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박인권의 대물-최강의 고수 제비, 컬쳐뉴스, 2007. 07. 10


돈, 돈 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면


드라마 <쩐의 전쟁>이 30%를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결됐다. 흥행배우 박신양, 사채업을 소재로 한 원작만화 등 방영 초기부터 화제를 낳았던 드라마답게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냈다. 

사채와 고리대금업은 서민경제를 좀 먹는 행위로 부각됐고 한 정당은 이 드라마 소재를 중심으로 대출관련 법안을 상정했다. 사채 사기 전문 법조계 인사들이 신문, 인터넷 등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대처방안을 제시하기도 했고 대출업체 광고에 출연한 연예인들은 공개 사과문을 돌려야 했다. 원작 만화는 아직 연재 중이지만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맥없이 죽었다. 원작자는 주인공의 죽음과 이른바 ‘러브라인’이 필요이상 강조되었다면서 드라마에 대해 공개적인 비판을 쏟아냈다. 

상황이 이쯤 되니 원작 만화에 대한 관심은 더 커졌고 원작자에 대한 궁금증도 깊어졌다. 더불어 원작자가 최근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연재작이자 올 겨울 드라마로 방영 될 예정인 만화 『대물』에 대한 관심도 증폭되고 있다. 


은밀한 신체를 이야기한들 어떠리


만화 『대물』은 박인권이 2003년 스포츠신문 <굿데이>에 연재를 시작한 작품이다. 1부 「최강의 고수 제비」편 이후 2부 「제비의 칼」 편부터는 스포츠조선으로 자리를 옮겨 연재 중이다. 3부 「야왕전」, 4부 「황금제비」로 이어지고 있다. 『대물』 시리즈는 주인공 하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각 부별로 별도의 서사가 진행되는 방식을 취한다. 

흥밋거리부터 건드려 보자. 올 겨울 전파를 탈 작품은 「제비의 칼」편이다. 뭔가 특수한 은유 체계가 있는 듯 하지만 말 그대로 사모님이나 후리는 제비족 할 때의 제비다. 주인공 하류는 제비족이다. 칼은 살상 무기 또는 비장의 카드 같은 것을 뜻한다. 작품 제목이면서 중요 소재인 ‘대물(大物)’은 거대한 남근(男根)을 뜻한다. 그래서 칼은 곧 남근을 의미한다. 풀어보자면 ‘제비족의 거대한 남근’이 되는 셈이다.(이 부분이 좀 난감하다. 본 매체에 소개하는 것도 민망했지만 용기를 냈다. 공중파에서 드라마로도 만들어지는 작품, 만들어지는 소재인데 가릴 것이 무엇인가. 툭툭 털고 편하게 생각해보자.) 

드라마가 작품의 최대 컨셉트인 거대남근과 컴퓨터그래픽으로도 처리할 수 없을 것 같은 스펙터클한 방중술(?)을 어떻게 묘사하거나 피해갈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또 한 가지. 제비의 칼을 받을 상대가 문제다. 춤바람 난 여편네, 돈 많은 과부쯤 된다면 이 작품을 펼쳐야 할 이유는 없었다. 이미 이런 변강쇠 타령은 에로계에서 고생하시는 이들을 통해 많이 봐왔다. 이 제비의 목표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대통령이다. 벌써부터 ‘악’ 소리 나지 않는가.

물론 처음부터 주인공 하류가 대통령 될 여자 또는 여자 대통령을 후리는 가공할 펀치력의 ‘선수’는 아니었다. 『대물』시리즈는 부별로 연속성이 없지만 기본적인 거대서사의 골격은 동일하다. 가장 하찮은 것처럼 보이는 인간이 자기만의 기술 연마, 치밀한 사전 준비와 노력 그리고 목숨을 건 도전과 쟁취의 과정을 통과해 목적한 바를 성취한다. 

어찌 보면 일반적인 영웅서사의 기본 골격과 동일하다. 그의 재능이 남들보다 큰 남근이고 배운 기술이 여자 후리기며, 위협과 승부의 대상이 여자이고 보상 방식이 돈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물론 처음 떠났던 고향으로 귀환하는 영웅담의 엔딩(ending)은 동일하다. 2부, 3부, 4부로 이어지는 작품은 그 파워와 대상의 위치가 급격하게 증폭되지만 1부의 골간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래서 1부가 중요하다. 드라마화 되는 만화를 받아드리는 우리의 기본자세는 컨셉트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1부 또는 첫 편을 열독하는 것이다.


