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 있는 김정일, 뿔 없는 김정일
1. 화해의 시기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조선인민공화국 지도자가 악수를 했다. 일관적인 통일관과 대북정책을 주장해온 노(老)대통령. 다리를 절며절며 새빨간 양탄자 위를 걸어갔다. 마중 나온 김정일은 복부비만으로 터질 듯 한 배를 강조하며 박수로 환영했다. 두 정상이 악수를 하는 순간, 그리고 두 정상이 3박4일을 함께하는 동안 세상은 달라졌다. 괴팍한 은둔자였던, 베일에 쌓여있던 김정일이 갑자기 매력적인 지도자로, ‘통큰 정치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김정일 주변을 번쩍이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그가 저질렀을 법한, 또는 저질렀을 것이 분명한 사건들을 모두 묻어버렸다. 색깔 안경을 쓴 음흉한 정치가는 사라지고 ‘반갑습네다’를 외치는 통큰 아저씨만 남았다.
2. 그리운 반공(?)
통큰 아저씨는 독창적인 캐릭터를 가진 인물이다. 대부분의 캐릭터성은 우리가 만들어준 것에 불과하지만, 파마머리에 색안경, 작은 키, 인민복은 그 많은 세월에도 불구하고 그대로였다. 김대중 대통령과 우리가 TV화면을 통해 제일 처음 목격한 김정일은 그저 옛날의 붉은 괴수, 돼지 지도자의 후계자였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 기간동안 그는 기존의 캐릭터를 훨훨 털어 버렸다. 첫날의 모습은 전혀 다를 게 없었는데 하루하루 지날수록, 그리고 색안경을 투명한 알 안경으로 바꿔 썼을 때, 김정일은 북괴의 후계자에서 ‘통큰 아저씨’로 재탄생했다. 국제 외교무대에서 전혀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단 몇 일의 일정으로 50년 분단 세월동안 처절한 응징의 대리물이었던 자가 노벨평화상이 아깝지 않은 지도자로 보였다. 미디어의 매직쇼가 얼마나 위대한지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사건이다.
3. 만화 속 김정일
김정일에 대한, 북한에 대한 혁신적인 인식변화가 있기 전까지 우리에게 반공은 잊지 말아야 할 숙제였다. 초등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반공 방첩’은 뜻도 모른 채 외워야 하는 구호였고, ‘무찌르자 공산당’은 놀면서도 잊지 말아야 할 숙제였다. 남녀노소 누구 할 것 없이 공산당은 처단해야 할 무리였다.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회한의 글을 적었던 문인도 있지만 북한에는 북괴가 살고있고, 그들은 늑대나 여우의 모습으로 알고 있었다. 김일성은 걸어다니는 돼지의 모습이었고, 김정일은 그가 애지중지하는 약삭빠른 2인자였다. 한창 만들어졌던 여름방학용 반공 애니메이션, 방학숙제용 반공독후감 대상 도서, 시도 때도없이 그려냈던 반공포스터, 목청 높게 불렀던 만화주제가 속에서 그들의 모습은 한결같았다.
나는 알아요 키는 작지만 나는 알아요 손도 작지만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대한에 어린이 길을 알아요
나는 싸워요 눈은 작지만 나는 싸워요 힘은 없지만
싸움을 좋아하는 공산당은 싫어요
자유를 위해서 나는 싸워요
<똘이장군> 삽입곡
4. 김정일에 대한 새로운 인식
북한, 김정일에 대한 인식은 하루아침에 바뀌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문제적 인간들로 북한을 기억한다. 그들은 퉁명스럽고, 호전적이며 무언가 음모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생각한다. 북한과의 화해무드가 형성되고, 금강산을 왔다 갈 수 있게 된 상황에서도 북한은 여전히 폐쇄적인 공간이며, 북한사람들은 늘 감시당하고 있다고 철저히 믿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인민복에 헐벗은 표정으로 수용소 같은 곳에서 능률 오르지 않는 일을 반복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어쩜 몇몇만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대다수는 극심한 가난에도 불구하고 전쟁 준비에 헐벗고 있다고 판단한다. 김정일의 불쑥 튀어나온 배가 건강상의 문제라고 하더라도 혼자서 호의호식한 탓이라고 치부해버린다. 우리에게 북한과 김정일은 그런 존재였다.
