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박석환의 만화요만화, 1998-09-16 게재
만화시비탕탕탕, 초록배매직스, 1999 게재
[박석환의 `만화요, 만화`]
패러디
요즘 문화예술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차용되고 있는 사조 가운데 하나가 패러디다.작가가 기존의 작품을 재해석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창작의 한 방식.만화는 오래 전부터 기존 현상에 대한 낯선 접근을 시도하며 독자의 웃음을 얻어냈다.만화창작에서 패러디가 낯설지 않은 이유다.
본격적인 패러디 만화는 각종 전문지들을 통해 처음 선보였다.정치·영화·오락·음악 전문지 등에 만화가 연재되면서 잡지의 특성을 고려한 작품들이 패러디 만화라는 형식으로 소개됐고 성공사례를 만들자 만화전문지들 사이에서도 패러디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영화전문지에 연재됐던 정훈이의 만화가 특정 영화의 골격을 유지하면서 시사만화적인 성격을 보여준다면 고병규의 `SF 패러디극장`(`주니어 캠프` 연재)은 SF영화의 익숙한 구성을 이용,웃음 전면전을 펼친다.이 작품은 패러디 영화의 진수를 보여줬던 `총알 탄 사나이`를 능가하는 패러디 만화라는 입소문이 번지면서 독자층을 넓히고 있다.영화 `스타워스`에서 주인공과 함께 다니던 로봇 R2를 휴대용 전기밥통으로 표현하는가 하면(`니가 제다이라며`편),`로보캅`이야기에 TV만화영화 `가제트`를 혼합,`못말리는 로보캅`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그리고 마치 영화에서 유명 연예인을 단역으로 출연시키는 것(카메오)처럼 유명 만화의 주인공들을 사이사이에 등장시키면서 색다른 볼거리와 웃음을 유발한다.`못말리는 로보캅`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났던 `은하철도 999`의 철이가 등장,“인조인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애원한다.
박무직의 작품들도 이와 유사한 경향을 보인다.박무직은 이미 패러디 형식의 만화를 수 차례 선보였다.그러나 그의 작품은 다른 패러디 만화와는 변별성을 띤다.대부분의 만화가들이 패러디 대상을 영화로 삼고 있는데 반해 그는 유명 만화작품을 패러디한다.박무직의 `TOON`(`윙크` 연재)은 `패스`라는 만화동아리를 중심으로 만화가를 꿈꾸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렸다.동아리의 회원들은 인기만화 주인공의 의상을 따라 입는 `코스프레` 마니아들이다.그들은 코스프레를 통해 원작의 주제와 이미지를 손쉽게 빌리고 그 위에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한다.
가령 `배트맨`을 패러디한 연작에서 주인공 `핑퐁맨`의 가족들이 커튼이나 이불보 등으로 만든 의상을 입고 세운상가를 무대로 불의를 일삼는 악당을 쳐부수는 식이다.그밖에 연작의 표지그림은 국내 유명 만화들의 표지를 패러디하기도 하고 아예 원작과 동일한 구성의 연출방식을 선보이기도 한다.박무직의 패러디 만화는 특정 독자층의 열광적 지지를 받지만 한편에서는 원작이 변화되는 것을 꺼리는 독자들의 끔찍한 비난을 동시에 받는다.
만화에서 패러디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기존 창작물을 바탕으로 한 재창작의 방법.그러나 패러디에서도 역시 중요한 건 작가 자신의 창조적인 재해석이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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