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계로 떠났던 만화영웅들의 귀환
인터넷 서점 리브로가 만화 일러스트집을 직접 출판했다. 14편의 만화와 80쪽 분량의 미공개 일러스트를 수록했다. 컴퓨터게임 ‘창세기전’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유명한 김형태 씨를 비롯해 넥슨, 엔씨소프트 등 대표적 게임 회사의 전현직 디자이너와 콘셉트 아트디렉터 등이 대거 참여했다. 39명의 아티스트 중 현직 만화가는 손꼽을 정도다. 서점이 출판을 하는 것도 새로운 시도고 게임 아티스트들이 만화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새롭다.
계간 무크지 형식을 취한 ‘애플컬렉션’ 1호의 타이틀은 ‘우노’다. 스페인어로 ‘하나’라는 의미라고 한다. 뭐가 하나일까. 서점과 출판사가 하나일까, 게임과 만화가 하나일까. 아니면 편집자 에디 유의 평소 주장처럼 우리 만화가의 테크닉과 세계인이 원하는 만화 작품이 하나라는 의미일까.
에디 유는 다년간 미국 만화 시장 경험을 토대로 국내외 각종 프로젝트에 참여해 왔다. 성과도 있었지만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반면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게임 분야 아티스트들을 만화 쪽으로 이끌어 오는 데 성공한다. 한때 만화계는 게임의 호황과 위세에 눌려 수많은 인재가 게임계로 몰려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게임 콘셉트 디자이너로 직업을 바꾼 만화가들을 향해 쓴소리 한 번 못했다. 그런데 이 만화 일러스트집은 반대로 그들을 다시 ‘하나’라는 타이틀로 묶어 냈다. 게임계로 떠났던 만화 영웅 또는 만화 키드들의 귀환을 이끌어 낸 셈이다.
다양한 성향의 아티스트들이 품어낸 260쪽은 색다른 시각적 충격과 함께 놀라운 서사 체험을 이끌어 낸다. 이들의 일러스트는 단순히 1장의 그림이 아니라 각종 문화적 의미로 겹겹이 쌓여 있는 이야기 상자다. 직접적인 의미 전달 요소를 걷어 내고 은유적인 기호들을 하나씩 찾아 읽다 보면 어느덧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정답 없는 이미지 읽기가 색다른 영감을 만들어 낸다. 이른바 콘셉트 일러스트의 역할이다. 아쉬운 것은 한국적 상상력을 만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문화적 다의성과 다양성의 매력이 넘쳐 나는 일러스트에서 한국이라는 지정학적 요인을 찾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유럽의 신화와 일본의 만화적 전통을 수용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창조해 낸다. 그것이 2차 저작권 사업을 가능하게 하는 문화콘텐츠 산업의 힘일 것이고 일러스트집의 가치일 것이다.
일러스트집은 투자 대비 수익성이 낮기 때문에 대부분의 만화출판사도 기념사업 차원에서 찍고 만다. 인기 만화가의 성과를 격려하고 독자들의 관심에 보답하는 의미다. 하지만 ‘애플컬렉션-우노’는 인터넷 서점을 통해 사전 주문 판매를 실시하는 등 공격적인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도전적 시도였고 의미 있는 기획이었던 만큼 팬들의 답례도 뜨거웠다. 이 여세를 몰아 2호 ‘도스’ 편도 준비 중이다. 1호의 해외 판권 수출 상담도 활발하다. 만화의 핏줄에서 샘솟은 또 다른 문화콘텐츠의 탄생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의 귀환에 박수를 보낸다.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동아일보, 2008. 03.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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