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호(1939년생, 본명 김철수)는 서라벌 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4년 부산일보의 시사만화가 민 홍의 문하로 입문했다.
1958년 <<만화세계>>에 독립군을 다룬 <황혼에 빛난 별>을 연재하며 데뷔했다. 세계명작을 만화화 하는 등 극화체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창작했다. 1960년 부엉이문고를 통해 발표한 <라이파이>는 당대 최고의 인기작으로 1965년까지 약 70여권의 시리즈가 발행됐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1966년 미국으로 이민 간 작가는 찰튼코믹스의 전속작가로 활동하면서 <샤이언키드> 등의 작품을 발표했고 아이언호스 출판사를 경영하기도 했다. 이때 발표한 작품 중 <뱀파이렐라>는 전 세계 17개 언어로 번역 출판됐다. 1994년 입국과 함께 전통 회화기법에 만화형식을 더한 `회화극본` <대쥬신제국사>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창작 일선으로 돌아왔다.
산호는 남이 안하는 것을 하는 작가, 남이 했던 것을 안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라이파이’를 기점으로 출발한 산호의 SF만화와 액션활극은 창작수법, 작업형식 등 전면에 걸쳐 색다른 시도와 도전으로 이뤄져 있다. 미국의 마블코믹스를 기점으로 액션히어로 만화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는 영웅의 영문 이니셜 마크를 한글 이니셜로 바꾸고 한국형 액션 영웅을 만들었는가하면 나름의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황당한 SF가 아닌 실현 가능한 미래세계를 재현해냈다.
무선호출기나 제트추진기, 홀로그램 등의 묘사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상이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림 작업에 있어서도 펜화 위주의 작업방식에서 벗어나 색다른 질감을 표현하는 방법, 다양한 재료를 이용한 묘사법 등을 고안해냈고, 만화책의 편집과 장정 등에 있어서도 책 뒷면의 광고를 없애고 앞뒷면을 하나로 사용하기도 했고, 가로가 긴 만화를 창작하기도 했다. 책표지에 영문 타이틀을 넣기도 하고 대사를 한글로 풀어쓰기도 했다.
최고 작가의 명성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의 여러 상황들에 답답함을 느끼던 작가는 그때까지 얻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외국행을 택한다. 최초 그의 작품에 관심을 보였던 일본에서 작품 활동 제의가 있었으나 미국행을 택했다. 산호는 만화의 본 고장은 미국이라고 생각했고 당시 일본만화를 따라하는 국내 작가들에도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의 작품도 새로운 시도로 일관됐고 동양의 신비한 매력을 전달하며 폭넓은 인기를 얻었다.
산호의 창작 성향을 대표할만한 이 같은 시도들은 만화 외적 삶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산호는 미국에서의 작가 생활이 안정기에 이를 쯤 색다른 레저산업 쪽으로 눈을 돌려 사업가로 성공하기도 했다.
<라이파이>에 등장하는 남쪽 십자성과 제트기를 모델로 한 해저유람시설 ‘산호 씨토피아’를 설계하고 관관용 유람선 ‘엔젤브이호’를 제작했다. 또 관광용 잠수정을 만들기도 했다. 새로운 시도와 도전, 만화적 현실의 허황됨을 현실적으로 재생산해내는 의지가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이다. 생의 반려자 역시 일반적이지 않은 미인대회 출신의 재미교포 디자이너였다. 시사만화가 박재동은 그의 부인이 라이파이의 약혼녀였던 ‘제비양과 꼭 닮았다’고 전한다.
산호는 1981년 사업차 방문한 중국에서 동북아를 지배하던 우리민족의 우수성을 재인식했다. 미국인 신분으로 자유롭게 중국 만주 북한 등을 오가며 현지답사를 통한 조사와 문헌연구 등을 통해 우리역사의 거대한 둘레를 다시 맞춰냈다. 창작형식에서도 대형 캔버스에 유화로 작업한 그림을 가로가 긴 그림책 형식으로 편집했다. 10여 년의 준비과정을 거쳐 완성한 <대쥬신제국사>가 그 첫 번째 결과물이다. 이어서 부처의 일대기를 다룬 <대불전>, 북한을 배경으로 한 <두만강> 등의 작품을 동일한 형식으로 발표했다. 2002년에는 환웅 단군 등 국조 105인의 존영을 웅장하게 재현한 ‘한국 105대 천황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산호의 민족주의적 역사관은 다소간 지나친 국수주의로 비춰질 수도 있으나 그것이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기회와 재인식의 발판을 마련할 것임에는 분명하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만화규장각, 부천만화정보센터, 2003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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