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월드에로카툰12.
박무직과 정영진의 성인만화 신고식
연애심리묘사에 강점을 보였던 두 만화가가 성인만화 신고식을 가졌다. 여성만화가 협회의 유일한 남자 회원인 순정만화가 박무직과 소년 대상의 학원 로맨스물을 그려 온 인기 만화가 정영진. 이 두 작가가 조금의 시차를 두고 인터넷을 통해 성인용 에로만화를 발표한 것이다. 박무직의 <필링>은 오프라인 단행본으로 나와 `대박`을 쳤고, 정영진의 <페스티발>은 온라인을 통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필링>은 박학다식한 문화평론가와 아름답고 순수한 만화가 지망생의 신혼일기다. 이론에는 강하지만 실전 경험이 없는 남자 주인공은 침대를 논쟁의 장으로 만들고, 천진난만한 여자 주인공은 침대를 데생 연습장처럼 활용한다. 음침하고 폭력적인 침대 행위로 채워졌던 에로만화에 순정만화의 화려하고 밝은 레이스를 깔아 놓은 셈이다.
<필링>이 유명 배우를 등장시킨 연애 영화라면, <페스티발>은 서민들을 밀착 취재한 다큐 드라마쯤 된다. 이름이나 직업 등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등장인물을 허무맹랑하게 조작된 설정 아래 놓고 지켜보는 것이다. 가령 밀폐된 공간에서 매력적인 여성의 유혹을 3개월만 참으면 1억원을 받는 내기에 참가한 남자가 있으며, 성전환 수술을 받은 첫사랑 남자를 잊지 못하는 여자가 있다. 또 사람을 손가락만한 크기로 만들 수 있는 가루를 지닌 남자도 있다. 이들이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자. 독자는 캐릭터들이 꼬무락거리며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고, 작가는 자신의 상상력이 이들을 어디로 데리고 가는지 지켜본다. 성애장면을 만들기 위한 에로만화의 어설픈 서사를 걷어내고, 학원만화의 역동성만 뽑아서 섹스쇼를 펼친 셈이다.
박무직이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성행위 때의 감정에 중점을 두었다면, 정영진은 과장된 현실 속에서 펼쳐지는 색다른 체위에 집중하고 있다. 순정은 순정대로, 학원은 학원대로 에로만화를 재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굿데이, 2002-02-19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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