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그 어중간함
어느 해보다 가을이 짧을 것이라고 한다. ‘뚜렷한 4계절이 있기에…’라고 학습한 덕에 4등분해서 생각하고 있던 계절의 길이가 들쑥 날쑥이다. ‘선선함’이라 표현될 법하게 덥지도 춥지도 않은 이 계절은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찐다는 고사처럼 놀기에 좋은 때이기도 하지만 수확의 계절이고 독서의 계절이라는 상투성처럼 일하기에도 좋은 때라 TV프로그램 일정따라 일하고 쉬는 이들에게는 무척 어중간하다. ‘빠름(일)’ 아니면 ‘느림(쉼)’이 미덕이라는 ‘초 스피드’ 사회의 극단적 합리성이 여름도 겨울도 아닌 어중간한 이 계절의 무게를 회피하고 싶어지게 한다.
누군가는 여름 내내 기대했던 땀띠나는 로맨스 대신 솔잎 향내처럼 바람결에 묻어오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또 누군가는 주5일 근무제를 미리서 준비하는 듯 ‘금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아침까지’를 성실하게 보내기 위해 분주하다. 형편이 좋은 쪽은 자기 개발을 위해 학원을 쫓아다니고 그보다 못한 쪽은 읽어야 할 책을 찾아 나선다. 일 같기도 하고 쉼 같기도 하다. 여하간 떨쳐지지 않는 건 이 어중간한 계절을 통해-거기에 1주 2일의 여유시간을 통해- ‘단기속성’이듯 ‘맞춤’이든 꼭 무엇인가를 성취해야겠다는 입장이다. 일과는 분리되는 또 한가지. ‘1특기, 1취미’이거나 ‘주업, 부업’이거나. 덥지도 춥지도 않은 이 어중간함이 일하지도 쉬지도 못하게 하면서 자기분야의 전문성 외에 별도의 무엇을 하나 더 가져야 한다는 위기감을 준다. 그런 까닭인가? ‘후끈후끈 대일파스’ 하나 붙이고 허리들새 없이 땀흘려 일하는 것만이 최선이던 때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여행-놀자! 배우자!
가을의 영원한 테마는 여행이다. 산으로 들로 여행을 떠난다. 그것이 또 100% 놀이이지는 않다. 여행자의 손에 들린 책 한 권은 그 여행의 성격과는 상관없이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에 충분하다. 때로 가벼워 보이는 만화책도 그 제목만으로 충분히 가치를 지니는 작품들이 있다. 쉼 사이에 들어가서 살며시 고개를 내미는 지식. 솔직하고 간명하게 지식 채집이 가능한 작품을 소개한다.
Goscinny Rene, Uderzo Albert, <아스테릭스>, 문학과지성사
유럽의 대표적인 문화상품 중 하나는 아스테릭스이다. 얼마 전 프랑스의 국민배우라는 사람이 출연한 영화로도 소개돼 허리우드 영화를 우습게 만들었던 영화 <아스테릭스>의 원작은 만화이다. 선뜻 어떤 작품인지 그려지지 않는다면 교수 만화가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를 생각하면 된다. 유럽 유학 중 가장 큰 문화충격이었다고 고백하듯 그의 만화는 <아스테릭스>와 유사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의 작품이 인문교양서로서 손색이 없듯 프랑스의 문화적 자존심 중 하나로 칭송받는 <아스테릭스> 역시 유럽의 대표적인 인문교양서 중 하나이다. 만화의 모습으로 전세계 42개국에 번역돼 3억권 가까이 팔린 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이 작품은 기원전 50년 로마 지배하의 유럽을 배경으로 이에 저항하는 갈리아 지방의 골족(프랑스인의 조상)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칸칸마다 부담없게 삽입된 유럽문화와 역사를 채집하는 즐거움 외에 미국의 급조된 문화가 따르지 못하는 유럽문화의 저력을 채감하게 한다.
Takao Yaguchi, <소년낚시왕>, 서울문화사
당대 최고의 작가인 <슬램덩크>의 타케이코 이노우에가 신작 <베가본드>를 작업하면서 이런 고백을 했다. 독자가 무엇을 얻을 것인가? 일본 청소년만화가 기본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도전과 극기’ 이외에 ‘싸워서 이기는 것’ 말고 무언가 전문적인 지식(정보)을 삽입하고 있어야 한다는 편집자의 요구에 대한 고민이다. 최근 국내에 소개되고 있는 일본만화 중 ‘전문소재 만화’로 분리될 법한 작품의 대개는 특정 분야의 직업에 대한 일반상식 이상의 지식을 담고 있다. <맛의 달인>, <미스터초밥왕> 같은 요리소재 전문만화가 일본만화의 ‘교양주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소년낚시왕>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낚시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못말리는 낚시광>이 성인 취향의 낚시교양만화라고 한다면 <소년낚시왕>은 낚시와 물고기에 대한 각종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물고기, 환경, 인간과의 대결구도를 삽입해서 볼거리와 읽을거리를 충실하게 담은 낚시전문만화이다.
Miuki Yorita, <예뻐지고 싶어!>, 학산문화사
얼굴이 예쁘지 않다는 것에 대한 평가가 요즘처럼 곤란하게 느껴지는 때가 또 있었을까? 선천적이지 않아도 예뻐질 수 있는 방법을 알게된 사람의 욕심은 무척 다양한 고민 거리를 만들고 있다. 매일 보던 사람도 몇 일만 보이지 않다가 나타나면 ‘(얼굴이)달라졌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꺼낼 수 있는 요즘. <미녀는 괴로워>가 사랑과 결혼을 목표로 한 성형미인의 당위성을 내세우면서 과거의 모습(내적인)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해(못생기면 착해야 한다는 입장이 작품 전체를 감싸고 있다) 완전한 아름다움을 얻는다는 이야기성을 강조하고 있다면 이 작품은 성형이 아닌 전신 메이크업을 통한 변장(?)에 주목한다. 미남 남자친구를 쟁취하기 위한 주인공 카루코의 상처받은 감성과 눈물나는 메이크업 기술 습득 과정이 섬세하게 그려졌다. 성형하고 볼 일이라기 보다는 노력하고 배워서 가꾸고 볼 일이라는 느낌이다.
TIP
책은 놓고 다녀도 PDA는 들고 다녀야
최근 직장인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PDA이다. MS의 아웃룩을 테스크탑 개인일정관리 프로그램으로 사용하고 있는 대다수의 직장인들은 일정, 연락처, 메일, 작업일지 등을 이동중에 공유하고 오프라인 브로우저를 통해 인터넷의 정보와 전자책, MP3 파일 등을 이용할 수 있는 PDA의 기능성과 활용도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핸드폰을 대체하는 범용적인 휴대기기로서의 역할도 요구되고 있다. 여행 중의 필수품 중 하나가 되는 것도 오래지 않을 것이고 그 안에 책을 담아 가는 것도 일상적인 일이 될 듯 하다. 이와 관련 최근 www.comicplus.com은 모바일 만화채널을 통해 PDA용 만화의 무료서비스를 시작했다. 아직 시범 서비스 중이라 작품 해상도에 문제가 있지만 랜드스케이프(화면을 옆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이용하면 무리없이 이동 중에 만화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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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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