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김수용의 '힙합' [이 만화를 발견하다], 한국일보, 2007.3.22

춤꾼이 그린 춤 이야기

힙합 문화 모든것 담아내, 취미소재 만화 개막 알려


노래방의 등장은 노래하며 즐기는 문화의 모습을 바꿔놓았다. 둥글게 모여 앉아 노래하던 시절의 여유로움은 옛날 사진첩에서나 볼 수 있는 촌스러운 풍경이 됐다.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같은 높이의 무대에서 어깨를 맞대고 부르던 합창은 사라지고, 서로 다른 위치에서 가수와 관객이 입장을 바꿔가며 노래하고 곧바로 점수를 매긴다. 이 같은 노래방 시스템은 TV 쇼 프로그램이 만들어 낸 ‘개인기 문화’와 맞물리면서 평범한 이들의 흥을 정교성이 채점되는 기술로 변화시켰다. 

이처럼 요즘 세상은 친목도모를 위한 단순한 놀이를 놀이 자체로 두지 않는다. 취미나 취향으로 끝나는 놀이가 아니라 특기이고, 자신만의 독특한 삶을 표현하는 방식으로서 놀이문화가 생긴 것이다. 주5일 시대의 여가인가 하면 자기 계발이고, 투잡스시대의 두 번째 일이면서 웰빙시대의 자기관리 프로그램이다. 일과 놀이를 분리했던 전통이 깨진 것이다. 

김수용의 만화 ‘힙합’은 새로운 청소년문화가 형성되고 놀이의 패러다임이 변하던 시기에 등장한 독특한 색깔의 작품이다. 제목 그대로 미국에서 198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힙합과 90년 대 전후반 한국에 상륙한 힙합문화를 소재로 했다. 97년 만화잡지 ‘아이큐 점프’에 연재를 시작했고, 현재 22권의 단행본이 출간됐다. 

교실 뒤쪽에서 펼쳐졌던 주인공 성태하의 ‘브레이크 댄스 따라하기’가 어느덧 대만에서 열리는 아시아 대표 춤꾼간의 ‘춤 대결(Show Down)’로 발전했다. 주인공에게 춤은 취미이자 특기이고, 오늘을 사는 일이면서 내일을 위한 준비이다. 

힙합은 빠른 속도로 중얼거리는 듯 랩과 아크로바틱한 춤, LP판을 긁는 듯한 소리와 자유로운 패션, 그리고 낙서미술이 어우러진 일종의 퍼포먼스 아트이다. 가요 프로그램의 립싱크 선수들이 보여주는 곡예, 가수 뒤에서 땀 흘리던 춤꾼이 툭 튀어나와 내뱉는 랩, 땅에 질질 끌고 다니는 바지가 힙합의 전부는 아니다. 힙합은 노래, 춤, 음악, 패션, 미술 등을 혼합한 종합예술이다. 서로 다른 범주를 오가는 자유로움과 열정,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과 비판 등을 담고 있다. 이것이 힙합의 정신이다. 

작가 스스로 방송국의 힙합 댄서 출신이었던 만큼 작품 전편에는 힙합의 역사와 성장 배경, 힙합문화에 대한 이해와 진짜 춤을 추는 방식 등이 상세하게 수록돼 있다. 이른바 춤을 소재로 한 최초의 전문 만화이고, 취미소재 기획만화의 성공적 개막을 알린 작품이다. 물론 만화 ‘힙합’은 힙합 입문서가 아니다. 

그것은 춤이라는 놀이에 대한 애정의 서이고, ‘일이 된 삶의 놀이’를 포착한 문화예언서이며, ‘하고 싶은 일이라면 최선을 다하라’는 잠언서이기도 하다. 2000년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했고, 최근 본편의 외전 격으로 주인공 이전 이야기를 담은 ‘비포 힙합’도 발표됐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한국일보, 2004-03-09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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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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