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준(1941년생)은 1960년대 우리만화의 첫 번째 전성기를 이끌었던 1세대 작가이다.
1958년 학창시절 독학으로 배운 만화로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 계기가 되어 만화계에 입문했다. 데뷔작이자 출세작이 된 <두통이> 시리즈는 건강한 어린이 상을 심어준 작품으로 기록되고 있다. <도전자> 등의 작품으로 스포츠만화의 삼각구도를 만들었고 신문만화의 새로운 화풍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박기정은 작가의 둘째 형이다.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한 박기준은 ‘두통이’ 연작과 함께 50권 규모의 대작 <올림픽소년> 등으로 만화작가로서 높은 성과를 보였으나 만화스토리작가, 만화편집자, 만화이론가, 만화교육자, 만화행정가 등의 영역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구축 우리만화의 큰 어른으로 평가받고 있다.
‘독고탁’ 시리즈의 인기작가 이상무의 출세작이었던 <노미호와 주리혜>의 경우 박기준이 연재를 시작했던 작품으로 문하생이었던 이상무에게 승계해준 것이다. 이밖에도 다수의 작가들에게 스토리작가로서 만화출판사 편집장으로서 스토리를 써줬다. 서점용 문고판 만화시장을 열었던 전설의 만화책 시리즈 ‘크로바문고’, 여학생을 대상으로 했던 청소년 교양지 <<여학생>> 등의 발행인이기도하다. 또 만화관련서가 전무하던 상황에서 1965년 최초의 만화기법서 <<만화작법>>을 발표하고 잇달아 창작 매뉴얼을 만드는 한편 1985년에는 ‘제일만화학원’을 운영하면서 수많은 만화가를 배출해냈다. 1999년 폐원 이후에는 청강문화산업대 만화과 겸임교수로 활동하면서 현재까지도 만화 창작 교육에 헌신하고 있다. 1975년부터 1979년까지 두 차례 만화가협회장을 지냈고 98년에는 국제만화가연맹 한국지부장, 99년에는 청강문화산업대 만화박물관장, 현재는 부천만화정보센터 이사 등으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활동력을 과시하고 있다.
박기준은 근 50여 년간 만화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만화작가로서 뿐만 아니라 이론가, 행정가 등의 역할에도 충실했다.
작가의 폭넓은 활동범위와 나름의 성과 탓에 우리만화계는 그동안 수집하지 못했던 역사를 그대로 진술할 수 있는 증인을 지닌 셈이다. 증인 박기준은 우리만화의 선구자 중 한명으로 꼽히는 형 박기정과 작가 자신을 포함한 당대의 만화작품과 관련 자료를 성실하게 수집 보관해왔다. 이는 그대로 만화역사를 증거자료로 각급 만화박물관에 기증 또는 전시되고 있다. 증인도 있고 증거도 있지만 박기준은 이를 정리하고 연구하는 몫을 후학들에게 넘기겠다고 한다. 그가 해 온 만큼 그가 만들어낸 인프라가 이 작업을 충분히 해낼 것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만화규장각, 부천만화정보센터, 2003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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