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에게도 갈채를…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 이어 이 팀의 투수였던 감사용 선수의 일화가 영화로 제작된다. 슈퍼스타즈는 인천을 연고로 한 프로야구 원년 팀이다. 이 팀이 1982년 거둔 성적과 기록은 22년 프로야구사에서 도무지 깰 수 없는 최저 수준. 소설은 만년 꼴찌 팀의 팬클럽에 가입한 주인공이 패배의식을 안고 성장해 가는 모습을 그렸고, 영화는 ‘사회인 야구(취미 야구)’ 출신으로 프로 무대에까지 섰으나 ‘패전 전문’으로 활동한 투수가 주인공이다.
‘밑바닥 인생의 코미디’가 최근 ‘뜨는 영화’의 소재로 적격이라고는 하지만 실존 인물이 등장하는 터에 이른바 ‘삼마이’ 코미디를 목표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꼴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뜻이겠다.
윤태호(34)의 ‘발칙한 인생’이 바로 그런 만화이다. ‘본격 지역사회 성인야구 만화’라는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듯 독고탁 이강토 오혜성 등을 주인공으로 했던 엘리트 야구가 아닌 ‘순수 동네 야구’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오장리’라는 허름한 동네를 배경으로 30대의 백수 박태화를 비롯해서 이발소 서점 세탁소 정육점 등의 가게 주인과 동네 이장, 지역 유지 등이 참여해서 야구단이 만들어 진다.
박태화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등장 인물들은 자영업자. 지역사회가 순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영업 분야에서 소신껏 일하며 소박하게 살고 있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가게 문을 여는 일이다. 유니폼 입고 하는 ‘야구’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들과는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즐기는 ‘고독한 도전’, 또는 ‘폼 나는 여가’였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서 생전 처음 야구를 한다. 자신만의 왕국(가게)을 꾸미며 살았던 자영업자들이 같이 놀기 위해 규율과 규범을 지켜 기강을 세우고, 자기 차례(타순)에 대한 책임감으로 (야구의) 기본자세를 익힌다. 일등의 완성된 멋(결과)이 아니라 꼴찌의 반성(과정)을 강조한다.
이 만화는 1997년 만화잡지 ‘미스터블루’에 처음 연재됐다. 잡지 폐간과 함께 후속 연재가 이뤄지지 않다가 2002년 창간된 ‘웁스’에 다시 연재됐지만 이마저 폐간됐다. 최근 작가의 홈페이지(www.taiotaio.com)에서 유료서비스를 재개했지만 야구구단 형성 과정을 그린 8회 분량 이후는 업데이트되지 않고 있다.
작품의 완결을 보는 것은 요원해 보이지만 초기 설정만으로도 이 작품의 의미는 충분하다. 지역사회의 후미진 곳에서 서운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모여 1승을 애타게 갈구한다. 강하지 않은 상대에게 지고, 질 것을 아는 게임에 나선다. 이길 수 있는 팀이지만 생업의 피곤함 탓에 돌아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시작한 취미가 좋아 꼴찌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늘 일등이었던 사람이나 타고난 부자, 또는 엘리트 지식인이 들려주는 처세학은 상위 몇 %의 사람들에게는 교과서가 될 수 있지만 일반인에게는 ‘복권 당첨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많은 꼴찌들이 알고 있는 독특한 자기관리 방법과 처세 철학이 필요하지 않을까.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an.com)
한국일보, 2003-12-30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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