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아메바피쉬의 ‘로봇’, 동아일보, 2007.06.02

[동아일보]

올해 ‘서울국제 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의 테마는 ‘상상 무한 리필’이었다. 만화라는 표현형식과 상상이 만나면 SF 판타지가 된다. 그래서 몽환적 상상력의 대가로 불리는 프랑스 만화가인 뫼비우스가 초대됐고 ‘달콤한 SF 뫼비우스 특별초대전’이 열렸다.

상상과 산업이 만나면 로봇이 된다. 그래서 우리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 굳건한 계보를 이루고 있는 로봇들을 한자리에 모은 ‘로봇이라도 괜찮아’전이 열렸다.

이 전시장에서 가장 각광받은 것은 역시 ‘로보트 태권브이’를 중심으로 한 거대 전투형 로봇이다. 하지만 가장 독특한 빛깔과 미묘한 매력을 발산한 주인공은 만화가 아메바피쉬(본명 박현수)와 그의 첫 번째 만화작품집 ‘로봇’이었다.

꿈 많은 소년은 사랑하는 여인에게서 버림받는다. 너무 아픈 소년은 감정이 없는 로봇이 된다(Another world). 반면 꿈이 없는 로봇 이야기도 있다. 편지를 배달하는 임무를 맡은 로봇은 편지받을 사람이 없어도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슬픈 운명을 가지고 있다(우편로봇). 이 책은 로봇과 관련된 단편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아메바피쉬는 만화가이자 만화적 형식을 지닌 일러스트로 유명한 아티스트다. 한국의 전위만화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웹진Comix’를 시작으로 대안만화를 모색했던 ‘영점프’ ‘계간만화’ 등의 매체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소재와 표현 형식이 도전적 실험으로 가득했던 매체에서 활동한 만큼 작가의 단편만화 역시 낯설게 보인다. 반면 단행본, 잡지, 광고 등 상업적인 일러스트 분야에서는 많은 사람에게 다양한 영감을 제공하는 대중적 이미지를 생산하고 있다.

작품집 ‘로봇’은 작가가 그간 보여 줬던 두 가지 작업 노선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은 선물 세트이다. 반쯤은 실험적이고 반쯤은 대중적이다. 반쯤은 스토리가 있고 반쯤은 이미지만 있다. 반쯤은 어둡고 반쯤은 환하다. 마치 로봇과 소년처럼 상반되는 개념이 공존한다.

아메바피쉬의 작업을 대표하는 것은 노란색 선과 분홍색 면이다. 색채심리에서 노란색이 갖고 있는 의미는 명랑한 개성과 자유로운 행동을 뜻한다. 반면 유아적 성향과 외로움을 상징하기도 한다. 분홍색은 정서적으로 중립적이지만 부정의 의미가 있다. 그가 찾아낸 ‘양철로봇’이라는 아이콘 역시 상반된 작가적 자아를 드러낸다. 소년과 로봇이 보여 주는 꿈과 임무는 개성과 중립, 행동과 부정, 우울과 동경 등의 의미를 생산하며 독자에게 색다른 서사적 이미지와 영감을 제공한다.

에너지가 다하도록 임무를 수행하는 로봇,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시련뿐인 일상을 버텨 내고 성장해 가는 소년. 둘은 다르지만 같다. 그래서 꿈이 있는 소년은 임무밖에 없는 로봇이 되어도 괜찮다. 누군가는 잊어버렸을 소년 시절의 꿈과 상상. 하지만 누군가는 그 꿈을 수행해야 할 임무로 생각한다. 그만큼 행복한 일이 있을까.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동아일보, 2007. 06. 02


>>어제 마감한 원고 중에 오기가 있습니다.

 '노란색 선과 분홍색 면'이 아니라 '노란색 면과 분홍색 선'입니다.

노란색을 열정적 소년의 감성으로 분홍색을 중립적인(감성에 치우침이 없는) 로봇의 기능에 견주어

작품의 의미를 색채심리로 해석해보려고 고심했던 대목인데... 몇차례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는 사이 면과 선의 위치를 바꿔버리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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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eokhwan

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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