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부천만화축제 허영만 특별전(3)] "만화가 허영만의 작품세계", 부천만화축제, 부천만화정보센터 2007.4.2

조망

허영만의 30년 만화인생을 중간 점검하는 차원에서 대표작을 선정하자면 <각시탈>→<태양을 향해 달려라>→<고독한 기타맨>→<오!한강>→<미스터손>→<아스팔트사나이>→<사랑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차례대로 소년한국도서 시기의 항일 아동만화→〈어깨동무〉시기의 스포츠 성장만화→대본소용 만화창작 시기의 특이소재 청춘드라마→만화 대중화 시기의 이념드라마→일본만화 개방 시기의 캐릭터만화→신문연재만화 시기의 전문 직장인 소재 만화→인터넷 대중화 시기의 옴니버스 교양 감성만화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같은 구분 기준은 허영만의 대표작이 품어내는 장르적 특성에 기인한다. 그러나 한 겹 더 들어가 보면 시기별로 가장 유망했던 만화 매체의 경향과 만나게 된다. 조금 더 집중하면 주 독자층의 성장도 확인 할 수 있다. 이를 다시 크게 묶어보면 ‘소년 대상 성장 만화시기→청소년 대상 트랜디 만화시기→성인 대상 전문 교양 만화시기’가 된다. 


소년한국도서

70년 대 만화출판계를 양분하고 있던 소년한국도서는 신인 만화가 발굴을 목적으로 대규모 공모전을 시행했다. 허영만은 이향원화실에서 독립을 선언한 후 1년 여 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1974년 ‘제2회 신인아동만화 현상모집’에 공모작 <집을 찾아서>를 출품한다. 이 작품이 입선작으로 선정되어 가까스로 데뷔식을 치르게 된다. 이때 허영만은 3년 안에 만화가로서 대성하겠다고 결심한다. 허영만은 같은 해 <총소리> <빛 좋은 개살구>에 이어 네 번째 작품 <각시탈>을 발표한다. 한국형 복면 영웅의 등장을 알린 이 작품으로 허영만은 데뷔 3개월 만에 재능 있는 만화기술자에서 인기 만화가로 거듭난다. 

만화가 허영만의 분신과도 같은 캐릭터 이강토는 그의 세 번째 작품 <빛 좋은 개살구>에 처음 등장한다. 허영만은 자신의 만화를 대표할 수 있는 주인공 이름을 구상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애국가를 듣던 중 ‘강산’이라는 단어에 착안해서 ‘강토’를 주인공 이름으로 정했다고 한다. ‘이강토=허영만’이라는 공식은 <각시탈> 시리즈를 통해 성립됐다. <각시탈> 시리즈는 소년한국도서에서 50페이지 전후의 국판으로 처음 발행됐다. 30권 가량의 후속 시리즈가 인기리에 출간됐고 다양한 재판본이 나왔다. <각시탈>은 평소에는 바보처럼 행동하던 주인공이 탈을 쓰고 등장하여 일본군과 대입하는 내용이다.


각시탈

<각시탈>은 허영만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첫 단추이다. <각시탈>의 시대적 배경은 일제치하이고 항일이념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역사만화, 이념만화이다. 또 주인공이 택견과 검도를 이용해 대립한다는 측면에서 스포츠만화, 잡기만화, 액션만화로 볼 수 있다. 주인공이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변장을 한 뒤 사건을 해결한다는 측면에서는 추리만화, 변신영웅만화로 보여 진다. 또 이 작품 안에는 두 얼굴, 방랑자, 복수, 허무, 민족, 초월, 형제애, 구도 등의 테마가 담겨있다.  

<각시탈>의 정서를 답습한 작품이 범작 수준에 머물렀던 <쇠퉁소>였다면, <각시탈>을 복원 발전시켜서 허영만 만화의 새로운 지평을 구축한 작품은 <무당거미> 시리즈로 볼 수 있다. <무당거미> 시리즈는 동일 이름의 주인공 이강토가 ‘숨어 사는 항일투사’가 아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현대사회의 스포츠투사’ 또는 권투영웅으로 분한 작품이다. 각시탈이 ‘대일본제국’에 도전하는 영웅이었다면 무당거미는 막강한 도전자의 공포에 두려움을 느껴야하는 챔피언이었다. 또 급격한 체중감량에 따른 체력저하로 매 경기를 1회 KO로 이겨야하는 위기의 챔피언이었다. 이 같은 설정은 1회로 끝나는 무당거미의 권투경기 보다는 이를 준비하는 과정의 혹독함을 묘사하는데 중점을 두게 했다. 승리 그 자체보다 승부를 준비하는 숭고한 정신을 소중히 한 것이다. 무당거미는 이강토의 인간적 고뇌를 담아 낸 걸작으로 허영만이라는 콘텐츠의 의미를 생성한 작품이다.


