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 변천사를 통해 내일의 만화를 발견하자
만화는 단순, 과장, 풍자의 예술이다. 대상을 단순화시킨 선묘화 같은 기법과 대상의 상징적 요소를 극적으로 표현하는 과장적 수사법을 주로 활용한다. 이와 함께 서술적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내용상으로는 인간 생활사나 세태에 대한 비판적 정서를 담고 있다.
만화는 이처럼 회화적 특성과 영상적 특성, 문학적 특성을 내포하고 있는 복합예술이다.
만화의 회화적 특성을 중심으로 고대 동굴벽화나 풍속화 등에서 만화의 원형을 찾고자 하는 노력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만화의 출발은 인쇄술의 대중화와 신문의 발전 단계에서 찾고 있다. 이는 만화가 복제를 통해 보급되고 대중매체의 특성에 맞춰 발전했기 때문이다. 만화가 주요하게 게재되고, 만화 산업의 핵심 매체가 변천되는 과정을 짚어보는 것은 이를 통해 오늘의 만화를 해석하고 내일의 만화를 유추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841년 창간된 영국의 만화신문 펀치]
신문, 만화를 탄생시키다
한국 근현대 만화의 역사는 인쇄출판과 신문의 역사와 함께 한다. 1883년 조선 후기 외국 문물을 익히고 돌아온 수신사 박영효 등의 노력으로 박문국이 설립되고 그 해 10월 한국 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가 발간됐다. 이후 근대 만화의 씨앗도 영글어 <가정잡지> 등 몇몇 인쇄물에서 만화적인 기법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대한민보에 게재된 한국 최초의 만화]
한국 최초의 만화로 평가되고 있는 이도영의 ‘삽화’는 현재적 의미의 1컷 시사만화로 1909년 6월 2일 창간된 <대한민보>의 탄생과 함께 했다. <한성순보> 기자로 일했던 오세창의 추천으로 최초의 만화가가 된 이도영은 서화가 출신의 젊은 애국지사로 일제 치하의 시국상황을 통렬하게 비판하며 신문이 강제 폐간될 때(1910년 8월 31일)까지 활약했다. 첫 회 연재분은 <대한민보>의 창간 취지를 설명한 홍보성 그림으로 볼 수 있으나 네 가닥으로 표현한 선이 만화가 지닌 ‘시간의 연속성’을 선화로 표현한 것이라는 후대의 평가와 함께 최초의 만화로 기록됐다. 이도영은 이 지면을 통해 만화의 근대적 수사법인 칸나누기, 동작선, 말풍선의 한국적 응용 사례를 제시했다.
1920년 창간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는 필명을 쓰거나 이름이 명기되지 않은 ‘독자 투고만화’가 다수 게재됐다. 만화라는 명칭 역시 이 시기의 인쇄물에서부터 처음 사용됐다. 미국에서 신문학을 전공하고 <동아일보> 창간 멤버로 활동했던 김동성은 밭전(田)자 형태의 만화를 고안하는가 하면 직접 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동아일보에 게재된 김동성의 4칸만화( 1920.7.26.)]
<조선일보>로 자리를 옮겨서는 본격 기획창작만화라 할 수 있는 눈목(目)자 형태의 만화 ‘멍텅구리 헛물켜기’를 탄생시켰다. 이상협과 안재홍이 스토리를 맡았고 노수현이 그림을 그린 이 작품은 한량들의 애정행각을 소재로 한 슬랩스틱 코미디로 ‘멍텅구리’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이에 맞서 안석주의 ‘허풍선이 모험기담’을 연재하면서 신문 간 ‘만화경쟁’을 하기도 했다.
[1926년 영화화 된 멍텅구리 헛물켜기의 한 장면]
현재 만화산업의 주요한 비즈니스 모델이 모두 이 시기에 정립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형식변화, 캐릭터만화, 스토리작가와의 분업, 프로듀서 개입 창작, 만화원작의 영상화, 만화를 통한 매체 간 경쟁 등이 그것이다.
잡지, 만화의 소재를 확장 시키다
1945년 해방과 함께 통제됐던 말과 글이 풀리면서 신문과 잡지가 쏟아져 나왔다.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만화도 인쇄매체의 폭발적 증가와 함께 재등장했다. 최영수, 김규택 등 기성작가군과 김용환, 김의환 형제, 신동헌, 김성환 등 신진작가군의 활약이 펼쳐졌다. 만화를 중심으로 편집된 신문 <만화뉴스>가 발행되며 당대 최고의 판매기록을 수립하기도 했고, <신세대>, <어린이> 등 다양한 잡지가 만화를 게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이 벌어지며 만화는 또 다시 위기에 처한다.
