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이동하면서 만화를 본다, 모바일만화 시대, 씨네버스, 2001.03.20


걸어다니면서 전화 하냐!


영화 <게임의 법칙>에서 성공을 향해 불나비처럼 파닥 파닥거리던 박중훈. 성공의 상징처럼 회자되던 핸드폰을 들고 양껏 올린 턱 끝에 한 멘트를 걸친다. “나 걸어가면서 전화하고 있어.” 

그 옛날 핸드폰은 권력과 부의 상징이었다. 지금은 집밖을 나서는 꼬맹이들한테도 쥐어주는 필수도구가 됐고, 핸드폰 맡기고는 술 한잔도 못 얹어 먹지만 아직도 핸드폰을 받을 땐 꼭 안테나를 세우고 일단 턱 끝을 올리는 걸로 봐서 여전히 핸드폰이 뭔가 ‘난 척’ 할 수 있는 도구인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핸드폰의 종류나 그 쓰임도 다양해서 초기 모토로라의 망치만한 핸드폰은 총기류 소지가 금지된 우리나라에서 조폭들의 휴대용 무기 역할을 수행했고, 수신안테나가 저 멀리에 버티고 있는 바다 한 가운데서도 통화를 성공시켜 남북화해의 시대를 망쳐놓기도 했다. 전자수첩 기능을 내장하고 있어서 꼬깃꼬깃 들고 다니던 간이 전화번호수첩의 매출을 제로로 만들어 버렸고 바람 피는 남편에게 위기감과 이혼의 그늘을 안기던 ‘집으로 걸려오는 전화’를 막는데 일등공신이 됐다. 풋내 나는 꼬맹이 여학생들의 ‘원조교제 메니저’ 역할도 했고, 연예인 제일주의로 병약해진 우리사회에 ‘스토커’라는 신종 정신병 처방전도 발부했다. 

핸드폰이 만들어 논 이 세상의 재미난 일들이 여기서 멈출 것 같지 않다. 명함에 핸드폰 번호가 없다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지금. 우리는 또 작은 변화하나를 발견한다. 얼마 전까지 HP로 적혀있던 핸드폰의 이니셜이 MP로 바뀐 것이다. 


난 보고 싶은데서 본다

핸드폰은 사실 콩글리시(우리끼리만 통하는 영어)로 셀롤러폰 또는 모바일폰이 무선이동전화 단말기의 원 명칭이다. 국내에서는 700m 이내의 집 밖에서도 통화가 가능한 무선전화기가 등장하면서 ‘휴대’의 개념이 모호해지자 ‘선 없는’, ‘이동 할 수 있는’의 개념이 있는 모바일폰Mobile Phone으로 개명됐다. 핸드폰이 모바일폰이 되면서 생긴 변화는 다채롭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크기가 작아진 반면 액정화면이 커졌다는 것. 그리고 그 액정화면 안에서는 그간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사건들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먼저 저장 한 문자를 겨우 출력해내는 수준에 감명 받았던 사람들에게 모바일폰의 변화는 충격이었다. 그 작은 액정을 크게 하겠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겠지만 설마 그곳에서 문자를 작성해서 보낼 수 있고, 그림과 게임이 저장돼있을 줄이야! 그것도 잠시 ‘n'이라는 버튼을 누르면 인터넷에 접속된다는 것이다. 아니 그 작은 화면에서 인터넷 브로우저가 돈다는 말인가! 어떻게? 물론 답은 글자들이 주루룩 늘어선 썰렁한 형태로다. 초기 PC통신에 접속할 때의 느낌 정도다. 하지만 그 기능은 감히 PC통신 시절에 예상하지 못하던 것들이다. WAP(Wireless Application Protocol, 무선인터넷 통신 규약)이 등장하자 갑자기 '걸어다니면서 전화’하던 사람들을 ‘이동하면서 액정화면을 보는 사람들’로 만들어 버렸다. 모바일 인터넷에 접속하면 각종 텍스트 정보를 받을 수 있는가 하면 듣기 위한 음악파일은 물론 부르기 위한(노래방) 음악 파일을 받을 수 있다. 

또!(드디어 본론이다. 여기서부터 이 칼럼의 주제가 전개된다. 너무 늦게 시작한 감이 있지만 지금부터이다.) 그곳에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있다. 유선 인터넷에서도 될까 말까 믿기지 않았는데 급기야 들고 다니는 전화기 따위를 통해서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다는 말인가! 이제 진짜 종이책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이 되어버린 건가! 일단 그건 아니다. 다만 책이 불편해서 만화가 싫고 영화나 비디오를 통해 애니메이션을 보는 게 싫었다면 이젠 걸어다니면서도 만화와 애니를 즐기게 됐다는 것이다. 


보는 걸로 끝낼 수는 없지

일단 그 옛날 도스DOS 환경에서 목격됐던 도트(dot)로 된 이미지가 WAP에서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지닌 최소 단위이다. 작은 점들을 모니터의 바둑판 눈금 위에 하나씩 찍어서 요즘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흑백 십자수 같은 느낌의 그림을 만들어내고 이를 단일 화면으로 또는 연속적인 동작으로 묶어서 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사용자는 이를 모바일폰의 첫 화면에 저장할 수도 있고 문자나 음악을 삽입해서 다른 사람의 폰으로 발송할 수도 있다. 이미 이웃한 일본이 아이모드(Docomo)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면서 보여주었던 여러 가지 방식의 캐릭터 서비스들이 이제 WAP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또, 최근 새롭게 제출된 기술방식과 망 사업자들을 통해 실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는 JAVA 기술은 한 페이지씩, 또는 적은 량의 데이터를 매번 다운받는 방식에서 벗어나 한꺼번에 대용량의 파일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즉 기존의 무선인터넷 만화가 한 두 컷으로 구성됐고, 애니메이션이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는 차원에서 그쳤다면 곧 서비스 될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다양한 이야기의 전개가 가능하고 그만큼의 재미를 보장받게 된다. 또, 이를 통해 구체화된 이미지와 시나리오는 모바일 게임을 통해 재활용한다는 계획이 있어서 ‘캐릭터 제작→캐릭터를 통한 만화제작→만화를 통한 애니 제작→애니를 이용한 게임제작’이라는 이상적 사업흐름을 구축한다. 사용자 측면에서도 제작자가 만든 창작물을 일방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활용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창작물을 접하게 된다. 결국 모바일에 와서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개념은 보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이고, 사용하는 것이 됐다. (끝)



(그림1) 011에서 인터넷 접속하기 화면

(그림2) 모바일 컨텐츠 포털을 지향하는 에어아이의 스머프 동영상 캐릭터

www.airi.com 

(그림3) 모바일 만화에 최초로 칸의 개념을 도입한 모모짱의 홈

www.momozzang.com 

(그림4) 최근 일본 모바일 기업들과의 제휴로 문자 등을 삽입해서 보낼 수 있는 동영상 캐릭터가 등장하고 있다.

(그림5) 폰게임 업체 중 가장 기대되는 활동을 보이고 있는 컴투스의 <두리몽> 셈플 페이지

www.com2su.com

 

씨네버스/2001-03-20 게재

잘가라종이만화, 시공사, 2001 게재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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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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