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이 만화를 발견하다] 양경일 황용수의 소마신화전기, 한국일보, 2007.3.17

퓨전 판타지의 신기원

인간과 마계 싸움 묘사, 책장 넘기는 손 떨릴지경

천계의 공주가 묻는다. “(인간 세계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정말 보고 싶어.” 인간계의 신출내기 무사 ‘소마’가 답한다. “여름에는 더워 죽겠고 겨울에는 춥고,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아름답긴 뭐가 아름다워!” ‘소마 신화 전기’는 그렇게 시작한다. 

천계와 마계 그리고 인간계가 분리된 판타지의 세상. 천상대전이 천계의 승리로 끝난 뒤 마계는 해체되고 인간계는 얼마간의 평안을 얻었다. 그러나 뿔뿔이 흩어졌던 8대 마제가 인간계를 딛고 일어나 다시 한번 천상의 패자가 되려 한다. 

‘소마 신화 전기’는 치기 어린 소년 무사가 운명을 거역하지 않은 채 영웅이 되고 순진무구한 공주가 여왕의 품성을 얻어내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들은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세상을 동경하지만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그러나 소마와 공주가 경험하는 아름다움은 목적지를 향한 도정 중에 얻어지는 등장인물과의 관계에 의한 것이 아니다. 

작품의 첫 페이지부터 시작된 소마의 싸움은 마계족과의 초대형 대전으로 이어지고 3부작(전15권, 애장판은 8권으로 재편집 출간)이 완결될 때까지 계속된다. 주인공 소마가 적과의 대결로 만신창이가 되면 독자가 먼저 부상 회복의 시간을 달라고 ‘타임’을 외칠 정도로 상황은 대전을 중심으로 빠르고 독하게 전개된다. 

도무지 멈출 것 같지 않은 롤러코스트 위에서 독자는 다음 페이지를 넘기느라 손가락이 떨릴 지경이고, 지면 위에 빈틈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의 대전 장면을 그리느라 그림작가가 먼저 쓰러질 것 같다. 소마는 온 몸의 기력이 소진될 때까지 싸우고 나서도 “난 상대가 강해지면 더 강해지지”라며 지금껏 보여줬던 것보다 더 강력한 액션 대전을 펼친다. 

이 작품은 관록의 무협만화가 양인철과 풋풋한 로맨스만화가 김지원의 문하를 거친 양경일이 스토리작가 황용수와 함께 1994년 쏘아올린 데뷔작이다. 

양경일의 그림은 두 스승의 에너지를 양껏 뽑아내 그간 보지 못했던 작법으로 제조해낸 것이었고, 황용수의 스토리는 그림작가와 독자를 몰아붙일 정도로 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에 던져진 최초의 평가는 ‘판타지도 무협도 아닌 것이, 일본식도 구미식도 아니면서, 그림실력 하나는 볼만하다’는 수준의 혹평이었다. 

마치 질 좋은 국산품을 들고 와서는 “이거 어디 나라 거냐?”고 묻듯이 우리의 것을 바로 보지 못할 때 생겼던 해프닝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작품은 ‘한국적 퓨전 판타지 장르의 신기원을 개척한 작품’ ‘우리 만화계가 만들어 낸 최대의 수출상품’ 등의 찬사를 받으며 10여 개 국에 수출되는가 하면 온라인게임으로 제작되어 그 가치를 재확인시켰다. 

그림작가 양경일은 이 작품 이후 ‘좀비헌터’ ‘신암행어사’ 등의 작품으로 일본 만화계에 성공적으로 진출하기까지 했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an.com)


한국일보, 2003-12-09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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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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