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을 위한 만화
우리 만화계에는 이런저런 형식의 ‘어른대상만화’가 존재한다. 가장 일반적인 것이 신문만화로 시사만화, 스포츠신문 연재만화 등이다. 대본소-또는 만화방이라고 하는 공간에서 볼 수 있는 이른바 ‘일일만화’ 역시 ‘2030세대’를 독자층으로 한 어른만화이다. 대여점 또는 서점판매용으로 ‘19세미만 구독불가’라는 빨간딱지를 달고 나오는 책들도 100% 성애만화가 아니다. 상당수의 작품이 드라마와 교양을 강조한 어른용 읽을거리이다. 최근 붐을 이루고 있는 장정본 유럽만화와 추억의 만화 복간작들 역시 성인을 주 독자층으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성인만화는 성적 표현으로 넘쳐나는 성애만화와 동격으로 여겨진다.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으나 대표적인 것은 만화 매체에 대한 우리사회의 변하지 않는 인식 때문이다. 만화적 표현에 대한 음란성과 선정성 시비가 반복 재생산되면서 만화 작품은 아동용과 성인용으로 양분됐다. 이중 성인용은 남녀의 성애 묘사를 필요이상 자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성애만화라 할지라도 그 표현수위는 여타 미디어 장르에 비해 높지 않은 편이다. 즉 어른을 독자층으로 하지만 성표현이 삽입되지 않으면 청소년용이고 성표현이 있으면 성인용이 됨과 동시에 성애만화라는 굴레를 쓰게 된다.
진정한 성인들을 위한 볼거리
우리 만화작가들은 성인만화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재고하고자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둘리 아버지’로 유명한 만화가 김수정은 직장인을 독자층으로 한 잡지에 작품을 연재하면서 ‘어른만화’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성인-’이라는 개념에 ‘성적 표현물’이라는 관습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수정하고자 한 것이다. 또 일련의 중견만화작가들 역시 자신의 독자층이 성장하는 속도에 맞춰 작품의 등장인물 연령을 높이면서 성애만화가 아닌 성인만화 만들기에 주력했다. 이현세는 이를 위해 청소년 대상 스포츠만화의 주인공 까치를 버렸고, 허영만은 이념 기업 세일즈 경마 도박 등의 전문소재에 주력했다. 사회문제를 집중 조명하면서 ‘현실참여 작가군’으로 분류 된 이희재 박흥용 오세영 등은 문학적 진정성을 능가하는 빼어난 단편을 선보였다. 붓터치의 매력으로 민중의 힘을 강조한 이두호 백성민 방학기, 교양주의를 선언한 이원복의 역사만화 역시 그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성애가 아닌 성인만화를 만들겠다는 이들의 의지는 시시때때로 감시당했고 단절됐다.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는 신화의 가면을 쓴 포르노로 매도됐고, 이두호의 바지저고리는 풍속에로물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지 않아서 성인용으로 간주되고, 성인용이기 때문에 성표현이 삽입됐을 것으로 보고, 그 수위에 대해서 검찰이 감시를 한다. 이는 성표현의 유무를 떠나 대중이 성인만화를 성애만화로 인식하도록 조장하는 격이다.
만화의 발전 속도를 따르지 못하는 인식
최근 MBC의 한 프로그램은 만화책 읽는 이들을 비하하고 선도해야할 대상으로 간주하는 듯한 내용을 방송했다. 이 방송을 접한 네티즌들의 반발이 극심했고 만화관련 단체들은 항의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만화는 지적수준이 떨어지고 유아적인 성향이 강한 저연령층의 독자만 보는 것’이라는 방송 내용을 뒤집기는 힘들었다. 단순 오락물에서 지적매체로 거듭나고 있는 만화책의 순기능과 만화의 문화산업적 파급효과를 이해하지 못하고 시시때때로 만화의 저급함만을 부각시키는 것은 무척 유감스러운 일이다. 성인만화를 성애만화로 이해하도록 국민을 훈련시키는 것만큼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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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충북대신문, 2002-05-20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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