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만화계에 새로운 지도 만든 모험적 이론가 한창완 교수, 코믹플러스, 2003.10.01


한 편의 논문이 만들어낸 신세기 만화문화


1994년 7월 당시 28세로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한창완씨는 ‘한국만화산업 연구­만화산업의 경제적 메커니즘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석사학위 논문을 발표했다-  만화가 임창씨의 아들로도 유명한 한겨레신문의 임범 기자는 7월 19일자 기사를 통해 동일 연구 논문이 전무한 상태에서 등장한 한씨의 논문은 매우 주목할만한 것이라며 상세 소개했다. 땀 냄새가 철철 넘치는 현장감 있는 자료와 함께 국내 만화산업의 유통구조를 분석하고 있는 이 논문과 한씨의 등장은 만화계는 물론이고 산업계 전반의 관심과 함께 만화산업계라는 새로운 지형을 만화계 내외부에 구축하는 역할을 했다. 

한씨는 만화를 둘러싼 내외적 환경을 수치화 시키고 이를 근거로 만화 산업 활성화를 위해 기존의 유통구조를 연관 산업의 수직계열화로 전환해야 하고 만화에 대한 정부차원의 지원정책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현재까지 큰 틀에 있어서 변함이 없다고 볼 수 있는 출판만화계의 공장제 창작 방식 또는 대량 생산 시스템에 따른 짧은 상품주기를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방송사의  수입 방영 위주로 흐르고 있는 애니메이션계를 전면적으로 재 디자인하여 내수시장의 해외상품 잠식을 막고 캐릭터 게임 테마파크 등 연관 산업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치중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수치상으로 본다면 세계 3위의 만화애니메이션 강국이지만 하드웨어 측면의 것이어서 실질적인 부가가치 생산과 문화산업적 영향력은 낙후한 실정이라는 것이다. 

세계시장에 파는 자동차 한대는 2만 여 개의 부품을 함께 파는 것이라고 했지만 문화를 파는 것은, 만화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그 연관 상품을 파는 것은 그보다 훨씬 큰 부가가치를 생산한다는 것이어서 노동력 중심의 생산구조를 창의력 중심의 생산구조로 바꾸기 위한 민-관-학-산의 노력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출판만화 한 편이면 이른바 One Source Multi Use(단일상품의 다매체상품화전략)라는 상품화전략을 통해 한국형 스필버그나 디즈니의 출현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한씨의 논문은 80년대 중반을 지나치며 일어난 대본소 만화붐과 함께 만화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한 만화평론의 등장, 애니메이션업계의 수출탑 수상 등 노동력 중심의 기반조성, 90년대 초반 만화전문잡지의 발행 붐과 바른만화연구회 우리만화협의회 등 색다른 만화문화 보급을 주도한 민간차원의 운동, 애니메이션 전문 케이블TV의 등장, 국내최초로 공주대학에 만화학과 개설, 일본문화개방에 따른 위기의식 및 일본만화산업의 세계화,  정부차원의 문화산업 정책 조정 시기 등과 맞물리며 이론 자체의 확대 재생산을 이뤄냈다. 


민과 관을 연계하고 학을 이끌어 산을 조성한 만화권력


만화 출판 출판유통 애니메이션 영화영상 유무선방송 캐릭터 캐릭터상품 게임 가상현실 멀티미디어 콘텐츠 테마파크 축제 교육 학회 등등. 한씨가 논문을 통해 다루고 있는 분야는 문화산업계 전반을 관통하고 있으며 다가올 신문화산업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만화산업론의 골자인 OSMU를 그대로 차용해서 자신의 논문과 이론 또는 사회적 역할을 다각도로 확장한 셈이다. 속된 말로 한씨가 앉았다간 자리에는 만화를 중심으로 한 또 하나의 다매체 상품과 산업분야가 등장했고 한씨의 역할도 만들어진다는 이야기이다. 

