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경제적이성 비판 넘어 만화산업 인프라 구축을 완료하라, 계간만화, 2005


참여정부의 만화정책


만화 시상식, 모호한 경계 만들기에 성공하고


동아일보 연재 시 화제를 모았던 허영만의 요리만화 <식객>이 2004년 ‘올해의 만화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허영만의 만화원작을 애니메이션화 한 <망치>가 ‘올해의 애니메이션대상’으로 선정됐으니 데뷔 31년 차를 맞이한 이 만화가의 기쁨은 남다를 듯하다. 그런데 이 행사를 포함해서 매년 거명되는 수상작들을 살펴보면 모호한 괴리감이나 단절감이 느껴진다. <식객>도 좋은 작품이지만 개인적 취향을 떠나 전작 도박만화 <타짜>가 허영만 만화 중 백미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터. 

제작 규모나 높은 인지도 등을 빼더라도 전통적인 만화의 개념에 더 가까운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그우수상을 받은 박흥용이나 강도영, 최규석, 이상신・국중록의 작품도 상의 권위에 걸 맞는 우수한 작품적 성과를 지녔다. 그러나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빙빙 돌릴 것 없이 거칠게 말하자면 ‘왜 항상 저런 성격(?)의 작품만 탈까?’ 왜 항상 타는 사람만 탈까?’ ‘왜 이른바 만화전문출판사는 못 타고 일반도서 전문출판사가 탈까?’ ‘이 작품도 좋았는데’ 등등의 이견이 생기는 것은 필자만의 좁은 소견은 아닐 것이다. 

허영만은 지지리 상복도 없어서 ‘상 타는 만화는 재미없다’고 말하던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만화가이다. 그가 <식객>에서 보여준 교양주의라는 ‘약간 다른 시도(?)’는 올해 잊지 못할 만큼의 상으로 돌아왔다. 박흥용의 구도, 강도영의 색다른 스토리텔링, 최규석의 패러디, 이상신・국중록의 엽기적 반전 등은 모두가 의미 있는 시도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의미있는 시도에 대한 찬사가 우리만화산업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만화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마련한 자리에서 우리만화의 산업동력을 지켜왔던 만화가 그룹(이른바 코믹스계의 젊은 작가들이나 일일만화계의 백전노장들 그리고 순정만화가들)과 주류출판만화계는 대개 찬밥신세였다. 반면(이를 나누는 기준 역시 모호하지만) 이른바 비주류적 속성이 강한 만화작품들은 대중의 환호나 출판만화 전문가들의 인식과는 무관하게 수상작이 됐다. 그중에는 허영만의 직언대로 정말 재미없는 만화들도 즐비하다. 

이 상이 우리만화에 대해 의미 있는 토픽을 생산한 것은 분명하겠지만 시상 행사의 정부 정책 목적대로 ‘만화인의 자긍심과 결집력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고는 보기 힘들 것 같다. 오히려 이 상의 선정결과가 순수만화와 상업만화, 판매형만화와 대여형만화, 의식(?) 있는 만화가와 대중적인 만화가를 분열하게 만드는 모호한 이미지를 생산하고 있지 않나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결집과 통합을 위한 정책이 오히려 분열과 무관심을 초래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경제적 이성 비판, 만화기초예술론으로 부활하여


만화상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 만화는 국무총리상이고 애니메이션은 대통령상이다. 애니메이션계 입장에서야 디지털시대의 미래영상예술과 산업을 대표하는 이 분야가 최고 권위의 상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겠으나(더러 애니메이션을 만화 취급하는 것이 짜증난다는 인사도 있다) 만화계 입장에서는 가상영상 커뮤니케이션 시대의 대표적 표현 언어인 만화를 아래급으로 취급하는 듯 하여 오히려 떨떠름하다. 하지만 산업적 위상이 더 높은 애니메이션에 대통령상을 줘야 한다는 쪽으로 이해해보자. 

이렇게 해두고 보면 최근 만화계 일각에서 정부의 만화관련 문화정책이 너무 ‘경제적 이성’ 에 기반하고 있다는 비판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 비판의 요지는 현 정부가 문화를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도구로서만 인식’한다는 것에 있다. 때문에 산업규모가 더 큰 애니메이션을 편애하고, 만화분야에서도 돈이 되는 만화산업 부문만을 육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이성 중심적 정책은 감성 소비시대를 역행하는 한편 ‘만화산업의 한계를 드러나게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산업 성장 위주의 인기만화 부각은 획일성을 조장해 ‘기형적 문화발전을 낳을 것’이고 정책 수혜자가 문화산업계 일부로 집중되면서 ‘공공성을 잃고 있다’고 경고한다. 