가진 재능이 그것이라면 그 것으로 승부할 뿐


하류는 가진 것 하나 없는 청년 노숙자다. 버릴 것이 하나 있는데 어릴 때 이웃집 여자아이의 오묘한 신체구조를 확인한 뒤 얻은 ‘지속 발기’ 쇼크이다. 태생적으로 큰데 줄어들지도 않는다. 이 불편한 재능을 발견하고 배팅해 오는 사부가 있다. 1,000억 원이라는 목표를 제시하고 세계 최강의 제비족이 되어서 이를 쟁취하라는 과업을 부여한다. 상대는 성기가 없이 태어난 사부와 결혼해서 상속재산을 가로챈 호텔여왕이다. 별로 할 일도 없는 노숙자는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사부는 자신의 원한을 풀기 위해 상류사회의 여자를 후리는데 필요한 모든 학문과 기술을 연마해왔고 이를 하류에게 전수한다. 사부는 하류를 위조된 제비가 아니라 공인된 세계 최고의 사내로 만들기 위한 해외연수 프로그램도 준비한다. 일본에서는 학력과 직업을 얻고, 영국에서는 신분을 얻는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남성적 힘을 얻는다. 일본 최고의 대학, 최고의 금융기업, 영국 황실과의 친분, 중국 최대 폭력조직인 삼합회와의 인연 등 공인된 최고가 되기 위한 아이템은 모두 여성과의 관계를 통해 획득한다. 

정말 만화 같은 소재에 만화 같은 서사이지만 이를 연결 짓는 수많은 에피소드와 개별서사들은 만화 같은 서사를 진짜처럼 보이게 할 만큼 사실적이다. 특히 호텔을 차지하기 위해 여회장과 결혼하고 우호 주식을 늘리는 과정에서 보여준 ‘호텔경영’ 소재는 어떤 대중서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없을 만큼 사실적이다. 허무맹랑하게 아랫도리만 큰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만한 주인공을 만들어내기 위해 치밀한 연구와 취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야기가 고픈 것이 아니라 음식, 여성, 조직, 호텔에 대한 상식이 고픈 이들에게도 나름의 성찬을 준비한 것이다.

박인권은 『무당나비』라는 작품으로 1980년 데뷔한 관록의 만화가다. 대본계 만화로 분류되는 속칭 일일만화작가로 만화방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울 정도의 작품을 찍어냈다. 일일만화는 특정 작가의 작품이 매일 한권씩 출간되는 독특한 창작·유통 시스템을 뜻한다.(실제로는 1주에 3권 분량의 작품을 낸다. 당연히 1인 창작으로는 불가능하고 30~5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오너 겸 창작자들이 이 같은 대규모 작업을 수행한다. 그래서 ‘공장제 창작’이라는 비난과 함께 우리 만화의 경쟁력을 감소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그래서 우리 만화계의 음지로 분리되기도 한다.)

반면 이들이 구축한 만화창작의 분업화와 생산 방식은 급여창작자, 신인만화가교육, 만화관련 산업 확대에 상당부분 기여했다. 또 최근처럼 만화 원작을 방송이나 영화의 소재로 재창조하는 것이 붐인 상황에서는 ‘읽는 맛’에만 집중해서 그림보다는 시나리오 개발에 주력해온 그들의 작업 방식과 결과물을 터부시하기도 어렵다. 특히 이번처럼 음지에서 대박이 쏟아질 때는 더욱 어찌할 바를 모른다. 어찌할까? 대중의 선택이 모두 옳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만한 가치와 무게는 존재한다. 

‘대물’ 역시 그런 작품이다. 선뜻 그 소재를 꺼내놓기 부담스럽고 대본계 만화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있지만 수년간 대중의 관심과 환호 속에 연재되고 있는 작품이다. 감히 변강쇠나 제비족 따위를 이 시대의 영웅으로 재탄생시키고 요즘 터부시되는 사적 보복의 디테일한 묘사가 심한 불쾌감을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우리사회는 어떤 고귀한 정신과 이념보다 ‘쩐’이 지배하는 하는 사회로 변하고 있다. 그리고 ‘몸’의 특수한 기능과 역할에 승복하는 사회로 변했다. 어쩌나. 그게 무엇이든 그것이 그만의 특출 난 재능이라면 그 것으로 승부하게 해야 할 일이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컬쳐뉴스, 2007. 0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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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eokhwan

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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