하고 ‘학교 폭력을 조장’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만화계를 비롯해서 콘텐츠 관련업계와 종사자들은 격노했다.
한국만화가협회 등 6개 단체는 긴급회동을 통해 “학교폭력의 원인이 마치 만화인양 매도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흐리는 전형적인 희생양 찾기와 마녀사냥에 다름 아니다”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신문은 이에 ‘유해신고 받고도 방통심의위 1년째 방치(1.10)’라는 기사로 해당 웹툰에 대한 압박 수위를 강화했다. 바로 다음 날 ‘학교폭력 희화화 웹툰 열혈초등학교 연재중단(1.11)’이라는 기사를 내보내며 사태가 일단락됐음을 알렸다.
‘열혈초등학교’를 그린 귀귀 작가를 비롯해 다수의 만화가들이 개인 블로그 등을 통해 이 신문을 비판하는 웹툰을 그렸고 트위터 등의 SNS에서는 ‘표현의 자유 침해’와 ‘청소년의 모방심리’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만화계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 사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 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포털사이트에 연재되고 있는 24편의 웹툰을 대상으로 ‘청소년 유해매체물 결정관련 사전통지 및 의견제출 안내’라는 공문을 발송했기 때문이다. 아쉬운 것은 이 중 10여 편은 해당 포털사이트의 자체 기준에 의해 이미 19세 미만 구독금지 방식으로 서비스되고 있다는 점이다. 안타까운 것은 대한민국콘텐츠어워드에서 장관상을 수상한 정연식 작가의 ‘더 파이브’, 신인상을 수상한 꼬마비/노마비 작가의 ‘살인자ㅇ난감’ 등 이미 대중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평가를 받은 작품도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실망스러운 것은 ‘전기통신 회선을 통해…폭력을 조장하거나 미화할 수 있는 내용’과 무관해 보이는 호랑 작가의 ‘2011미스테리단편’도 목록에 있었다. 3D 효과를 가미한 동적 연출로 유투브 등을 통해 해외에서 화제를 모으면서 한국 웹툰을 세계에 알린 작품이다.
만화계는 이번 상황과 관련 18일 만화가협회 사무실에 모여서 대책회의를 열었고 강도 높은 대응책을 논의했다. 참석자들은 1997년 청소년보호법 시행과 함께 성인만화에 대한 과도한 단속으로 출판만화시장이 초토화됐던 악몽을 떠올렸다. 당시 최고 인기 만화가였던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를 검찰이 음란물로 규정하여 기소하고 몇몇 보수적 시민단체의 고발로 스포츠신문 연재만화가가 줄줄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곧이어 시행된 청소년보호법은 서점에서 성인만화 또는 성인만화로 오해 받을 수 있는 오락성 만화의 유통을 원천봉쇄했다. 4조원 시장이라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출판만화시장은 성장 동력을 잃었고 이후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년 7천 억 원대의 시장규모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마저도 기실은 60% 이상이 교양·학습성 만화의 매출 성장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다행히 만화계는 오락성 만화의 새로운 유통처로 포털사이트를 주목했다. 포털사이트는 웹툰이라는 독창적인 콘텐츠의 탄생 무대가 됐고 지난 15년간 다양한 작가와 작품을 양산해내며 ‘영상콘텐츠산업의 머리’ 역할을 해냈다. 강풀, 윤태호 등의 웹투니스타를 탄생시켰고 웹툰은 수많은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등의 원작이 됐다. 세계만화계는 한국만화의 이 같은 변화와 미래지향적인 상황에 박수를 보낸바 있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는 몇몇 웹툰이 ‘청소년에게 유해한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는 가설과 개연성만으로 미래만화시장의 핵심 콘텐츠인 웹툰을 흔들고 있다. 웹툰이 학교폭력을 조장했다는 연구 결과나 보고를 들은 바 없다. 그러나 만화계는 심의기관이 만화산업을 어떻게 붕괴시키고 콘텐츠 산업 전반의 위축을 가져왔는지 증명할 수 있다. 같은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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