다시 이를 만화계 일각의 요구를 나열해보면 ‘(1)만화가 돈이 된다는 생각만으로 접근하지 말라 (2)만화가는 개인이 아니라 다양성을 지닌 문화생산기지이고 인프라이다 (3)만화창작자 중심의 법제도 개선과 창작 자체에 대한 장기적 안목의 직접지원이 필요하다’ 쯤으로 정리 될 수 있다. 일면 타당한 문제제기로 들리는 이 논의는 상업만화와 순수만화 또는 만화예술을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요구로도 들린다. 얼핏 보면 현 정부가 비주류 성향의 만화를 중심으로 한 시상행사를 통해 이른바 만화예술계를 위로하고 재정적 지원이나 정책적 관심은 만화산업계에만 쏟는 것으로 이해 될 수 있다. 그럴까. 조금 더 가보자.

사실 이 같은 논의 전개방식은 국민의 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민의 정부는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로 규정하고 문화산업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그 지원 범위를 ‘영화 출판 중심에서 만화 애니메이션 디지털콘텐츠 등으로 확대’ 했다. 국민의 정부 이전 문화정책의 독점적 수혜자였던 문화예술계는 문화산업이 부각되자 상대적 박탈감과 위기감을 느꼈고 이에 대한 반발과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그들의 진정성은 일단 접어두자). 당시 만화계는 문화산업계의 나팔수이자 전위대로 최전방에 나섰고 애니메이션 캐릭터 게임 등의 장르로 진열을 구축하며 승기를 잡았었다. 

이로인해 국내 최초의 중장기적 만화 육성책인 1,100억 여원짜리 ‘만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이라는 전리품이 남겨졌다. 물론 국민의 정부 내내 문화산업 중심의 문화정책에 대한 비판 강도를 낮추지 않았던 문화예술계와 ‘문화사회’를 주창해 온 문화 관련 단체들은 참여정부에 와서 문화정책의 골간을 뒤 바꿔 놓는데 성공한다. 그것이 바로 이들이 내세웠던 ‘경제적 이성 비판론’과 ‘기초예술론’이다. 

국민의 정부 당시 이를 적의 가소로운 반발 정도로 생각했던 문화산업계의 일등전사 만화는 참여정부로 넘어오면서 적의 무기를 이용 내부 전쟁을 추진하고 있는 느낌이다. 문화산업 연계 장르에서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분야가 만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산업적이기 때문에 정책적 지원규모가 집중되고 있다는 것. 마찬가지 논리로 상업만화에 집중되는 지원을 순수만화로 돌리라는 주장이다. 이것을 만화계 일각에서 문화산업계와 만화산업계에 던지는 ‘만화 기초예술론’ 쯤으로 정의해 두고 참여정부의 문화정책을 갈무리해보자. 


창의한국, 다원적인 문화사회와 역동적인 문화국가로 대립하다


지난해 12월 문화관광부(이하 문관부)는 ‘참여정부 문화산업 정책비전 대통령 보고회’에서 세계 문화산업 5대 강국을 목표로 한 실천계획을 보고했다. 이는 참여정부의 12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 ‘지식문화강국 실현’, ‘문화적 창의성을 기반으로 한 문화산업 육성’ 의지를 정책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이후 대통령은 ‘문화콘텐츠’를 차세대 성장 동력 산업(2003. 8)으로 선정했고 기존의 10대 성장 동력 산업에 ‘문화・관광’ 부문을 포함(2004. 1)시켜 발전시켜 나갈 것임을 선언했다. 문관부는 문화산업국을 중심으로 부처 내 TFT를 구성, 내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수렴을 거쳐 2004년 5월 세부 계획을 수립했다.  

문화산업 관련 제작과 시설투자 부분은 현상유지하고, 국내시장은 확대-강화, 해외시장진출・저작권・유통・지방문화산업 등은 확대-개선, 인적인프라・금융인프라・지원기관지원은 정책 전반에 대해 재설정 하기로 했다(표1). 2008년 국내시장 규모 690억 달러, 해외수출 100억 달러를 목표로 한 계획이다. 곧 이어 6월 이창동 장관은 위 내용을 포함, 참여정부 문화정책을 총망라한 ‘창의한국-21세기 새로운 문화비전’ 과 ‘새예술정책-예술의 힘, 미래를 창조 합니다’를 발표한다. 헌정 이래 문화정책 분야에서는 ‘최초의 중장기 종합계획’이란 점에서 많은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정책 추진력이 없는 퇴임 직전의 장관이 광범위한 문화정책 계획을 ‘안 되면 말고 식’으로 발표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목소리도 높았다. 