어깨동무

이후 허영만은 만화출판계의 독점구도를 형성하고 있던 합동문화사와 소년한국도서의 횡포에 맞서 일군의 만화가들과 함께 임창이 설립한 땡이문고와 전속작가 계약을 체결한다. 그러나 어렵게 얻은 <각시탈>의 인기만으로 이들의 독점구도를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만화독립투쟁’이라고 명명되기도 한 이들의 투쟁은 생활고에 막혀 원 위치로 돌아오게 됐다. 소년한국도서의 전속작가로 수편의 범작을 창작하고 있던 허영만은 1978년 당시 최고의 아동교양지로 명성이 높았던 <어깨동무>의 편집장 전영호를 만나게 된다. 

전영호는 허영만에게 깊은 신뢰를 보냈다. 그러나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첫 번째 연재작품 <기억하라>는 독자들의 냉담한 반응으로 끝이 났다. 몇 작품이 더 실패했으나 전영호는 허영만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줬다. 급기야 야구를 소재로 한 <태양을 향해 달려라>가 보기 좋게 성공을 거두면서 허영만의 진가를 알리는 계기가 된다.

허영만의 초기 출세작 <각시탈> <무당거미> <태양을 향해 달려라>는 우리만화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구축한 작품이기도 하다. <각시탈>은 ‘00탈’ 유의 아류작품을 등장시키며 복면영웅만화 장르를 주도했고, <무당거미>는 대작 시리즈 만화의 전범이 되었다. 또 야구를 소재로 했던 <태양을 향해 달려라>는 각종 학원스포츠만화가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이상무와 이현세

허영만이 당대의 만화창작 흐름을 주도했다고는 하지만 최고의 인기를 누린 만화가는 아니었다. 허영만의 라이벌로 비교되는 이상무와 이현세가 늘 그보다 많은 인기를 누렸기 때문이다. 허영만은 입버릇처럼 ‘난 늘 2등이었다. 70년대는 이상무, 80년대에는 이현세가 1등이었다’는 말을 한다. 이상무는 1976년 박기준 문하에서 <노미호와 주리혜>로 데뷔했다가 독고탁을 주인공으로 한 만화 시리즈로 70~80년대 중반까지 최정상의 인기 만화가로 활동했다. 하영조와 이정민 문하를 거친 이현세는 80년대 중반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해서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대한민국 문화계를 싹쓸이 한 슈퍼스타이다. 허영만은 늘 두 만화가의 인기에 못 미치는 곳에 있었다. 그러나 이는 결과적으로 득이 되어 지금의 허영만을 구축하는 요인이 됐다. 허영만은 늘 2등이었기에 ‘새로운 장르의 개척과 소재의 발굴’에서 그들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작품적 성취를 낳았다.  


반영웅

70년대 한국은 급격한 경제성장기에 있었다. 조국 건설 의지가 국민적 모토였고 이상무의 만화는 이런 국민정서를 뒷받침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가난, 형제애, 도전, 승리의 정서는 당대의 허영만 만화에서도 찾아진다. 그러나 이상무의 주 독자층이 15세 미만이었다면 허영만이 설정한 주 독자층은 조금 더 올라간다. 

80년대는 불만의 시대였다. 군부 통치하에 온 국민이 똘똘 뭉쳐 경제성장이 이뤄졌고 배고픔은 해결되었으나 삶의 갈증은 오히려 쌓여만 갔다. 군부는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을 조장했고 대중문화는 국민적 욕구불만을 해소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당대의 만화계에 이현세가 제안한 초월적 영웅의 대서사시는 정치적 갈증에 대한 해열제가 됐다. 초장편 영웅서사가 유행하던 시절 박봉성은 50여 권에 이르는 만화 <신의 아들>로 인기작가가 됐고 김철호는 이를 넘는 규모로 <슈퍼스타>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본계만화의 황금기에 허영만은 이들의 제안과 달리 ‘힘의 남성’이라는 컨셉트에서 벗어난 작품을 발표한다. 구도자의 모습으로 권투를 하는 주인공(<카멜레온의 시>)을 등장시켜 관념만화의 사례를 구축했고, 만화책이라는 소리 없는 미디어의 형식으로 락(<고독한 기타맨>)을 노래했다. 급기야 남북 대치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던 군부 통치 하에서 이념 대립의 불행한 역사(<오!한강>)를 고발하기에 이른다.

허영만은 이상무나 이현세라는 만화계의 거대한 트랜드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허영만의 80년대를 대표하는 이 작품들은 우리만화의 80년대를 대표하는 작품이 됐다. 시류에 편입하지 않았던 그의 작품이 지금에 와서 당대의 시대적 소명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대본계만화와 코믹스계만화

80년대 중후반 대본계만화가 정점의 호황을 누리던 시절 여타의 인기 만화가들은 자기복제를 통해 동어반복적인 작품을 대량생산해냈다. 화실마다 100여 명 내외의 만화기술자들이 조직적으로 만화작품을 뽑아냈다. 허영만도 얼마간 이 같은 시스템을 운영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허영만은 스포츠만화, 기업만화, 무협만화로 대표됐던 대본계만화시장에서 심령만화와 당구소재만화라는 특이 아이템을 들고 나왔었다.

