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만화천재 영만이 형도 공부한다더라, 코믹플러스닷컴, 2007.3.26



박석환의 만인보2 - 허영만


만화 선생님 허영만 


허영만을 만나는 일은 즐겁다. 허영만이 우리만화계 최고의 인기스타이자 가장 대중적인 작가 중 한명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만화로 꿈을 꾸던 시절 이두호의 만화로 글을 배웠다면 허영만의 만화로는 만화 자체를 배웠다. 그래서 허영만을 만날 때는 강의실에서만 만나던 선생님을 사석에서 만날 때의 즐거움이 있다. 선생님은 지식에 대한 갈증을 정으로 쓰다듬어 준 사람일 것이다. 이런 이들에게 허락되는 역할과 존칭이 또 선생님이지 않은가. 내가 만화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허영만의 다양한 작품세계는 그 자체로 우리만화를 이해하는 매뉴얼이 되어줬다. <무당거미>를 통해 느꼈던 갈증을 <카멜레온의 시>를 통해 풀게 했고 <링의 골칫거리들>을 통해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래서 내게 허영만은 선생님이다. 아니 허영만의 만화가 내게 선생님이었다. 


요리만화 <식객>, TV가 말하다


지난 10월 2일 KBS 별관에서 “TV 책을 말하다”의 스튜디오 촬영이 있었다. 이 날의 주인공은 허영만과 최근 2년 여의 동아일보 연재를 마무리하고 1차분 단행본 8권의 작업을 완료한 요리만화 <식객>이었다. 나는 허영만과 함께 이 프로그램에 패널로 참가했다. 허영만 데뷔 30주년 헌정 평론집 <허영만표 만화와 환호하는 군중들>의 출판이후 6개월 여 만의 만남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허영만은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허영만은 ‘나 때문에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고생’이라며 수인사를 건넸고 나는 ‘연재 종료 후 좀 편하시냐’며 건강을 물었다. 허영만은 요즘 암벽등반을 배운다고 한다. 워낙에 만능스포츠맨인지라 25살 차이로 ‘제자’ 운운하는 나보다 건강해 보인다. 그러나 많은 량의 작품을 창작했고 그것이 얼마나 고된 과정인지를 가늠할 수 있기에 제자는 선생님의 건강이 걱정이다. 


환갑을 바라보는 젊은 만화가 


녹화 이전, 총 41권짜리 대작 <타짜>가 데뷔 30년 이전의 창작 스펙트럼을 일괄하는 작품이라면 31살 주인공 성찬이 등장하는 <식객> 40편의 에피소드는 앞으로 10년의 창작 흐름을 예견하는 작품이냐고 했더니 ‘너무 오래 했다고 흉보는 것 같다’며 화제를 돌렸다. 8개월 전 쯤의 인터뷰 때도 30주년이 뭐 그리 중요하냐. 늙었다기 보다 ‘오래 된 것 같아 싫다’는 이야기를 했다. 신곡도 없이 30년을 추억으로 버티며 기념 콘서트를 하는 이들과 30년 간 늘 새로운 작품으로 승부했고 앞으로도 새로운 작품에 도전해야 하는 입장의 차이를 분명히 했다. 이와 관련 만화가 박재동은 대중의 흐름을 읽어내면서 늘 새롭고 다양한 소재의 작품을 내놓는 허영만은 ‘한마디로 젊은 만화가’라고 했다. 건강이 걱정될 지경인 데뷔 31년 차의 창작인이 현장의 후배에게 ‘젊다’는 표현을 듣는 것은 찬사를 넘어서는 그들만의 평가 방식 일 것이다. 


모르는 것을 어떻게 그리나?


