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평론가 박석환이 본 '용하다 용해'
‘용하다 용해’가 1000회를 돌파했다.시작 때부터 만년 대리였던 주인공 ‘
무용해’는 1000일을 넘기고도 과장에 진급하지 못했다.어디를 가나,어느 조
직에나 꼭 한 명씩 있는 ‘꼴통’.대리 직함은 어떻게 달았는지 궁금할 정도
이고,그 예쁜 마누라 또한 어찌 얻었는지 신기할 지경인 꼴통이 바로 무대리
이다.꼭 필요한 조직원으로 살고 싶었지만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됐고,있어
서는 안될 인력이라 평가받고 있다.그 꼴통의 일상이 1000일간 신문과 웹사
이트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됐다.
결과는 그야말로 ‘꼴통천하’.도서 연극 드라마 CF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
온갖 영역에서 무대리를 찾았고,작가는 어느덧 최고의 인기 만화가가 됐다.
무능한 가장이요,직장인인 무대리는 우리시대가 간직한 패잔병의 모습이다.
민중운동시대의 투사로 산업 호황기의 첨병으로 맞춤교육을 받았지만 써보지
도 못하고 정보화시대의 짜투리 땅 안에 갇혀 지내야 하는 신세.이른바 끼인
세대다.
위로는 빈틈없는 산업화 세대가 버티고 있고 아래로는 전혀 새로운 사고로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정보화 세대가 있다.올라갈 곳도 내려갈 곳도 없고 이
탈할 곳만 찾고 있는 신세다.그 신세가 만들어내는 드라마와 이탈보고서에
동세대 직장인들이 웃고 울고 있다.연재 초창기에는 남성독자를 겨냥한 듯
무대리를 ‘뻔데기’에 비유하며 ‘성적 무능력자’로 각인시켰으나 회를 거
듭할수록 폭넓어진 독자층에 맞는 소재를 등장시키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무대리는 직장인 남성이 아니라 조직의 위계 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모든 이의 아이콘이 됐다.타인의 일상을 통해 자신의 일상에서 비껴
나고자 하는 직장인들은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무대리가 등장하는 신문을 들
고 있고,근무시간을 이용해 이탈을 계획하는 이들은 모니터를 감춰가며 무대
리가 등장하는 웹사이트를 클릭하고 있다.
영화 ‘트루먼 쇼’가 떠오르는 대목.30년 동안 자신도 모른 채 사상 최고의
다큐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살아 온 트루먼.극중 트루먼의 일상에 의지하며
자신의 일상을 살고 있는 대중처럼 직장인들이 ‘무대리 쇼’를 찾고 있는
것이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스포츠서울, 2002-06-17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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