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일일만화의 창작현황, 만화연감, 부천만화정보센터, 2009.06.07

일일만화의 창작현황

일일만화는 특정 작가가 매일 한권씩 작품을 발표한다는 개념 하에 형성된 장르 명칭이다. 책 한권을 하루에 창작하고, 제작해서, 유통까지 한다. 작가 한 명에 수 십 명의 분업 창작자와 출판사 한 곳의 임직원이 매달려서 그 같은 개념을 증명하기 위해 시간과의 전쟁을 치른다. 그렇게 돌리고 돌려서 어떤 작가는 1년 간 1일 평균 1.64권을 발행하기도 했다. 120페이지 기준 72,120장이고 장당 4컷만 잡아도 288,480컷이다. 보통 사람은 1년 간 읽기도 벅찬 양이다. 그런데 또 어떤 독자는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을 기다렸다가 꼬박꼬박 읽어낸다. 한 타이틀에 20권씩, 매일 갈 수 없는 만화방인지라 한번 가면 네다섯 타이틀을 읽어 치운다. 권 당 구독 시간은 5분 남짓이다. 만드는 사람도 시간싸움이지만 이를 소비하는 사람도 시간싸움이다.

일일만화는 그렇게 만화찍기의 달인과 읽기의 달인들이 내밀하게 구축해낸 저 너머의 세상이다. 이쪽의 기준에서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들만의 질서와 관습이 유지되는 곳이다. 때문에 이 세계는 새로운 사람의 등장을 극도로 경계한다. 이 세계에서 공인된 장르는 무협, 액션, 스포츠, 순정이다.

무협에는 4대 천왕이라 불리는 황성(769), 하승남(641), 사마달(601), 야설록(485+201)이 있고, 액션에는 제 1보스 박봉성(542)과 양대산맥 조명훈(163), 조명운(140)이 있다. 스포츠는 오직 한명 오일룡(146)이 있다. 순정은 한 번도 얼굴이 공개되지 않은 신비주의 작가 한유랑(84)과 황미리(83)가 있다. 또 이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장르 간 자유통행을 인정받고 있는 작가 고행석(478)이 있다. 가로 안의 숫자는 각 작가의 2008년 만화 발행 종수이다.



이 세계에서는 그들의 질서와 관습에 따라 책을 찍고 유통시키기 때문에 판매부수라는 개념이 없다. 발행종수가 곧 그 작가의 성적표이자 내공지수가 된다. 한 때 혼자서도 1등 하던 야설록은 이제 프로덕션을 합해도 겨우 천왕 자리를 유지하는 수준이고, 온라인에서는 1등이라던 사마달은 황성과 하승남의 아성에 가려있다. 고인이 된 박봉성은 프로덕션을 중심으로 더욱 확고부동한 보스의 자리를 지키고 있고 일명 훈이 운이가 뒤를 받치고 있다. 한때 이 장르에서 박인권과 박원빈의 도전이 끊이지 않았으나 보스가 되지는 못했다. 과거에는 이보다 더 많은 이들이 이 세계에서 일합을 다투었으나 저 마다의 이유로 이 세계를 떠났다. 황재, 이재학, 김철호, 용태성, 김숙 등은 이 세계의 레전드가 됐다.

반면 이 세계로 신규 진입을 시도한 이들도 있었다. <럭키짱>이라는 작품으로 코믹스만화계를 평정(?)하고 스포츠신문만화계의 블루칩 대우를 받던 김성모도 한 때 이 세계로의 진입을 시도했으나 좌절됐다. 몇 년 사이 수차례 시장 진입을 시도하던 김성동도 겨우 겨우 자리를 잡았지만 정통과는 거리가 있다. 이 세계는 사전 심의 철폐이후에도 자율심의를 통해 작품 표현의 순도를 관리해 왔다. 때문에 원칙적으로 19금 만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규 소비층 형성을 위한 전략으로 이른바 특대판 성인만화 장르가 개발됐다. 그리고 이 분야를 통해 새얼굴이 진입했다. 김성모가 그렇게 들어와서 <용주골>을 히트시켰고, 김성동이 이어서 진입했다. 신형빈도 이 출구를 통해 <도시정벌>이라는 전대미문의 초장편 만화를 창작하고 있고 있는 중이다. <쩐의 전쟁>으로 광역 스타가 된 박인권 역시 일일만화를 시도하다 보이지 않는 진검승부의 피로감을 버텨내지 못하고 한 발짝 비켜나서 현재는 대본 성인만화를 하고 있다.

이 세계가 그런 곳이다. 들어가기도 쉽지 않지만 일단 입성에 성공하면 수십 명의 화실식구와 함께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맘대로 나갈 수도 없다. 쉬지 않고 만화를 그려야하고 보이지 않은 경쟁과 숨 막히는 톱니바퀴 위에서 작품 생산관리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정작 이 세계를 벗어나면 고생했다는 인사말보다 비판을 먼저 접하게 된다.

이해하기 쉽지 않은 저 너머의 일들, 그들 역시 우리의 비판이 제대로 들릴 이 없다. 그러다보니 벽은 더 두터워졌고 그들의 만화가 존재함에도 우리는 애써 부정하며 그저 저 너머의 일로 치부하고 있다.

저 너머에 일일만화가 있다. 그 곳에 진입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스타 만화가들도 있다. 그리고 저 너머에는 만화생산을 전담하는 최소 500여 명 이상의 만화 식구도 살고 있다. 같지 않지만 다르지도 않은 우리만화계이다.


(박석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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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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