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이 만화를 발견하다] 문정후의 '용비불패', 한국일보, 2007.3.22

'지존'도 감탄한 데뷔작

국내 최고의 인기만화는 두말 할 것 없이 300만부 판매를 눈앞에 둔 양재현의 코믹무협극화 ‘열혈강호’이다. 무림 정파와 사파의 대립을 그린 이 작품에는 학산문파의 장로이고, 검호가 용비불패인 문정후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주인공 한비광에게 무술의 기초를 전수한 스승이지만 이후 불화가 생겨 적이 되는 역할이다. 이 캐릭터의 모델이 동일성격의 코믹무협극화 ‘용비불패’의 만화가 문정후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열혈강호’가 만화전문출판사 대원씨아이를 대표하는 작품이라면, ‘용비불패’는 자회사격이면서 만화출판계를 양분하고 있는 학산문화사의 대표작품이다. ‘열혈강호’는 1994년, ‘용비불패’는 1996년 연재를 시작했다. 연재시기와 장르만으로 보자면 ‘열혈강호’는 코믹무협극화 붐을 일으킨 작품이고 ‘용비불패’는 이 코드를 흉내 낸 신인작가의 데뷔작일 뿐이었다. 그러나 만화가 박봉성 화실에서 장기간의 작가 수련기를 거친 문정후는 탄탄한 데생력과 화려한 연출력을 더해 ‘열혈강호’와의 차별성을 증명해 보였다. 

도포자락 휘날리는 무협극화만의 화려함과 무술대결장면의 섬세한 인물묘사 등은 ‘열혈강호’의 매끈한 그림에서는 찾을 수 없는 매력이었다. 이에 현존하는 무협극화계의 최고 만화가 양재현이 자기 작품을 빌어 ‘문정후가 양재현 만화의 주인공에게 무술의 기초를 가르쳤다’는 상징성을 부여하면서까지 그를 응원했던 것이다. 문정후 역시 이에 대해 화답하듯 자신의 작품 속에 주인공 용비를 제자로 삼으려는 천웅방의 방주를 등장시킨다. 방주의 이름은 양재현을 거꾸로 쓴 현재양이다. 

‘용비불패’는 돈과 여자를 밝히는 현상금 사냥꾼 용비가 금화경과 율무기라는 보물을 찾으러 중국대륙을 떠돌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화려한 액션과 뒤통수가 뻐근해질 정도의 개그로 그려낸 작품이다. 2002년 총 23권의 작품으로 완결됐다. 100만부 수준의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대만의 만화잡지에 연재됐고 유럽과 미국에서 현지어판이 발행됐다. 동명의 모바일게임이 서비스 중에 있고 롤플레잉 게임도 제작 중이다. 

최근 한 신문의 인터넷사이트에서 ‘용비불패’의 온라인 재연재가 진행되고 있다. 매일 적당량을 업데이트 하는 형식의 이 서비스는 트래픽 폭주 사례를 만들면서 ‘용비불패’ 다시 보기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문정후는 ‘용비불패’ 이후 ‘소용돌이’ ‘괴협전’을 거쳐 학습교양만화 ‘초한지’에 이르기까지 주로 무협성향의 작품을 창작해왔다. 동료만화가 양재현이 예측한 것처럼 우리 만화계의 특정 문파를 대표하는 작가가 됐지만 ‘용비불패’를 넘어서는 차기작은 좀 더 기다려 봐야 할 것 같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한국일보, 2004-03-02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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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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