90년대 초 대본계만화시장은 대량생산의 문제점과 혼탁상을 드러내며 서서히 좌초했다. 이 시기에 아동만화전문잡지와 현재의 코믹스시장이 구축됐다. 서울문화사와 대원CI(구 도서출판 대원)는 일본식 출판만화 시스템을 도입하여 만화전문잡지를 창간하고 연재된 작품을 코믹스라는 이름의 단행본으로 출판했다. 허영만은 이 시기에 아동용 SF만화 <미스터손>(<날아라슈퍼보드>)과 <망치>를 발표한다. 각각 TV용 애니메이션과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도 유명한 이 작품은 허영만을 문화콘텐츠산업계의 시나리오뱅크로 각인시키는 역할을 한다. 특히 TV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된 <날아라슈퍼보드>는 주인공 손오공의 주문(치키치키치키 차카차카쵸)과 저팔계의 말투(~하셔), 사오정의 엉뚱한 답변을 유행시켰다. 사오정의 엉뚱한 답변은 ‘사오정 시리즈’라는 유우머를 생성시키면서 당대의 문화적 코드가 되기도 했다. 


변화

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며 허영만은 확연히 달라진 작품성향을 펼쳐 보인다. 전작들과 이후의 작품들이 일면 유기적으로 연계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이후의 작품은 형식부터 많은 변화를 보여줬다. 

허영만은 1988년 대본계만화의 혼탁상을 몸으로 체험한 뒤 이 시스템을 해체하고 경기도 마석으로 내려간다. 소수의 연재팀과 함께 마석에 화실을 꾸린 허영만은 아동만화전문잡지의 등장과 새로운 스포츠신문의 발간 등을 겪으면서 자신의 만화가 달라져야 함을 느낀다. 주인공 이름부터 데생과 팬터치 방식까지 모든 것에 있어서 과거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기준을 만들기 시작했다. 달라진 작업 방식의 첫 번째 모델은 성인만화잡지 <매주만화>에 연재된 기업극화 <벽>으로부터이다. 그러나 그 변화가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포착된 것은 스포츠신문 <스포츠조선>에 연재 한 <아스팔트 사나이>부터이다. 


달라진 형식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꾸는 청년이 세계굴지의 자동차 업체 오너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아스팔트 사나이> 이후 허영만의 작품세계는 확연히 달라졌다. 과거의 작품이 소재의 특이성과 함께 비극적 서사로 감동을 전달하는 형식을 취했다면, 이후의 작품은 특이 소재에서 전문성을 찾아내 소재의 안과 밖을 각종 상황과 서사를 통해 설명하는 형식을 취했다. 입시지옥에 내몰린 청소년의 문제행동을 다룬 <비트>와 사랑과 관련된 각종 명언을 소박하게 이어간 <사랑해> 등이 조금 색다른 경우일 뿐. 속옷 회사의 기획부서를 무대로 한 <미스터Q>, 자동차 세일즈맨의 노력과 성취를 담은 <세일즈맨>, 음료수 대리점을 무대로 경마에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간 <오늘은 마요일>, 각종 도박꾼들의 속고 속이는 세상을 그려낸 <타짜>, 한국 음식문화대전을 펼쳐 보이고 있는 <식객>, 대한민국 부자들의 노하우를 분석해낸 <부자사전>에 이르기까지. 허영만은 비쥬얼과 서사에 사전적 정보를 담아내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새로운 흥행 코드

최근 허영만의 만화에는 이른바 극화라 불리던 대본계만화 시절의 고뇌에 찬 영웅적 주인공이 사라졌다. 데생은 훨씬 노련해졌고 펜선은 한층 간결해졌다. 주인공은 영웅적 카리스마를 지녔다기보다는 말쑥한 직장인의 모습이다. 무엇보다 배경은 사실이고 설정은 현실로 빽빽하다. 간혹 등장하는 개그컷이 만화적 현실과 여유를 찾도록 할 뿐이다. 귀중한 지면을 거대한 말 칸 하나에 내줘야 할 만큼 과잉 정보를 담기도 한다. 

이와 달리 우리 만화계의 창작풍토는 무협판타지 일색의 청소년용 코믹스와 무협과 밤거리 이야기뿐인 성인용 극화로 양분되어 있다. 그러나 시장을 리드하는 것은 순정만화와 교양학습만화 그리고 이른바 감성만화로 불리는 인터넷만화의 출판본이다. 그러나 우리만화계는 이를 주류 만화로 인정하는 것에 인색하다. 늘 주류에 있던 만화가 허영만이 이미 오래전부터 그에 준하는 작품 활동을 해왔고 <사랑해> <식객> <부자사전> 등의 작품이 그 정점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말이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부천만화축제, 부천만화정보센터 2005 전시도록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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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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