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박석환의 만화요만화, 1998-09-23 게재
만화시비탕탕탕, 초록배매직스, 1999 게재
[박석환의 `만화요, 만화`]
만화원작 컴퓨터 게임
만화방만큼이나 뿌리깊은 편견에 둘러싸여 있었던 공간이 전자오락실이다.그곳에서 만났던 친근한 게임들은 사행심을 조장하고 폭력성을 심어주며 심지어는 정신착란에 이르게 한다는 각종 시비에 시달렸다.만화매체와 마찬가지로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던 것이 게임산업이었다.그러나 최근 멀티미디어 관련산업의 조기 정착을 서두르는 정부는 게임 제작업체를 벤처기업으로 선정하고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만화`와 `전자오락`이라는 두 천덕꾸러기가 모여 사람들에게 새로운 가능성과 재미를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컴퓨터 게임 제작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원작 만화의 인기 캐릭터로 아동취향의 단순 대전형 게임이나 퀴즈 게임 등이 만들어진 건 꽤 오래 전의 일.그러나 오락실용 게임기 시장은 일본산 게임들에 자리를 내줘야 했고 개인용 컴퓨터 게임 시장은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가 난무하면서 자본 투자자가 나서지 않았다.국내 업체로는 단비소프트 등이 `마이러브` `뱀프×1/2` 등의 저예산 게임으로 틈새시장 공략을 시도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 중견 만화가 이두호와 허영만의 원작만화가 요사이 주종을 이루는 롤플레잉(돌돌 말린 지도를 풀어가듯 진행하는) 게임으로 제작,시판되면서 국외 게임들과 정면승부에 나섰다.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역사만화만을 그려왔던 이두호 원작의 `머털도사와 108요괴`(오렌지소프트)는 게임 설정과 시나리오,그래픽 등에서 한국적인 매력을 물씬 풍긴다.소도라는 곳에 봉인된 십이지신의 경고로 백팔요괴의 음모를 알게 된 머털과 친구들이 요괴의 음모를 저지하기 위해 생명수를 찾아나서는 과정이 익숙한 고대 전설과 민담 속에서 진행된다.
장르,연령을 넘나드는 폭넓은 창작으로 오랫동안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허영만의 `날아라 슈퍼보드_환상서유기`(KCT)는 만화와는 다른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제작됐다.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삼장법사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이야기에 6명의 새로운 캐릭터를 추가하고 게임 진행에 따라 캐릭터가 성장하는 등 전형적인 롤플레잉 게임형식을 취한다.게임 진행시 캐릭터 위에 말풍선이 나오면서 만화적인 효과를 살리는 등 원작의 아기자기한 재미가 각종 무기류와 필살기를 사용하는 등장 인물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묻어나고 있다.
이두호 허영만 두 인기 만화가의 참여로 국내 만화의 게임화가 본격화될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대중문화의 교육성이나 공공성에 묶인 창작자들의 정서다.“국산 게임을 할 때면 왠지 자유롭지 못한 느낌이 든다”거나 “게임 제작자의 사고가 폐쇄적이어서 게임진행이나 이벤트가 단조롭고 너무 경직돼 있다”는 지적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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