이런 우려를 의식한 듯 후임 정동채 장관은 최근 문화일보(11. 24)와의 인터뷰에서 참여정부 문화정책의 핵심으로 ‘이창동 전 장관 시절에 만들었던’ ‘창의한국’을 꼽았다. 이 인터뷰에서 정 장관은 ‘기초예술의 육성 없이 문화산업의 발전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을 강조했다. 기초예술 살리기를 위한 예산이 2003년 대비 49% 증가한 2016억원이고, ‘기초예술을 단단히 하지 않으면 문화산업이 전반적으로 하강 곡선을 그리게 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정 장관의 주장은 한마디로 ‘기초예술 없이는 문화산업도 없다’는 것으로 정리 될 수 있다. 

문화산업에 대한 지원정책은 국민의 정부에 들어와서 본격화 된 것이다. 국민의 정부 이전의 문화산업 정책은 대중문화의 규제를 통한 육성의 차원에 머물렀다. 반면 ‘국민의 정부는 문화의 경제적, 산업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강조하며 문화산업에 대한 지원을 대폭 확대하였으며, 문화정책 내에서도 문화산업의 비중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국민의 정부는 <문화산업진흥 5개년 계획>(1999), <문화산업비전 21>(2000), <콘텐츠코리아비전 21>(2001), <문화콘텐츠산업 발전정책>(2001) 등 문화산업의 중장기 전략을 수립했다. 만화계를 포함한 문화산업계는 문민정부 시절 영화 <쥬라기공원> 수익과 현대자동차 수출대수 비교로부터 시작된 정부의 문화산업 정책에 고무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면 문화예술계는 정부가 ‘문화기반시설의 확충과 문화콘텐츠산업 육성에 집중적인 투자’ 를 시작하자 문화예술단체를 중심으로 ‘기초예술 말살론’과 ‘문화에 대한 경제적 이성 비판론’이 제시됐던 것이다. 이들의 활동은 비판의 요지가 정장관의 입을 통해 그대로 전달될 정도로 가시적 성과를 이루었다. 

정장관은 참여정부 2기 내각의 문화정책은 ‘기초예술 살리기’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2005년 문화관광부의 사업계획을 검토한 이들은 ‘기초예술 살리기’가 ‘우는 애 달래기 수준’에 불과하다며 평가절하하고 나섰다. 2년 연속 100억 여 원 규모의 문화산업 관련 예산이 감소했음에도 기초예술론자들은 만족하지 못하는 눈치이다. 더군다나 최근 문화관광부가 문화산업국을 문화산업국과 신설 된 문화미디어국으로 분리하자 자신들의 부단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문화산업 챙기기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섰다며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우는 애를 달래겠다는 것이 아니라 요구의 상당 부분을 수용했음에도 부족하다고 더 달라며 보채는 형국이다.

문화예술계에서는 문화산업 중심의 문화정책을 비판하고, 이 수혜자 중 한 측이었던 만화계 일각에서는 어느 사이 문화산업정책 내에서 산업 중심의 만화정책을 꼬집고 있다. 이 같은 만화계 일각의 주장은 ‘획일화를 부르는 대중사회의 문제점들을 기초예술분야를 근간으로 한 다원적인 문화사회가 막을 수 있다’는 문화예술진영의 이론적 행동노선과 동일해 보인다. 이대로라면 산업중심의 만화정책을 기초예술론에 입각해 수정하고 문화산업정책을 기초예술부각론을 근간으로 전면수정하자는 것과 다름없다.

이것이 발전적 정책입안을 위한 논의 전개라면 대 환영이다. 그러나 논의의 전개 국면을 보자니 천박할 정도의 이성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의 분야를 명확화, 세분화 시키고 있다. 통합의 시대에, 만화계 전체를 대표하는 이들이 자신을 포함한 일각의 이익을 위해 이른바 밥그릇 만들기 싸움을 하고 있는 모습은 안타깝기만 하다.


