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에서 멀어졌던 잔혹성
한국 만화에 있어서 공포는 낯선 장르임에 분명하다. 박기당 등의 괴담류 만화가 60년 대 한국만화를 풍성하게 했음은 물론이거니와 화풍과 연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지만 이후 공포장르 만화는 박기당 만화의 고요한 분위기만큼이나 오래도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와 반대로 영화의 경우는 심리적인 공포와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공포, 스릴러 장르 등 다양한 유형의 공포물들이 제작되어 여름철 블록버스터들과의 대결에 참여해왔다. 여름철만 되면 공포영화들이 줄지어 개봉을 하고 사람들은 손가락 사이로 볼 건 다 보면서 비명을 지르는 것을 즐긴다.
공포영화 내에서도 여러 가지 하부 장르가 발달되어 있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이렇게 공포영화는 이미 평범한 사람들을 지루한 일상의 굴레에서 잠시 벗어나게 하는 음침한 욕망의 분화구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보면 만화에 있어서 공포물이 적은 것은 만화와 영화라는 매체 자체의 속성에서 기인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청각을 고루 사용할 수 있는 동영상인 영화는 시각에만 의존하는 만화에 비해 더욱 효과적으로 공포를 조장할 수 있다. 음산한 음악과 선명한 붉은 피가 얼마나 사람을 경악시키는지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들의 시각에만 의존해야 하는 공포만화는 동영상물에 비해 핸디캡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점만으로 만화적 공포의 존재감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영화의 관람 시스템과 만화의 구독 시스템은 서로 다른 환경 하에서 나름의 공포를 극대화하기에 충분한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이끌기 때문이다. 국산 공포만화의 약세는 좁은 시장구조와 잔혹성의 문제에서 찾는 것이 빠를 것 같다. 시장이 좁은 반면 만화의 나라 일본이라는 거대한 작품 공급라인이 있다. 다양한 작품의 유입이 가능하지만 선별 수용하게 되고, 대상층이 넓은 작품들이 우선 유입되는 구조를 취하게 된다. 또 공포만화가 지니는 잔혹성과 반윤리적 측면은 표현의 자유가 은연중에 금지되고 있는 국내 환경에는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간의 사정과는 별개로 걸작 공포만화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만화 매체의 속성을 이용하여 스토리를 강조하거나, 기괴한 그림으로 승부를 건다. 혹은 완전히 결말을 내지 않음으로써 독자들의 상상을 자극하는 것이다. 작품과 독자의 일대일 상황이 주는 침묵의 세계 속에서 공포는 눈을 뜨고, 점점 확산된다.
그 기괴한 상상의 자유로움
한국의 공포만화에서는 단연 한혜연의 만화들이 돋보인다. 미스터리와 환타지를 가미한 작품들은 예쁘고 단정한 그림들이지만, 두려우면서도 아련한 묘한 기분을 들게 한다. 사랑과 배신, 복수 등을 주제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낸 그녀의 실력에 감탄할 뿐이다. 중견작가인 김진도 공포만화로 유명하다. 평범한 일상을 배경으로 하는 그녀의 작품들은 특히 작품 속 인물의 탁월한 심리묘사를 통해 두려움을 자아낸다. 복잡한 인간사가 주는 공포라고나 할까? 일본의 공포만화는 한국보다 훨씬 이전인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역사도 긴 편이지만, 호러에서부터 괴담, 퇴마물, 그리고 환타지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공포만화의 시조(始祖)인 우메즈 가즈오의 작품들은 기괴한 상상력과 잔혹한 그림들로 공포라는 장르를 정착시켰다. 그의 작품들은 검은 색을 위주로 한 특유의 그림체와 독특한 이야기 전개로 사람들을 압도하는데, 국내에는 번역된 책이 없어 아쉬울 뿐이다. 그의 작풍에 영향을 받은 작가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작가로는 이토 준지가 있다. 기괴한 상상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그의 작품들은 영화로도 제작(『토미에』『소용돌이』)되어 더욱 인기를 끌었다. 한편 기괴한 그림으로는 뒤지지 않는 이누키 카나코의 『학교괴담』은 인간의 오만함에 철퇴를 내리는 교훈적인 작품이다.
최근에 인기를 끌고 있는 공포만화들은 단연 괴담류가 많다. 괴담류에는 귀신을 느낄 수 있고, 소통이 가능한 이른바 영감(靈感)을 지닌 인물들이 등장하여 귀신들의 불편함(!)을 들려주고, 인간과 귀신 사이의 애증의 관계를 이야기로 풀어내기도 한다. 그 중에는 『죽음과 그녀와 나』처럼 조금 무시무시한 귀신 얘기도 있고, 『백귀야행』과 같이 전설을 차용해서 친근감이 드는 것도 있는데, 귀신을 볼 수 없는 평범한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아내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들 괴담만화를 보고 있노라면, 일본 사람들은 귀신이야기를 별나게 좋아한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은 신(神)이 많기로 유명한데, 그 신들보다 더 많은 것은 바로 귀신들이 아닌가 싶다.
공포를 조작하는 인간에 대한 공포
괴물이나 귀신이라는 존재도 무섭지만, 역시 인간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존재는 인간 자신이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을 가장 잘 아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 자신에 대한 공포를 잘 표현한 만화로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를 들 수 있다. 금세기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가가 부족하지 않은 『몬스터』는 우선 방대한 스케일의 내용에 압도당하고, 두 번째는 천사와 같이 아름다운 외모의 악마, 요한이라는 존재에 놀라게 된다.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그 마음을 조종할 줄 아는 요한은 이미 인간이라는 존재를 넘어선다. 악마라고 하기에도 부족한 느낌이 드는, 두렵고도 두려운 존재다.
한편, 인간을 두렵게 하는 또 다른 것으로는 자연재해가 있다. 인간의 마음에 불가항력이라는 네 글자를 새겨주는 자연재해는 인간이 넘어설 수 없는 최대의 공포일지도 모른다. 두려움에 마음을 잡아먹힌 사람들에게 공포심은 더욱 커지고, 그 공포를 이기기 위해 어떤 이들은 스스로 공포를 주는 존재가 되려고 한다. 공포가 광기로 변하는 순간이다. 『드레곤 헤드』『브레이크 다운』 등은 이런 상황에서 인간의 존재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인간은 계몽을 통해 어둠을 밝히고, 자연을 정복해 왔지만 아직 인간 마음 속의 어둠은 떨쳐버리지 못했다. 아니 외부의 어둠을 밝히는데 치중하는 동안, 내면적인 어둠은 다루지 못할 정도로 커져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동안 공포만화는 우리를 둘러싼 안팎의 어둠을 조망해왔다. 그것이 독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는 대단히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공포만화를 즐기는 동안, 공포에 동화될지 아니면 그것을 관조할 수 있는 혜안을 가질지는 작가와 독자 모두의 몫이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한국만화문화연구원 저, <만화가이드2002>, 시공사, 2002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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