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을 위한 과거 이해
문예 분야에서 역사물이라 하면 ‘역사상의 사실을 소재로 한 작품’을 이르고, 시대물이라 하면 ‘역사상의 사건 등을 토대로 각색한 작품’을 이른다. 역사물이 ‘새로운 역사해석을 목표로 하거나 또는 지난날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재현시키려는 의도이거나 어떤 의미로든지 소재인 역사성을 중요시’한다면 시대물은 ‘반대로 현대적 과제를 추구하는 방편으로서만 역사의 옷을 빌릴 뿐 역사 묘사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일본강점기, 남북전쟁, 전후 휴전기 등 고난과 혼란으로 점철된 한국적 상황에서 근대 만화는 군담(軍談)설화와 영웅설화를 반공주의, 민족주의, 계몽주의적 입장으로 제출하고 있었다. 김성환, 김용환, 신동우는 신문과 도서를 왕래하며 시사만화를 통해 현대의 문제를 비판하고 반공만화, 교훈적 역사만화 등의 작업을 겸하면서 아동 대상의 시대장르만화의 계보를 형성해냈다. 김원빈은 아동 대상 시대장르만화의 계보를 말끔한 화풍과 교훈성으로 이어 받았고 박광현은 위인 전기만화를 컨셉으로 역사성의 획득과 현대 극화체 시대물의 전형을 구축했다.
현대를 비추는 거울
근대의 시대장르만화는 사상성이나 심리성보다 주인공의 행동에 치중하는 모험소설 또는 영웅설화 류의 성격이 강했고, 역사소재만화는 계몽사상과 민족주의의 고취라고 하는 목적의식으로 인해 이야기 구조는 도식적이고 캐릭터와 사건은 지나치게 과장 또는 단순화되는 국면을 보였다. 그러나 대개의 장르만화가 ‘현실의 회피와 일탈’이라는 역할을 수행하는 반면 시대장르만화는 ‘현실성의 획득과 극복’에 주안점을 두었다. 현대의 과제 해결이라는 목적성을 지니고 도출된 역사성은 그대로 현대를 은유 할 뿐 아니라 대안 모색의 기회를 제공하는 쪽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시대장르만화 최고의 한국 작가를 꼽는다면 고우영, 이두호, 방학기, 백성민이 될 것이다. 그들의 작품에 자리한 한복 입은 주인공과 향토색 짙은 풍경은 이들의 만화사적 위치만큼이나 뿌리 깊다. 고우영 만화의 풍자성은 현실 비판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고, 이두호 만화의 우화성은 교훈적인 성격을 지닌다. 방학기 만화의 역사성은 고난 극복의 의지와 민족주의에 입각하고, 백성민 만화의 역사성은 역설적으로 민중적인 스펙터클과 함께 계몽주의사상을 보여준다.
현대의 시대장르만화는 영웅의 삶, 영웅호걸들의 이야기, 혁명기의 영웅 등 군담류 이야기를 통해 대리체험과 충족의 기쁨을 선사하는 동시에 근현대, 근미래의 역사성과 시대정신을 주축으로 개인의 삶과 사랑, 고단한 운명의 해법을 그려내고 있다. 특히 역사성에 입각한 장르간 혼성과 변이는 자칫 고리타분해지기 쉬운 이 장르의 새로운 출구가 되고 있다. ‘현대사회 최대의 문화상품은 계몽주의’라는 속설이 있듯 계몽성을 기초로 한 이 장르의 발전은 계속될 것이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한국만화문화연구원, <만화가이드2002>, 시공사, 2002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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