포정의 도, 우리가 쓸 만화정책입안자는 우리가 성장시켜야


문화예술과 문화산업, 기초예술과 문화콘텐츠, 다원적인 문화사회와 역동적인 문화국가를 나누는 인식적 기준은 명확해 보이기도 하지만 모호하기 그지없다. 문화산업 장르 중 어느 것 하나 예술의 형식에 근접해 있지 않은 것이 없으며, 문화예술 장르 중 어느 것도 산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비단 전통적인 문화나 예술 일반의 문제뿐만이 아니다. 기계복제시대를 넘어선 디지털복제시대에 생산의 개념은 단순히 산업으로 귀결되는 것이라 문화 예술 산업의 형식과 기능을 통합 시키고 있다. 이를 전통적 인식을 통해 굳이 분화시키려고 하는 것은, 또한 그것이 발전적 논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다리를 걸고’ 결과적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라며 이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올해 문화관광부의 전체 예산은 1조1,893억원. 이중 문화산업국의 예산은 10%가 넘는 1,663억원. 문화콘텐츠진흥원을 통해 만화산업육성사업에 배정된 예산은 14억원이었다. 지방자치단체 등에 배정된 만화관련 예산과 공동시설 등의 사업을 제외한 수치이지만 문화산업국 예산의 1%도 되지 않는다. 문화산업계에서 만화가 차지하는 시장규모에도 못 미치는 예산이다. 이를 늘리기 위한 내부의 고민은 만화계 전체가 나서야 할 일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결과적으로 이것은 산업에 가깝고, 이것은 예술에 가깝고 하는 식의 논의, 이것은 ‘자생력은 없지만 문화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하다’는 식의 감성적 동의를 구하는 이론은 전혀 생산적이지 못하다. 

문화콘텐츠진흥원은 이 예산으로 참여정부의 문화정책 기조에 따라 만화 분야에 있어서도 국내시장 확대, 해외시장진출, 창작 기반 강화, 유통구조 개선, 법제도 개선 등의 사업을 추진했다. 몇몇 부분에서는 가시적인 성과도 있었지만 관심을 끌었던 ‘출판만화 유통구조 현대화’ 사업은 실체를 확인하기 어렵게 됐고, ‘대여권법’은 만화시장 위축을 더 악화 시키거나 만화계 내부의 결집을 와해했다는 등 부정적인 시각이 더 많아졌다. ‘심의제도’에 있어서도 현 제도에 ‘등급제’를 적용하자는 논의가 전개되면서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라는 불평이 쏟아지고 있다. 예산도 부족하고 성과도 불만족스럽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 정책추진 과제는 만화계의 총의를 모아 수립된 것이고 함께 추진해 온 것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만화산업을 위한 것이든, 만화문화나 예술을 위한 것이든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로 남아있다. 문화계와 만화계 일부의 경제적이성 비판론에 흔들려 완성되지 못한 사업과 정책 기조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이런 미지근한 성과는 정책담당자가 잘 못해서가 아니라(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상당부분 만화계가 추진과제를 정상적으로 관리 감독하지 못했거나 우리가 쓸 인재를 스스로 양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두에 <식객> 이야기가 나왔으니 소잡이 포정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하자. 장자(莊子) 양생주(養生主) 편에 등장하는 위나라 최고의 소잡이 포정은 칼 기술이 워낙 뛰어나 도에 이르렀다고 한다. 포정은 보통 소잡이는 매달 칼을 바꾸는데 이는 뼈를 자르기 때문이고, 솜씨 좋은 칼잡이는 매년 칼을 바꾸는데 이는 살을 자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신은 19년이나 소를 잡았지만 칼날은 막 숫돌에 간 것 같단다. 자신의 칼은 두께가 없지만 뼈마디에는 반드시 틈이 있기 때문에 칼을 놀리는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뼈와 살이 엉킨 곳을 만나게 되면 도에 이르렀으되 자만하지 않고 이를 매우 섬세하게 다룬다고 했다. 이를 비유해 일처리가 매우 능수능란함을 유인유여(遊刃有餘)라 한다. 

만화를 문화로써 진흥하되 산업과 예술이 다치지 않게 하고 19년쯤 되는 공력으로 만화의 도에 이르렀지만 이견의 여지가 있는 부분은 충분히 고민하여 처리하는 포정의 도를 지닌 만화정책입안자. 문화산업국의 콘텐츠과가 이제 그런 인사를 배출할 때가 됐다. 좀 더 지켜보고 준엄한 자세로 응원해주자. 그리고 무엇보다 정부가 우수한 정책입안자를 등용하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만화계가 등용된 인사와 함께 성장해가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끝)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계간만화, 2005-01-15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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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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