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새로운 만화창작 교육기관을 바란다, 만화창작,1999


지금보다 ‘만화’가 즐거운 시절이 있었을까? 정부에서는 만화발전을 위한 각종 전시행사와 시설투자에 적극적이고, 만화가 지닌 엄청난 산업적 기대감은 기업과 일반인들의 크나큰 관심사로 떠올랐다. 전시행정과 산업사회적 조건부 투자, 돈벌이와 취업이라는 ‘뻔한 속셈’일지라도 몇 년 사이 ‘만화에 대한 대접’은 놀랍도록 달라졌다.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는 자연스레 ‘창작집단’과 ‘창작예비집단’을 들뜨게 했고, 인력수요가 늘어나면서 인력양성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과거 창작인력 양성을 위한 만화교육은 ‘만화작가 문하'와 ‘만화학원 강습'이라는 이원화 체제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만화의 붐'과 함께 ‘만화교육'도 다양화・전문화되고 있다. 대학, 대학의 사회교육원, 유력기관의 문화센터, 그리고 기타 사설학원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대표적 교육기관인 대학에서도 ‘만화교육'에 대한 효과는 의심받고 있다.


한국,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만화'의 주류형식은 ‘스토리만화'가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의 만화교육은 구미(歐美) 위주의 탈규격화된 일러스트, 커머셜(상업광고)만화에 더 큰 비중을 둔다. 만화가 상품부착방식의 캐릭터, 캐릭터자체상품 등과 멀티미디어 컨텐츠 등으로 활용되면서 만화교육도 만화작가보다는 예능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에 중점적이다. 한 학생은 ‘이야기만화를 희망하고 있는데, 매일 전시 가능한 한 프레임형식의 만화를 그리고 있다’면서 만화관련학과가 디자인계 미술대학의 교육과정과 다르지 않음에 불쾌함을 표했다. 여타 교육기관의 형편은 이보다 못한 사정이다. 특히 학원의 경우 ‘취업'을 목적으로 한 기능교육이 주가 되면서 ‘만화 기능 인력 양성소'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 미술대학 개설 바람이 입시미술전문학원을 양산시켰듯, 현재 전국적으로 20여개에 이르는 대학의 만화관련학과 역시 새로운 형태의 대학입시학원을 만들고 있다. 먼저 기존의 만화학원이 입시소묘 등을 중점으로 만화학과 입시반을 개설해서 운영중이고, 일반 미대입시학원에서도 이를 토대로 만화관련학과 입시반을 운영 중에 있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일반의 호응도 새로운 기능학원을 양산시켰다. 디자인산업에 대한 재인식이 몰고 온 디자인학원은 컴퓨터 그래픽→웹디자인→3D 등의 교육 아이템을 발전시켜 컴퓨터 애니메이션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양쪽 모두 ‘무늬만 만화’를 내세웠을 뿐 실질적인 만화창작인을 위한 교육 과정이 되지 못하고 있다. 전자는 미진한 형태의 미술교육에 머무르고 있고, 후자는 컴퓨터 프로그램 활용자를 만드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결국 현재의 만화교육은 만화기능교육이 될 수밖에 없고, 이러한 교육 시스템은 만화제작의 하부구조를 담당하는 만화기능공 내지 창작에 대한 갈증을 풀지 못하고 떠도는 만화예능인을 만들어 낼뿐이다.  단순히 한 장의 멋진 그림, 한 두개의 멋진 표현기법들이 만화라는 아름다운 텍스트를 만들진 못한다. 저명한 만화가 스콧메클루드의 정의대로 만화는 ‘정보를 전달하거나 보는 이에게 미적인 반응을 일으킬 목적으로, 그림과 그 밖의 형상들을 의도한 순서로 나란히 늘어놓은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상상의 표현, 발상의 전개, 이야기의 구조화와 이미지의 창조적 조형력, 구성력 등이 요구된다. 이는 손과 펜, 잉크 등의 도구 활용 능력을 통해 이루어 질 수 없다. 

만화적인 이미지의 활용(기획)능력에 중점을 두고 있는 대학의 만화교육, 이 곳에 입학하기 위한 입시만화교육, 그리고 기능인력양성을 위한 만화학원의 교육 등은 만화에 대한 거품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만화를 문화예술의 한 측면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돈 덩어리 정도로 인식하고 있으며, 과거 산업화 사회 시절의 기능공 양성과 같은 제도적 교육으로 인력창출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만화의 학문화를 위한 대학의 만화관련학과와 인력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만화학원은 우리만화계의 미래를 담당한다. 상호 문제점을 보완한 대안으로서의 교육기관 역시 이들에 의해서 등장할 것이 분명한 까닭이다. 현행 교육환경과 교수인력들에 대한 재배치, 창의력 신장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개발 등 새로운 만화창작 교육기관의 출현을 기대한다.


단, 대학의 사회교육원과 유력기관의 문화센터, 자생적 창작소모임 그룹 등은 현재로서 대안적 교육기관의 면모를 보인다. 이들의 교육이 만화활용 기술과 만화제작 기능교육 보다 ‘만화창작의 대중화’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작문교육을 배웠다고 해서 다 글쟁이가 되려하지 않는 것처럼 만화창작교육 역시 특기교육, 취업교육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취미교육, 인성교육의 일환으로 인식될 때 정말 ‘아름다운 만화문화’가 조성 될 것이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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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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