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얀과 필립베르테의 핀-업, 굿데이, 2002.03.05


클릭월드에로카툰13.


포르노와 만화를 전쟁에 이용하는 방법

핀업은 사진이나 그림을 압정 또는 옷핀으로 벽면에 붙이는 것을 말한다. 2차 세계대전 때 파병된 미군들이 철모, 막사, 비행기 동체 등에 성적 환상을 자극하는 여인의 모습을 그려 붙였고 이를 핀업 걸(pin-up girl)이라고 불렀다. 최근 출간된 불어권 만화 <핀-업>은 그때 그 시절을 무대로 한 연애 드라마이자 연예계 만화다. 

약혼자 조를 전쟁터에 보낸 도티는 생활고에 시달린다. 친구의 소개로 만화가의 누드 모델이 된 도티. 그녀를 모델로 한 신문 연재만화 <독초 아이비>가 히트를 치면서 도티는 일약 스타 핀업 걸이 된다. 조의 주머니에 자신의 사진을 넣어주지 못하고 헤어져야 했던 도티가 전 미군의 섹스심벌이 되고 조의 핀업 걸이 된 것이다. 

만화 속 만화 <독초 아이비>는 만화가 밀턴이 군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최고의 애국심과 반일 감정을 발휘한 작품이다. 

이 만화에서 미군들은 전쟁 중에도 아이비와 하룻밤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여유있고 성적으로 강한 반면 일본군들은 성 기능이 제로에 가깝고, 야비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아이비를 가슴에 품고 있는 미군들이 보면 일본군은 `쳐죽여도 시원찮을 놈`이 되는 것이다. 

이런 설정은 군인들의 성적 상상력을 고조시켜 폭력성을 높이겠다는 미국 정부의 속셈에 따른 것. 한국전쟁 당시 우리나라에도 왔던 마릴린 먼로처럼 아이비도 전쟁터로 나가 위문공연을 펼친다. 

<핀-업>은 <상브르> 등의 작품으로 세계적 스토리 작가로 꼽히고 있는 얀과 불어권 만화의 본 고장 벨기에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림 작가 필립 베르테의 최근작이다. 불어권 만화에서는 보기 드문 장편으로 현재 2부까지 출간됐다. 

이 작품은 미국만화의 창작 형태를 세심하게 보여주고 있고, 만화와 포르노가 어떻게 전쟁에 이용되고 얼마나 대단한 역할을 하는지 설명한다. 그리고 대중매체가 애국심을 조장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일별하고 있다. 동계올림픽을 통해서 본 미국은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는 듯하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www.parkseokhwan.com)


굿데이, 2002-03-05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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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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