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불친절한 헤교씨’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수상했던 부부 만화가 박기홍, 김선희 콤비가 두 번째 작품을 발표했다. 총각 처녀 시절 두 작가는 학원 액션과 순정 만화를 그렸다.
만화 장르의 양 끝에 위치했던 셈이다. 결혼 후 두 작가는 공동 작업을 진행했다. 남성 만화적 문법으로 화풍과 관점만 여성 만화체인 작품을 발표했다. 적절한 조합이었고 제3의 작가가 탄생한 듯한 반가움이 있었다.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두 작가는 ‘바둑 삼국지’로 또 다른 색깔을 드러내는 데 성공한다. 흔한 러브라인은 배제되고 바둑 기사들의 긴장과 대립이 격정적 화풍 속에서 넘실댄다.
이 만화의 주인공은 바둑 천재로 태어나 지금은 전설이 된 조훈현 9단이다. 조 9단은 4세 때 신문 기보를 외우며 바둑을 배웠고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고향 목포에서 서울로 올라와 바둑 공부를 한 뒤 9세 때 입단했다. 그는 일본에 바둑 유학을 다녀온 뒤 한국 최초의 바둑 9단이 됐고 바둑대회 전관왕을 3회나 차지했다.
스승 또는 선배를 넘어서야 하는 천재 소년의 삶은 그대로 드라마가 된다. 전신(戰神)이라는 별명처럼 쉬지 않고 소리 없는 싸움을 거는 그의 대국 스타일은 숨 막히는 액션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의 전쟁터는 가로 세로 19줄 위의 바둑판이고 무기는 흑백의 바둑알뿐이다.
많은 사람이 그의 화려한 전투를 이야기해왔지만 실제로 본 것은 네모반듯한 바둑판을 초췌한 얼굴로 응시하며 바둑알을 내려놓는 모습이다. 필마단기로 청룡도를 거칠게 휘두르며 적진을 향하는 승부사의 모습도, 적장의 목 앞에 검 끝을 세우고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는 장수의 모습도 모두 말과 글의 성찬이었고 저마다의 상상이었을 뿐이다.
이 만화는 누구도 보여 주지 못했던 조 9단의 전투를 한 수에 한 컷씩, 그가 남긴 기보를 따라 그려냈다.
조 9단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그와 바둑계를 놓고 다퉜던 2인자 서봉수 9단, 조 9단의 스승이었던 일본의 세고에 겐사쿠 9단, 중국의 바둑 영웅으로 조 9단과 바둑사에 남을 대국을 펼쳤던 중국의 녜웨이핑 9단 등을 빼 놓을 수 없다. 소설가 김종서 씨가 꼼꼼하게 수집한 바둑사가 큰 밑천이 됐음에 분명하다. 하지만 서사 외에 상상으로만 맴돌던 것을 그림으로 그려낸 것은 온전하게 이 부부 작가의 공이다.
포털사이트 파란닷컴에 연재 중이고 단행본 2권이 출간됐다. 여느 전문소재 만화처럼 바둑을 몰라도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다. 바둑 팬이라면 멋진 청년으로 변신한 실존 프로기사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듯하다.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박석환의 만화방, 동아일보, 2008. 0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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