당대의 신예 스타 ‘코주부’ 김용환과 ‘고바우’ 김성환은 육군본부 등에서 대민 살포용 삐라와 선전용 만화책, 포스터 등을 그려야 했다. 만화라는 형식이 지닌 ‘연상 작용’의 기능성과 대중파급력을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었지만 아쉬운 역사의 한 장면이다.
한국전쟁 이후에도 만화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혼란스런 정국을 호되게 비판하기도 했고 피로한 대중에게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과 희망을 전하기도 했다. 시대극화의 전범을 보여줬던 김종래, 박광현, 박기당과 함께 기발한 상상력으로 명랑만화의 세계를 구축한 임수, 김경언, 신문수 등이 이 시기에 등장해 만화계에 활력을 더했다.
[다양한 만화가 게재되어 인기를 누렸던 70~80년대 어린이잡지]
1967년 <어깨동무> 창간 이후로는 <새소년>, <소년중앙> 등의 아동교양잡지와 <선데이서울> 등 성인을 위한 오락매체가 창간되면서 만화는 잡지를 대표하는 핵심 콘텐츠가 됐다. 신문수, 길창덕, 김원빈, 강철수, 방학기, 김삼, 고유성 등의 작가가 이 시기를 책임졌고 80년대 이후로는 만화전문잡지 시대가 열리면서 김수정, 김형배, 황미나, 이희재, 윤승운 등의 작가가 탄생했다. 잡지만화 또는 만화잡지의 등장은 잡지가 특정 연령대나 관심사를 중심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만화의 소재나 형식을 잡지의 타겟층에 맞추게 만들었다. 바둑잡지에는 바둑만화, 낚시잡지에는 낚시만화가 실리면서 잡지는 만화의 소재를 무궁무진한 방향으로 안내했다. 최근 만화시장의 중심 분야로 성장한 교양학습만화나 지식정보만화, 전문소재 만화의 뿌리가 된다.
도서, 만화의 대중 소비를 촉진시키다
1957년 국내 최초의 만화총판인 서울총판이 문을 열었다. 서울총판은 출판사로부터 만화책을 받아 각 지역총판에 공급하고 지역총판은 중간도매상을 통해 이를 전국의 만화방에 유통시켰다. 1959년 통계에 의하면 당시 만화방은 전국적으로 2000여 곳에 이를 만큼 번성했다고 한다(90년대에는 책대여점까지 포함하여 2만여 개 소가 운영되기도 했다). 돈을 내고 입장하거나 만화책 1권당 얼마의 돈을 내고 대여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던 만화방 시스템은 만화책의 유통과 소비를 대규모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도전자’의 박기정, ‘라이파이’의 산호, ‘싼디만’의 오명천, ‘울 밑에 선 봉선이’의 권영섭 등이 이 시기를 꽃피웠다. 만화방 시스템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자 1966년에는 이 시스템을 장악하고 만화책의 생산과 유통을 독점한 사업자가 등장하기도 했다.
[만화방 풍경. 대본소라 불리기도 했다]
단행본만화, 만화책 등으로 불리는 만화 도서시장의 확산은 정형화된 형식의 장르만화를 등장시켰고 이는 만화의 대중소비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했다. 코믹, 무협, 액션, 로맨스 등의 장르 분류 용어가 생겼고 이 분야만을 전문으로 창작하는 만화스튜디오가 등장하기도 했다.
[80년대를 대표하는 인기만화 공포의 외인구단]
양적 생산에 치중한 나머지 작품의 질적 하락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독고탁’의 이상무, ‘이강토’의 허영만, ‘까치’의 이현세를 등장시키며 만화의 르네상스 시기라 할 수 있는 80년대를 열었다. 90년대 이후로는 액션만화 분야의 박봉성, 조명훈, 고행석, 무협만화 분야의 하승남, 야설록, 황성 등이 이 분야를 지키고 있다.
만화방 공급용 만화도서가 주류를 이루고 만화방이 성인들의 공간으로 변하면서 그 빈틈을 다시 만화전문잡지가 메웠다. 1988년 <아이큐점프>가 창간되고 이후 <소년챔프>가 등장해 경쟁구도를 취하면서 새로운 만화 붐이 일었다. 잡지연재 만화를 모아서 서점판매용 단행본으로 발행하는 이른바 ‘코믹스’가 만화도서의 새 모델이 됐다.