뿔도 없고, 꼬리도 달리지 않은 김정일을 보는 건 반갑다. 그러나 혼란스럽다. 도시 곳곳에는 여전히 북측의 대남 도발에 대비해야 한다는 투의 포스터가 붙어있다. 아이들은 호국의 달 유월을 맞아 ‘빨갱이 때려잡자’ 식의 웅변을 하고 다닌다. 약수터에 모여 앉은 영감님들은 전쟁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격분한다. 이만저만한 혼란이 아니다. 극우도 극좌도 놀랐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던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저 멍할 뿐이다.
클릭 : 북한 소재 만화 5
최근 만화 속에서 북한은 조금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짐승보다 못한 빨갱이에서 치밀한 첩보전을 벌리는 상대국으로, 남한과 연합해서 일본과 중국을 칠 정도의 강국으로 그려진다. 물론 변하지 않은 북한도 있다. 남한에 의해 체제를 붕괴 당한 북한. 그 때의 북한은 여전히 공포의 대상이다.
대란
야설록프로/ 도)뫼/ 1997년8월/ 2부10권(완)
액션(첩보)/ 단행본/ 청소년
★★
1995년 신의주에서 미국 CIA에게 훈련받은 대북 공작원 두명이 북한의 국경선을 넘는 도중에 사살된다. 그들은 북한의 중대한 비밀을 알아낸 상태였고 위기 의식을 느낀 북한의 지도부는 조속한 문제의 해결을 지시한다. 한편 안기부의 비밀요원으로 우크라이나에서 활동하던 최훈은 자신이 감시하던 우크라이나의 이중간첩이 살해되는 일을 겪게 된다. 최훈은 사건을 수사해나가는 과정에서 자신과 사랑을 나누었던 여자가 살인 사건의 범인이며 북한의 공작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북한 첩보전쟁 승자는 누구일까요? 답은 벌써 모두가 알고 있다.
난
이상세/ 도)세교/ 2000년7월/ 13(완)
액션(첩보)/ 단행본/ 청소년
★★1/2
란은 강원도 바닷가에서 자란 소녀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20년전 북한에서 귀순한 인물이다. 그러나 귀순은 위장이었고 사실 그는 백두산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리는 거물급 공작원이다. 남한 간첩 조직이 북극성이라는 인물에 의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하자 북한의 대남공작부는 란의 아버지를 의심하게 되고 그의 배신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전문 공작원을 남파한다.
-남한과 북한의 치열한 첩보전속에 휘말리는 여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남북분단의 비극을 느낀다.
남벌
이현세/ 팀 매니아/ 1995년3월/ 2부5권(완)
액션(전쟁)/ 단행본/ 청소년
★★★1/2
중동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일본은 인도네시아 지역에 매장된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 한국과 전쟁을 시작한다. 곧 재일교포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이 시작되고 재일교포인 혜성과 그의 가족들은 수용소에 수용된다. 한국인들을 수용소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남한과 북한은 공동으로 계획을 세우고 특수요원들을 파견한다. 탈출 작전중 가족을 잃게 된 혜성은 일본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고 일본과의 전쟁에 뛰어든다.
-한국 만화계의 베스트셀러중 하나. 하지만 노골적인 반일 감정과 국수주의적 면모를 발견하는 것은 씁쓸하게 느껴진다.
데프콘
김경진, 김일민/ 초록배 매직스/ 2000년7월/ 7권
액션(전쟁)/ 단행본/ 성인
★★1/2
근 미래를 설정으로 벌어지는 가상 전쟁물. 2003년 남한과 북한의 통일이 임박하게 된다. 그러나 동아시아 제패를 노리는 중국은 기습적으로 남한과 북한의 수뇌암살 작전을 시도한다. 작전은 실패하지만 곧바로 중국의 한반도 침공이 시작된다. 제주도와 신의주가 폭격을 당하고 중국의 기습공격에 남한과 북한은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는데....
-통일만 하면 바로 대한민국이 중국도 상대할 수 있는 초강대국이 되나?
DMZ
이상세/ 도)세교/ 2000년3월/ 5(완)
액션(첩보)/ 단행본/ 성인
★★★
남한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흡수통일된 북한의 특수부대원 이무기는 통일한국의 대통령을 암살하려다 실패한다. 사상교육대에 수용되어 사상전향을 교육받던 이무기는 비무장 지대에서 이무기에게 부하를 잃은 작전 책임자의 원한 때문에 아시아 레일로드 건설현장에서 무기한 노역을 살게 된다. 그 곳에서 정계 2인자의 아들이지만 살인죄로 수감된 오제이를 만나게 되고 둘은 함께 수용소를 빠져나온다.
-통일한국에 대한 우울한 상상.
코믹존/ 2000-04-01 게재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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