소설가 과학자 인문학자로 구성된 3명의 MC는 허영만 만화에 대한 추억과 허영만 만화의 전문성 그리고 허영만이라는 창작인의 성실성에 대해 많은 시간을 들여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내게는 허영만이라는 작가, <식객>이라는 작품의 의미 그리고 허영만 만화의 문제점에 대한 답을 찾으려 했다. 방송이 어느 한편의 일방적인 주장만 담을 수 없듯 어느 개인의 찬사만 늘어놓을 수 없기 때문이고 평론가 입장에서 참석한 내 역할이 거기에 있었다. 필자는 이에 대한 즉답을 피했다. 허영만의 과도한 소재주의나 편협한 민족주의, 보수적 계몽주의 등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지만 그 자체가 현대만화가 지닌 표현성, 기능성, 효율성 등에 대한 요소적 특징이고 허영만 만화의 장점이기도 한데 이를 어찌 동일한 크기의 단점으로 말할까. 대신 만화 일반론과 함께 서울경기 강원 충청 전라 경상 전 지역의 사투리와 풍경을 바탕으로 요리와 먹거리 속의 인정을 묘사해낸 <식객>은 우리만화 뿐만이 아니라 어떤 장르의 작품에서도 담아내지 못한 ‘한국의 것’이었음을 재차 강조하는 선에서 답변을 마무리했다. 몇몇은 편집됐지만 답변의 의미들은 다음 진행 발언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허영만이 말했다


취재를 하고 사진자료를 찍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작품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다. ‘내가 하지 않은 것이 SF와 사극이다’ 지금보다 ‘많은 공부와 현장을 다녀야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다.’ 아는 것도 그리기 힘든데 ‘모르는 것을 어떻게 그리나? 사진을 찍어 두는 것은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 중 놓치는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 컷 한 컷 그릴 때마다 대충 그리고 싶다. 그걸 넘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영상테크놀로지의 발전이 흉내낼 수 없는 만화의 철학적 형식


이날 허영만은 TV의 책 정보 프로그램에 소개 된 최초의 만화가가 됐다. 또 <식객>은 방송에서 비하의 대상이 아니라 나름의 인격을 부여 받은 최초의 만화 작품이 됐다. 허영만은 이 프로그램이 인문교양서나 소설을 주로 다뤘던 것에 비춰 ‘우리만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오늘로서 완전히 바뀐 것 같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나는 ‘만화이고 아니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만화가 좋은 책이냐 아니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만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이런 언급들을 통해 꾸준히 재생산되는 구조가 싫었기 때문이다. 또 한 측면으로는 허영만의 <식객>이 국내 최고의 인기만화가 허영만의 만화로만이 아니라 책 자체로서의 기능과 역할에 충실했고 거기에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기실 허영만의 만화는 90년대 이후부터 혁명적인 변신을 거듭했다. 이야기와 정보가 따로 떠돌던 시절 만화와 책은 따로 인식됐다. 허영만은 이를 이야기 속에 녹여내기 위한 단련 과정을 수없이 거쳐 왔다. 그 결과 허영만의 작품은 영상화하기 가장 좋은 아이템이 되었다. 그리고 영상에 가려 책이 힘을 잃어가고 있는 이즈음에 자신의 만화 철학으로 완성된 한 편의 작품을 만들어낸다. 이야기의 감동과 정보가 더욱 깊어진 허영만식 만화문법은 매년 2배씩 성장한다는 영상테크놀로지로도 흉내 낼 수 없는 요소를 지니게 됐다. 그것은 발전된 기술이 아니라 연마된 정신의 문제일 것이다. 이를 ‘30년 내공의 힘’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고 만화를 ‘만들어내는 재주가 아니라 찾기 위한 노력’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오늘 우리의 젊은 만화가들에게 꼭 필요한 것, 더더욱 필요한 것,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은 바로 이 점일 것이다. 


영만이 형도 공부한다더라


현재 허영만의 만화 중 <각시탈>과 <타짜>의 영화화가 진행 중이다. <식객>은 늦어도 내년 초쯤 다른 매체를 통해 연재가 재개 될 계획이고 몇몇 작품의 복간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한 학기에 한 두 번씩 순천대학교 석좌교수로 학생들과 만나고 있으며 미뤘던 해외 등산계획도 추진 중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여전히 카메라를 붙들고 소재를 찾아내고, 뛰어다니면서 작품을 그린다. 믿음직한 선생님의 모습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만화천재임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선생님께 한마디 하고 싶다. 


“선생님 오늘은 <식객>까지 배웠습니다.”


(끝)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코믹피플, 코믹플러스닷컴, 2004-10-14 게재

* TV 책을 말하다-‘식객’편 다시보기(무료, 회원가입 필요)

http://www.kbs.co.kr/1tv/sisa/book/vod/1331164_189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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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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