[점프챔프세대를 탄생시키며 현재까지 코믹스 시장을 지키고 있는 만화잡지]
‘진짜사나이’의 박산하, ‘까꿍’의 이충호, ‘힙합’의 김수용, ‘열혈강호’의 양재현 등이 신예작가군을 형성하며 화려하게 등장했고 ‘100만부 판매’ 작가가 다수 등장했다. 잡지의 연재주기가 주간체제로 변하고 이를 모은 단행본의 발행주기가 빨라지면서 매회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형태의 작품 전개 방식이 일반화 됐고 30권이 넘는 초대형 장편연재만화가 등장했다. 발 빠른 생산과 트랜디한 소비가 맞물리면서 만화도서 시장은 2000년에 7,000억 원 규모로 성장했다. 문제는 21세기로 진입한 첫 10년 동안도 이 시장 규모는 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 만화를 재탄생 시키다
20세기 말 한국만화계에 어두운 그림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1998년 청소년보호법이 도입되면서 크게 성장하고 있던 만화도서 시장과 만화를 원작으로 한 문화콘텐츠산업의 발목을 잡았다. 만화계는 청소년을 유해매체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대의에 동의했지만 만화를 유해매체물로 낙인찍고 있는 법의 정서와 과도한 유통 통제 방식에 대해 반발했다. 그러나 법은 시행됐고 만화계의 걱정처럼 성장하던 만화시장은 반토막이 났다. 이와 함께 인터넷과 핸드폰이 정보통신 영역을 벗어나 주요한 여가 수단이자 콘텐츠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 신문, 잡지, 도서 시장 전반이 급격한 혼란 상황에 빠지게 됐다.
만화는 청소년보호를 목적으로 떠나보낸 성인독자와 인터넷 하느라 만화 볼 시간이 없어진 청소년독자 모두를 잃었고 극심한 소비불황에 시달리게 됐다. 하지만 이도 잠시. 학부모를 타겟으로 한 ‘아동교양학습만화’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냈고, 인터넷 안으로 들어가 웹툰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냈다. <만화로 보는 그리스로마신화>, <마법천자문>, <Why> 시리즈로 대표되는 학습만화는 만화도서 시장의 절반을 담당할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2000년에 등장해 각광을 받은 <스노우캣>, <엽기토끼 마시마로>, <파페포포 메모리즈> 등의 초기 디지털만화가 인터넷을 달구면서 <순정만화>의 강풀, <위대한캣츠비>의 강도하, <1001>의 양영순으로 대표되는 웹투니스타를 등장시켰다. 이들은 세로로 길게 이어지는 인터넷 사용 환경에 적합한 만화연출법을 제시하며 ‘한국형 디지털만화’를 선보였고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 관심을 이끌어냈다.
[미디어다음 만화속세상의 서비스 화면]
내일, 새로운 매체가 새로운 만화 불러낼 것
최근 웹툰은 지난 10여 년 간의 변화와 발전이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듯 또 한 차례 만화의 형식과 내용을 바꿔가고 있다. 스마트폰용 어플리케이션의 형태로 작아지기도 하고 스마트패드라는 넓은 창과 터치 방식에 맞춰 다시 커지기도 하면서 만화를 재탄생 시키고 있다. 폰이 나왔을 때는 웹툰의 세로보기 방식의 수용 가능성에 대해서 열광하더니 패드가 나오자 다시 도서 형태의 전통적 페이지 만화에 대한 요구가 재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유료디지털만화 시장의 활성에 대한 기대로 흥분했다. 그러나 그도 얼마가지 않아 장편규모의 만화도서를 중심으로 컬러, 자동이동, 동적구성, 동영상, 사운드와 음성, 게임성 등을 가미해 오픈마켓을 통해 유료로 판매하는 멀티미어만화패키지가 새로운 흐름으로 제시되고 있다.
[스마트폰용 네이버북스]
또 한편에서는 유튜브 등의 인터넷 동영상 매체와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 서비스를 이용한 만화마케팅 방법론 등이 등장하면서 만화의 외형과 내형이 새롭게 변화할 전망이다. 만화는 이처럼 자신을 담고 있는 그릇의 모양이나 용도에 따라서 급격한 변신을 거듭했고 나름의 성장 동력을 제시해왔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 간 7,000억 원 규모의 만화시장은 제자리걸음이다.
빠져나가는 소비층을 매우기 위한 자구책은 늘 혁신적이었고 나름의 성과를 자랑했지만 현 시장 규모를 유지하는 것 이상의 성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즉, 매체의 변천사에 맞춰서 만화의 형식과 내용을 변화시켰고 해당 매체의 전성기를 견인해왔으나 그 이상을 이끌지 못했다. 그래서 만화는 매체사적 입장에서 보면 여전히 부가적인 콘텐츠이다. 하지만 이 부가성이 새로운 매체의 색다른 요구를 능동적으로 수용하게 하는 요소가 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매체의 등장은 늘 만화를 색다른 실험에 빠지게 했다. 실험의 성공이 시장 확대로 이어지지는 못했으나 만화는 신매체 전파자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고 만화 내부의 가치를 재평가 받도록 하는데 늘 성공했다. 이제 이 부가성과 능동성 그리고 전파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만화의 내일을 견인할 내일의 매체가 등장해야 하지 않을까. 그가 곧 신매체 시대의 주인이 될 것이다.(끝)
** 게재 : 콘텐츠진흥원 홈페이지, 콘텐츠칼럼,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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