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열렸다. 우리가 사랑하는 대통령님이 일본을 다녀온 뒤 잠겼던 빗장을 풀었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양국간의 쟁점이 돼왔던 문화개방. 98년 10월 20일 문화관광부는 일본대중문화 개방 일정을 공식 발표했고, 이제 대중은 금기시됐던 문화의 수혜자, 향유자가 됐다.
얼마나 기대했던 일인가? 꽁꽁 잠긴 빗장을 넋 놓고 바라보며 그들의 문화에 대한 부러움을 가졌던 우리. 년간 34조원에 달하는 문화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일본. 우리의 2~30배가 훌쩍 넘는 그들의 문화는 얼마나 탐스럽고 유혹적이었던가? 그 유혹은 우리에게 굳건한 빗장 만 바라보고 있게 하진 않았다. 문틈을 찾아, 개구멍을 찾아 ‘볼수 없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논하고 강한 애정을 표시했다. 98년 7월 현재, 문틈으로 넘어온 일본문화의 시장 점유율은 33.5%(출처 : ‘일본대중문화 유통실태 조사’ 문화관광부). ‘열어야 된다’. ‘안 된다’며 탁상공론을 벌이고 있던 와중에도 공식・비공식적인 일본영화・애니메이션 상영회는 계속됐다. 우리는 그처럼 일본의 문화를 사랑하고 있다.
그런 탓인가? 지난 10월을 전후해서 모든 미디어가 하나같이 일본문화의 우수성과 경쟁력에 대한 두려움을 표시했고, 우리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소리 높여 외쳤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그렇게 좋다고 떠벌리고 흥분하던 작품들, 우리가 너무도 애타게 기다렸다고 하던 일본문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기대이하라는 답이 나오고 있다. 시류파악을 잘하기로 소문난 영화감독 박철수는 ‘일본영화 티내기’ 전략으로 밀어붙인 <가족시네마>를 개봉하고 대박 소식을 기다렸지만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최초의 수입 개봉작으로 기록된 <하나비>와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역작 <카케무샤>도 기대 이하의 관중 동원에 그치고 있다.
일본만화의 시장점유율과 일본만화의 국내 출판율이 50%를 넘어서고, 어린이들의 만화영웅들이 이미 일본산으로 뒤 바뀐지 오래인데 영화에서는 그 파생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대학가를 중심으로 일본영화 <러브레터>와 애니메이션 <모노노케히메>의 불법 상영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데 정식 개봉작들은 보려고 하지 않으니. 불법은 좋지만 적법으로는 불편하다는 의식이 있는 건가? 아니면, 현재로선 제한적으로 수입되고 있는 탓인가? 후자 쪽이 맞을 것이다. 그들의 문화상품, 대중문화상품의 우수성이 예술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일. 문화적, 경제적 쇼크를 완화하기 위한 단계적 개방 조건이라는 일조의 ‘옵션’ 때문이다. 이 ‘옵션’이 풀리는 날, 그들의 문화침략은 본격화 될 것이고, 우리의 일본문화 사랑도 가속화 될 것이다.
문제는 이 ‘옵션’이 풀리기 전까지 우리의 문화상품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2002년 이전 완전 개방이 이뤄진다면 남은 기간은 3년. 3년 안에 우리문화 상품의 우수성에 대한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 하지만 그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이미 만화의 경우는 일본작가들과 작품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일반 대중들 역시 일본만화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있다. 더군다나 일본작가들을 제외하고 이미 형성된 작가군들로는 기존의 시장 자체를 유지하기도 힘겨운 상황이다. 결국 문화개방시기의 전략은 맞불 작전밖에 없다.
그들의 시장장악에 맞선 대응전략은 시장고수가 아닌 일본 시장공략이라는 것이다. 만화의 경우에도 이미 수명의 국내 작가들이 일본만화잡지에 연재를 했었거나, 연재중이다. 앞서 지적한대로 일본의 문화시장 규모는 우리의 2~30배. 문화의 소비층이 다양하고 두텁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점이 우리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다종다양의 문화 소비층이 존재하므로 우리문화 상품도 일본 내 시장점유가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득과 실을 수치상으로 따진다면 답은 없다. 실내 낚시장이라도 고기를 잘 낚는 사람이 있고, 못 낚는 사람이 있으니까.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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