94년 대전대학 출판과 강사로 시작된 한씨의 직함은 명함 한 장에는 도저히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먼저 강의 경력으로는 공주대 단국대 성균관대 성공회대 한국예술종합대 등 만화 신문방송 관련 학과의 강사를 지냈으며 세종대학교 영상만화과 신설에 참여했고 전임강사를 거쳐 현재 교수로 부임해있다. 

95년 정부 주도 하에 열린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은 한씨 논문의 배경 지식을 실연한 것 같은 컨셉의 초대형 만화행사였다. 동일 성격의 해외 행사가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게임을 개별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반해 한씨가 기획실장 겸 큐레이터로 깊숙하게 관여한 이 행사는 이를 종합적으로 연계해서 구성한 형식을 취했다. 이 행사 이후 한씨는 행사 기획자로서 문화계 산업계 학계를 중심으로 정부주도의 문화정책 입안자 또는 제안자로서의 입지를 구축한다. 이 행사의 성공은 동일 성격의 따라하기 식 만화행사를 양산하면서 만화거품론을 대두되게 하기도 했으나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냈고 지방자치시대의 문화정책에 새로운 모델이 되기도 했다. 

한씨의 교육 관련 경력과 행사 기획 관련 경력은 만화영상도시로 거듭나려는 부천시를 중심으로 새로운 관련 행사를 구축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현재 전국적으로 60여 개에 이르는 만화 애니메이션 관련학과가 개설 운영되고 있고 연 1만5천여 명의 학위 취득 인력이 배출된다. 한씨는 이런 현황을 고려 이들이 산업계에 안착하는 형식의 대규모 취업박람회 또는 포트폴리오 행사가 절실함을 느꼈고 부천국제대학애니메이션페스티벌의 준비 및 실행에 적극 참여한다. 지방자치단체와 학계의 참여를 집중적으로 이끌어내면서 아마추어 중심의 행사를 만들어낸 것. 이와 관련 한씨는 각급 대학의 만화관련학과 개설 및 교수인력 수급, 대규모 자본의 참여가 필수적인 기획력 중심의 소자본 애니메이션업체에 정부의 지원 및 자본력을 연결시켜주는 등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관련 한씨는 정보통신부지정 대졸미취업자 전문교육기관 멀티미디어 및 애니메이션 컨텐트 분야 심사위원,  종합유선방송위원회 심의위원, 문화관광부 문화산업진흥 5개년계획 기획위원회 위원, 정보통신부 국책과제 게임산업진흥위원회 수출진흥분과 위원장,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새로운 밀레니엄을 위한 영상산업발전 연구위원회 위원, 한국산업인력공단 국가자격시험게임 출제위원, 문화관광부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부 등급위원 등을 지냈거나 현재 활동 중에 있다. 이밖에 수많은 관련 기업체의 사외이사로 임명이 되어 있고 학내 벤처형식의 세종에듀테인먼트를 창업 운영하고 있다. 


만화지식의 최전선, 지금은 휴전중(?)


한씨의 논문 ‘만화산업연구’는 95년 글논그림밭에서 <한국만화산업연구>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이 책은 2001년 산업통계 및 각종 현안들을 재정리해서 <한국만화애니메이션산업론>이라는 제목으로 한울에서 재판본이 나왔다. 한씨는 각종 라디오방송, 신문칼럼 코너를 통한 평론 및 집필활동을 의욕적으로 진행하는 한편 이론적 체계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론서 집필 및 해외서적의 번역 소개에도 열성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현재까지 약 8년 여 간 동안 10여 권의 개인저작과 10여 권의 공저작을 남겼을 정도. 98년 저술한 <애니메이션경제학>은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의 학술상을 받았고 2001년 에이콤의 넬슨 신씨와 함께 작업한 <애니메이션용어사전>은 전문용어 및 이 분야 정보를 집대성한 역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유럽애니메이션 이야기> <애니메이션 제작기법의 모든 것> <움직임의 미학> 등은 명확한 출처 없이 떠돌던 이 분야의 대표적인 레퍼런스북을 확인시켜줌과 동시에 세계적 논의의 중심을 파악하게 해줬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의 다작이 정보의 나열 또는 생산욕의 과잉이 낳은 것이라고 폄하하는 쪽도 있다. 

