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플래시애니메이션의 진격, 씨네버스, 2001.02.20


이 어찌 엽기적인 일이 아닐 수 있을까! 대규모 투자비를 들이고도 펑펑 나가 자 빠지는 게 한국의 애니메이션 계 실정인데 회사 업무에 찌든 직장인이 꽁지 돈을 들여 만든 애니메이션으로 세상의 환대를 받는다. 수 백 명의 인력들이 그 옛날 미싱공처럼 연필 대를 돌리고 돌려야 가능해서 임금 싸기로 소문난 나라 찾는 것이 애니메이션 제작이라더니 얼뜨기 대학생이 혼자서 만든 애니메이션이 갑자기 대박을 친다. 


고급 애니메이션 맞수를 만나다

명작극장 유와 재패니메이션의 초 절약형 셀애니메이션에 길들여졌던 국내 관객에게 디즈니는 영상충격이라는 선전문구를 들고 귀환 소식을 알렸다. <트론>이라는 터무니없는 SF영화를 통해 3D와 컴퓨터 영상을 실험하느라 돈을 털린 경험을 지닌 디즈니는 이후 자신들의 주특기인 만화영화 만들기에 컴퓨터 영상 기술을 적극 도입한다. 도무지 손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거대한 스펙터클이 컴퓨터를 통해 가능함을 보여준다. 이에 뒤질세라 국내 애니메이션 관계자들의 손에서도 컴퓨터니, 3D니 하는 말머리를 단 애니메이션들이 제출되면서 고급 애니메이션에 대한 가능성이 불거졌다. 하지만 결과는 턱도 없는 참패. 컴퓨터는 도무지 셀애니의 잉크와 어울리지 않았고, 움직임은 결코 셀을 따르지 못했다. 결국 까다로운 관객은 어느 쪽의 손도 들어주지 않으면서 응큼하게도 좋은 작품만을 요구했다. 다시 제작자들은 공들여 작품 만들기에 전념한다. 수 십억을 쏟아 부어야 가능한 작품. 관객이 주머니 돈을 모아들고 기다릴 거라고 믿었던 작품.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응용 프로그램의 출현이 그들을 닭 쫓던 개꼴로 만들어 버렸다. 도무지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 같은 ‘까닥까닥’, ‘반짝반짝’거리는 움직이는 화면이, 길어야 5분 짧으면 3초 수준으로 시작도 끝도 없이 톡 던져 논 볼거리가 그들의 앞길을 막았다. 컴퓨터 하나와 길바닥에 붙은 껌보다 많은 불법 복제판 프로그램 하나 그리고 아이디어와 열정만 있으면 누구나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도록 개발된 프로그램. 플래시와 GIF애니라는 응용프로그램은 초특급 대작 애니메이션들 앞에 당당히 맞서는 싼 맛 애니메이션의 세계를 열었다. 



애니메이션의 법칙을 파괴하라

이 프로그램들은 덩치 큰 대작들이 들어서기엔 여전히 좁은 문인 인터넷에 들어가기에 적합하게 구성됐다. ‘내 맘대로 되는’ 걸 하나 더 추가시켜 준 이 프로그램은 기존의 애니메이션이 도저히 포기해서는 안될 것들을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날려버렸다. 

애니메이션의 기초가 있다면. 제작과 표현기법에 기본이 있다면 그 따위 건 개에게나 줘버리라는 투다. 바람이 불어도 머리는 날리지 않는다. 그게 부담스럽다 여겨지면 등장인물들은 모두 대머리가 된다. 걸을 때 어깨가 흔들리는 일도 없다. 각 관절을 움직여야 걸을 수 있다면 차라리 통통거리듯 튀게 만들어 버린다. 배경이 있어야 하는데 정 그리기 싫으면 글로 처리한다. 뒤뚱거리는 꼴이 우습게 보여도 은근슬쩍 심각한 장면처럼 지나간다. 관객이 이해해 주리라고 믿어버린다. 대사, 성우도 마찬가지다. 단 오프닝과 엔딩은 동급 최강으로 제작한다. 또 인터넷 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효과음들을 주워다가 공들여 짜깁기한다. 이 점은 힘들더라도 꼭 한다. 다시 써먹어야 되니까. 


더욱 당당해진 엽기

동영상이 인터넷 상에서 안 되는 수 만가지 이유들을 플래시와 GIF애니는 엽기적으로 손쉽게 해결한다. 또, 이를 활용하는 이들 역시 도무지 상업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이 프로그램으로 대단위(?) 프로젝트를 뻔뻔스럽게 진행시킨다. 그야말로 엽기적인 프로그램과 활용 방법들이다. 애니메이션 제일 주의자들에 의해 테러라도 당할 듯 싶었던 이들의 애니메이션 만들기는 급기야 장르에 대한 엽기행각을 지나 주제 자체를 엽기로 맞춰버리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똥에 대한 온갖 상상력들과 질서파괴가 분명한 성적 관계짓기, 정치 풍토에 대한 심각한 풍자, 패러디 등. 세상에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아니 되는 온갖 잡생각들을 아랫배에 집중시켜서 뽑아낸다. 단순한 선 몇 개로 소극에서부터 총격전까지 연출할 정도의 재능으로 인터넷 엽기 애니 세상을 개척해낸 졸라맨은 이미 스타가 됐고, 곰 앞에서 머리로 맥주병을 깨는 엽기토끼는 인터넷 상업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플래시 카드 메일은 이미 대중화된 우편 수단의 하나가 됐고, 글의 적극적인 활용과 상황동기화의 설정으로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의 분류를 무의하게 만들어 버렸다. 고작해야 광고 베너 제작용 또는 몇몇 전문가에 의해 활용되고 제작될 것으로 여겨졌던 인터넷 애니메이션 제작. 매체주도자와 매체활용자의 벽을 허무는 한편 기존 매체의 관습을 파괴시키고 매체 변용 또는 신매체 창출의 전위세력으로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



* 인터넷 슈퍼영웅 졸라맨이 있는 곳 http://www.dkunny.com

* 인터넷 엽기소품의 격전지 http://www.yupgy.com/

* 똥소리나는 GIF애니 http://www.doodie.com/

* 엽기적인 플래시카드 소굴 http://www.send2you.com


 


글/ 박석환(www.parkseokhw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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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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