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의 <식객>
<식객>은 요리 소재 만화이다. 일간신문 <동아일보> 문화면에 연재되고 있는 이 작품은 현재 단행본 9권이 발행됐고 56번째 에피소드가 진행 중에 있다. 한 가지 요리나 음식을 소재로 하나의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김치, 삼계탕, 부대찌개, 매생이, 전어, 빙어, 홍어 등 일반에게 익숙한 음식의 재료와 제조법을 소개하고 음식 안 밖에 잔잔한 드라마를 곁들였다. 음식을 소개하는 장면에서는 여러 현장을 뛰어다닌 작가의 땀 냄새가 물씬 풍긴다. 곁들여진 드라마는 톡 쏘는 홍어처럼 강렬하다. 그러나 곱씹으면 씹을 수록 아련하게 기억되어 다시 찾게 하는 맛이다.
한국 음식문화 대 백과사전
<식객>의 주인공 성찬은 일종의 청과상이다. 트럭을 타고 전국을 떠돌며 야채나 과일, 생선 등의 음식 재료를 판다. 그러나 여느 청과상과 달리 좋은 재료만 팔고 있지 않다. 좋은 재료에 어울리는 음식을 알고 있고, 음식이나 요리에 적합한 재료가 어느 곳에서 나는지를 알고 있는 전문가이다. 가장 좋은 요리를 만들기 위해 가장 좋은 재료를 구하러 다니기도 하고, 가장 좋은 맛을 찾는 이들과 같이 식도락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만화작가 허영만은 <식객>의 성찬을 빌어 우리의 땅, 바다, 하늘을 돌고 있다. 전국 각지의 음식과 유명 식당, 요리사를 직접 만난다. 요리의 재료를 품고 있던 땅과 바다를 확인하고 그 땅과 바다에 등지고 살고 있는 지역의 사람과 문화를 찾는다. 사람은 주인공이 되고 문화는 구성이 됐다. 재료와 음식은 소재가 되고 요리사의 제조법과 이 맛을 본 이들은 그대로 이야기가 되었다. 그리고 작품 <식객>은 한국의 음식문화와 음식정보를 이야기의 방식으로 풀어낸 감동의 ‘음식문화 대 백과사전’이 됐다.
드라마
<식객>은 음식을 중심으로 한 에피소드 형식 외에 또 하나의 구성 축을 지닌다. 이것은 장편 연재극화가 지녀야 할 서사성에 기인하는 대목이고 극적 긴장을 유지하게 하는 요소이다. 서사의 중심에는 적대자로 등장하는 오숙수와 연인으로 등장하는 진수가 있다. 주인공 성찬은 청과상을 하기전 한식점 운암정에서 요리사 수업을 받았다. 오숙수는 조선시대 궁중의 남자 조리사를 일컫는 ‘대령숙수(待令熟手)’ 자리를 놓고 성찬과 경쟁하던 사이이다. 진수는 잡지사 기자로 음식점 취재 중 성찬을 만나 사랑하는 사이가 됐다.
운명적 라이벌과의 박진감 넘치는 요리 대결, 요리 전문기자와의 엎치락뒤치락 연애담 그리고 성찬의 조력자로 등장하는 절대미각의 소유자 자운선생과 이웃들의 티격태격 인생담이 펼쳐진다. 요리에 대한 지식정보와 짧은 드라마가 자칫 무료하게 느껴질 때쯤 이 또 한 축의 드라마가 진행된다.
지식정보
<식객>은 허영만 만화가 90년대 이후 추구해온 바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거대한 낭만과 신적 영웅이 넘쳐나는 시절에 허영만은 두려움에 떠는 영웅을 그렸다. 그리고 ‘주인공을 일상으로 인도’했고 ‘독자를 주인공의 일상으로 유인’했다. 우리 주변에 흔하게 있지만 깊이 있게 알지 못하는 주인공의 일 속으로 독자의 시선을 이끌어 갔다. 자동차를 파는 주인공, 음료수를 파는 주인공에 이어 식료품을 파는 주인공까지 왔다. 그가 또 무엇을 파는 주인공을 그릴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작품이 유쾌한 웃음과 극적 감동에 지식과 정보까지 담고 있음은 확인 할 수 있다. 물론 그 안에서도 노력과 도전, 승부하는 순간이 다른 무엇보다 아름답게 묘사된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부천만화축제, 부천만화정보센터 전시도록 2005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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