98년 한울에서 발행한 <애니메이션 영상미학>의 표절논란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한때 만화평론가 애니메이션이론가 등이 PC통신의 관련 동호회에서 정리한 자료나 게시물을 도용해서 사용하거나 발췌하면서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로인해 통신인들 사이에서 몇몇 평론가와 이론가의 글이 감시 대상처럼 논의되기도 했다. 이 책은 한씨가 그동안의 강의자료와 각종 원고를 정리하고 새롭게 수집된 자료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강의도서로 활용할 목적으로 출판한 것이었다. 본문 중 논란이 됐던 부분은 도서에 삽입된 이미지가 대부분 칼럼리스트 S씨, K씨 등이 수집 소개했던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점이었다. 그림 자료의 중요성이 큰 만큼 이는 상당한 논란을 불러왔으나 관련인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표절은 아니다 라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K씨가 직접 정리해서 나름의 사관을 지니고 구성한 연대표 등의 도표가 무단 사용된 것과 출처가 밝혀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과정상의 문제가 있다는 해석이 나왔고 K씨의 주장과 한씨의 동의에 따라 출판사는 이 책을 전량 수거했다. 한씨는 이후 집중적으로 관련 해외도서를 다른 이들과의 공역 형식으로 번역 출판했는데 여러 권의 번역서에 나오는 핵심내용이 <애니메이션 영상미학>에 요점정리 식으로 삽입 됐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씨가 만화계에 인상적인 첫 모습을 공개한 것은 아마도 <한국만화산업연구>에 수록된 만화가 박재동의 캐리커쳐와 추천서일 것이다. 만화 같은 화면을 상상할 수 있도록 추천서를 써내려간 박씨의 글은 만화가 특유의 것으로 선명하게 기억됐을 법하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신단수에 물 떠 놓고 빌었어야 할 만화계의 떡두꺼비 같은 아들’박씨는 한씨가 만화계의 현실을 정확하게 수치화시켜줬고 밤낮없이 열심히 만화계의 일에 참여했으며 그로인해 자신의 글을 무기이자 권위로 만들었다고 했다. 당시 우리만화발전을 위한 연대모임의 회장으로 만화가를 대표했던 박씨가 병이 날정도 일을 시켜서 미안하다고 할 정도. 한씨는 자신의 일 또는 만화계의 일에 열성적이며 떡두꺼비 또는 탱크라고 불릴 정도로 적극적이다. 

이런 한씨에 대한 최근 평가는 그리 좋지 않은 편이다. 만화계 내외부에서 한씨를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이 전무하다는 것에는 동의하면서도 대안 없음의 문제를 꼬집고 있다. 더군다나 한씨의 역할 폭이 넓어지고 여러 분야의 역할이 한씨로 집중되면서 전대미문의 만화산업계 권력이 등장했다고 보는 쪽도 있다. 이와 관련 더 이상 연구자나 이론가가 아니라 활동가 또는 이벤트 기획자라는 혹평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한씨는 만화에 대한 열정만으로 만화산업연구를 이론으로 체계화시켰고 만화관련 주요 지식 중 하나로 만들었다. 이를 기점으로 민과 관을 연결했고 산과 학을 협동하게 만든 모험적 이론가임에는 분명하다. 연구실의 보호막에 숨어 있는 학자와는 분명 다른 한씨의 역할은 충분히 평가받아야 하는 대목이다. 최근 한 세미나 자리에서 한씨는 ‘1~20년의 투자로 답을 볼 수 없는 것이 문화산업’이라고 답했다. 한씨가 구축한 만화관련 지식은 아직도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가설이고 그 결과는 여전히 가설로 남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한씨는 투자를 이끌어내는 연구 성과를 보여주면서 만화계의 지도를 바꿨다. 만화계의 최전선에 배치된 격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 여전히 작전만 넘쳐날 뿐 전과 같은 진격이 없다. 한씨에 의해 만화계의 현황이 바뀔 수 있는 후속 연구가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끝)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코믹플러스, 2003-10-01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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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eokhwan

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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