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 장르의 이름으로
장르만화의 생성요인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전제로 한 상업성에 있고 상업성의 요구로 관습이 구축된다면 그 상업성의 최대 수혜를 입고 있는 장르만화는 감히 액션장르만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수한 장르의 생성과 발전이 있어왔지만 ‘액션’은 그 자체로 장르의 이름을 가져본 적이 없다. ‘액션’은 마치 ‘사랑이야기’나 ‘미소녀물’ 처럼 여타 장르의 변인 요소로 작용할 뿐 그 자체로 고유성을 지니진 못한다. 장르의 수립이 대개 작품의 이야기성에서 구축된다는 입장에서 보면 ‘액션’은 캐릭터에 의한 것이고, 영화의 이해를 학습한 만화의 기교일뿐이어서 ‘액션이 강하다’는 정도의 수사로 활용될 뿐 작품을 대표하는 이름이 되지는 못한다. 다만 16세기 에스파냐에서 성행한 소설의 한 장르로서의 ‘기사이야기’와 19세기에 이르러 제출된 추리소설, 20세기 허리우드의 서부영화와 갱스터영화, 첩보영화 그리고 중국계열의 무협소설과 무협영화 등을 통해 ‘액션이 강한 작품’들의 집합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은 기준을 두고 액션장르만화의 전개과정을 추론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만화장르의 일반적인 이해가 희극적인, 우스꽝스러운 ‘comic’에 멈춰있다면 만화는 곧 ‘명랑’이다. 내용상 명랑장르만화가 ‘웃기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면 단순한 선화를 바탕으로 한 명랑체만화의 경우는 그 보다 다양한 주제를 갖고 있다. 박기정, 임창으로 대표될 법한 명랑체만화는 전자가 천재소년을, 후자가 악동소년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천재소년은 학업, 스포츠, 기술 등의 분야에서 대립을 통한 성취를 이루었고 악동소년은 악동다운 도전과 모험을 통해 나름의 성취를 얻었다. 탈출구 문학의 전통성 하에서 ‘대립을 통한 성취’와 ‘도전과 모험’은 독자층을 넓혀가며 격투, 무도, 무림, 모험활극, 첩보, 수사, 추리, 암흑가 등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이어졌고 액션 또는 폭력만화의 관습성을 구축했다. 이른바 액션장르만화는 이와 같은 소재주의 작품들의 집합이다. 여름철이면 쏟아지는 허리우드 액션영화들이 내러티브는 사라지고 근육질의 미남스타만 두드러지듯 액션장르만화는 소재와 이야기성을 무시하고 화면을 꽉 채운 빠른 움직임과 효과음, 장면묘사의 디테일에 중점을 둔다.
관습, 그 놀라운 소비욕구와 생산력
액션장르만화의 현대적 한계는 한국적 만화소비환경 아래에만 존재하는 ‘대본소’를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학원액션물이 만화잡지생산시스템이 구축한 성과라면 액션장르만화는 전통적인 만화생산시스템이 의지하고 있는 철밥통이다. 수사 추리, 해결사물, 범죄물, 암흑가, 격투 전쟁물, 무협물, 모험활극물 등으로 이어지는 작품들은 관습적인 이야기 구성과 속도감있게 전개되는 화면연출(대본소의 소비 시스템은 페이지를 넘기는 시간을 빠르게 하는 것이 곧 소비를 촉진시키는 방법이다)로 가득하다. 이들 이미지의 대개는 동일 성향의 영화 이미지에서 차용한 것이거나 걸작 만화가 구축한 인지효과를 답습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동일 범주 안에서의 일본만화는 한국만화와는 차별적인 존재 양식을 보여준다. 일본의 대본소 액션장르만화작가 정도로 분류될 법한 이게가미 류이치의 작품에만 국한한다고 하더라도 그 폭넓은 소재주의와 액션에 천착하면서도 소재를 놓치는 법이 없는 이야기 구성은 작가의 진정성 문제를 다시금 떠올리게 할 정도이다.
액션 장르만화의 주요한 생산자들은 곧 한국 대본소만화의 인기작가군과 동일하며, 그 계보의 현재적 평가는 만화계의 ‘몹쓸 세균 덩어리’ 정도로 논의되는 대본소에 대한 평가와 동일하다. 장르의 계보를 논의하면서 한국 최대의 작가로 분류될 법한 이현세, 허영만, 박봉성의 손아귀를 벗어나는 작품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이다. 그들의 이름만큼이나 안정적인 작품의 생산과 소비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80년대 중반을 거슬러 완벽한 트라이앵글 구조를 구축한 세명의 거인 중 이현세가 스포츠와 스릴러에 집중하고, 허영만이 일상과 전문소재(소재의 다양성 측면에서)에 치중했다면 박봉성은 『아버지와 아들』이나, 『새벽을 여는 사람들』, 『신의아들』 등의 성취를 뒤로하고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의 액션에 주력, 이 장르의 맹주로 군림하고 있다. 이들의 이선에서 활동했던 장훈, 박원빈, 조남기, 조명훈, 박인걸, 김일민, 박인권 등은 이현세류의 작화법으로 ‘세 거인의 작품이 출간되지 않는 날’을 메우면서 인지도를 확보했고, 장르 내에서 조차 소수자들을 위한 것으로 폄하의 대상이 됐던 무협활극 쪽에서는 이재학, 황재, 황성, 천재황, 하승남 등이 명성을 쌓아갔다. 이들 중 상당수가 현재까지 작품을 하고 있으나 『깜빵』시리즈의 박인권과 무협활극쪽의 하승남 정도가 박봉성을 견제하면서 80년대의 명성을 잇고 있다. 특기할 사항은 이들 3인의 경우 ‘작가출판사’라는 방식으로 작품 생산조직(대규모 창작집단을 거느린 화실)과 유통조직(편집, 제작, 영업망을 구축한 출판사)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글/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한국만화문화연구원, 만화가이드2002, 시공사, 2002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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